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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두부 May 02. 2019

윤희

윤희. 중학교 이후로는 연락한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오늘 너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곧바로 마음이 내려앉지는 않았어. 윤희라는 이름을 몇 번 되새기면서 1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아이가. 눈이 크고 항상 밝았고 순하디 순했던 아이에게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걸 실감했어. 그제서야 마음이 조금씩 무너지더라.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넘어올 때도,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진학할 때도 혼자 조금 떨어진 곳으로 배정됐어. 매번 다른 동네로 옮겨 다녀서인지 나는 학생 때 남들보다 많은 친구를 사겼어. 새로운 곳에 가면 새로운 사람들을 사겨야 하니까 그만큼 넓어진 거지.


우리가 벌써 서른이 됐어. 나이가 들수록 친구는 줄잖아. 하물며 윤희 너처럼 한때 친했지만 졸업하고는 보지 못한 친구들은 더 쉽게 잊혀졌지. 그 많던 친구들이 다 어디갔는지 모르겠다. 이름도 얼굴도 가물가물한 애들이 많아.


근데 엄청 친하거나 함께 뭘 같이한 기억이 적은데도, 안 본 지 15년이 지나도 뚜렷한 친구들이 있어. 정말 몇 있는데, 윤희 너도 그래. 너 얘기가 나오자마자 바로 뚜렷해지는 건 아니지만 차근차근 하나씩 짚어나가다 보면 고윤희란 친구가 어떤 애였는지 선명하게 기억할 수 있어.


함께한 기억이 많거나 적은 게 문제가 아니야. 분명 너보다 오랜 시간을 함께한 친구도 많지만 이름조차 기억 안 나는 애들도 있거든. 생각해봤는데 넌 항상 잘 웃었고 어떤 일에도 호들갑 떠는 애였던 것 같아. 보기 싫은 호들갑이 아니고 보면 웃음 나는 그런 거. 걱정도 없어 보였어. 너와 너 주변에는 어딘가 긍정적인 에너지가 가득했달까. 그렇지 않은 친구들도 그 에너지에 감화되는 것 같았어. 중학생 그 예민하고 툭하면 어긋나는 시기였는데도 작은 다툼도 없었던 것 같고. 아이들의 중심을 지키는 친구는 아니었지만 항상 한 걸음 뒤에서 든든하게 자리를 지켜주는 애였어.


나이가 들수록 깨닫는 건 걱정 없어 보이는 사람일수록 속에서는 더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다는 거야. 윤희 너가 딱 그런 사람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어릴 적부터 어른스러운 내면을 가지고 있었고, 그로 인해 주변에 좋은 영향을 미치는 사람.


말이 길어졌는데, 너가 좋은 사람이어서 15년이 지난 지금도 뚜렷이 남아있는 것 같다. 너에겐 멀어진 기억일런지 모르지만 14살에 윤희, 기은, 수정, 혜윤, 지영, 웅준, 그리고 나. 이렇게 남매라며 함께했던 시간들도 바래지 않았어.


하늘에서 천사가 부족했나봐. 그곳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을 거라 믿어.


친구의 명복을 빌며.

두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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