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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Dec 15. 2018

로띠. 오 마이 로띠.

2018년 여름. 태국 방콕 첫 번째 이야기.

붐비는 시장 한 구석에서 로띠를 기다리던 순간이 또렷이 기억난다. 그리고 이어진 바나나와 누텔라 그리고 어쩔 줄 모르게 입 안을 감도는 연유. 오 마이 로띠. 방콕하면 떠오르는 첫 번째 기억이 로띠라니.

방콕 짐 톰슨 하우스 (Jim Thompson House)

여행지를 정하고 티켓을 끊고도 여러 번 일정을 바꿨다.


어쩔 수 없는 출장 때문이었지만 사실 그러던 어느 날인가 그냥 가까운 곳으로 바꿔서 다녀올까? 라는 생각도 했다. 고작 여름 휴가일 뿐인데 막상 방콕에 가기로 맘을 정하니 좁은 비행기에서 6시간을 견디는 것도 방콕에 5일이나 투자하는 것도 왠지 내키지 않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는 방콕에 대한 고정관념이 컸던 터라, 방콕에 가면 코끼리를 타거나 악어를 보러 가야한다고 생각했다. 분명 옛날 우리나라 사람들이 다녀 온 방콕의 모습은 그랬으니까 나는 강산이 변해도 방콕은 늘 그렇다고 여겼다.

방콕 아리 Bar Storia del Caffe

다시 돌이켜보니 꽤 비장했던 여행지 선정을 마치고 결국 방콕으로 떠나는 날에는 ‘남편이 있으니 괜찮겠지?’ 라는 마음마저 들었던 것 같다. 스스로 가지고 있던 숱한 편견을 대적하는 약간의 용기를 갖고 오르게 된 여행이었다.

방콕 아리 조쉬(Josh) 호텔

생각보다 길었던 비행을 마치고 늦은 밤 호텔에 도착했다. 하룻밤에 우리 돈 5만원 정도의 방이었는데 호텔 안팎은 파스텔 톤에 방 안 꾸밈새도 예사롭지 않았고, 야외 작은 수영장도 에메랄드 타일 덕에 마치 작은 리조트 같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호텔 주변 지역이 최근 몇 개월 사이에 방콕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 ‘아리(Ari)’ 지역 이라고 했다.

방콕 아리 조쉬(Josh) 호텔

그렇게 첫 날 저녁을 보내고 밝아진 동네를 걸어 보았다. 호텔을 나서니 이내 한 마디로 설명할 수 없는 분위기가 감돌았다. 나무가 울창해 사방이 푸르렀고, 녹음이 우거진 골목 사이에는 꽤 이국적인 풍경과 로컬 노포들이 한 데 어우러져 있었다. 노곤한 고양이가 가득한 풍경과 젊음이 가득한 카페와 펍이라니. 뻔하지 않은 풍경이 좋았다.


아마 그 것이 내가 처음 느낀 ‘방콕스러움’ 이었던 것 같다.

방콕 아리 KINU Donut

그리고 이내 또 다른 차원의 ‘방콕스러움’ 을 느끼게 됐다. 바로 이미 악명 높은 ‘방콕의 트래픽’.

방콕 Sala Rattanakoson Bangkok 에서 본 왓 아룬 사원

여행을 준비하며 가급적 바쁜 시간대에는 택시를 피하라고 귀에 딱지가 앉게 들었었지만, 결혼기념일 1주년 축하 디너에 가는 길에 수상 택시(배)를 타고 갈 수는 없는 노릇이라 호기롭게 택시를 잡아탔던 게 화근이었다.


예약해 둔 식당은 짜오프라야 강변의 석양에서 이어지는 야경이 유명한 Sala Rattanakoson 이었는데 그 곳 중에도 딱 4자리 뿐인 테라스 석으로 미리 예약을 해둔 터라 혹시 Late show up으로 예약이 취소되어 식사를 못 하게 될까 마음이 급했다. 내 마음을 아랑곳 하지 않는 꽉 막힌 도로.

방콕 Sala Rattanakoson Bangkok 과 왓 아룬 야경

6시에 예약해 둔 식당에 도착하니 6시 반. 어찌저찌 식당에 미리 전화해 둔 덕에 식사를 할 수 있었지만 방콕의 트래픽을 간과한 나의 잘못이었다.


그래도 테라스에 앉아 해가 넘어가는 순간부터 옅은 색깔을 내며 흘러가는 강을 옆에 두고, 이내 밝게 빛 나던 왓 아룬 사원의 야경을 보며 방콕에서 이런 호사를 즐길 수 있다니. 매 순간 놀라웠다. 식사 시간 내내 테이블과 벽을 타고 다니는 도마뱀도, 가는 길이 답답했던 트래픽도 웃어 넘길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


아마 이건 또 다른 ‘방콕스러움’ 끝에 느낀 만족이었겠지.

방콕 팁 싸마이 (팟타이 전문점)

밥을 먹고 나와 가보고 싶었던 팟타이 전문점에 들렀다. 여전히 걱정이 많아 길거리에 서서 포장마차 팟타이를 먹기엔 아직 벅차고 낯설었던 나에게는 안성맞춤이었던 곳.


이 곳의 분업화를 꼭 두 눈으로 확인해야한다는 평이 구글 지도 아래 달려 있을 정도로 면을 볶고, 계란 옷을 입히고, 견과류를 올려 데코레이션을 한 후 서빙을 하기까지 최소 5단계를 거쳐야만 테이블에 비로소 오를 수 있었다.

방콕 딸랏롯빠이2 야시장

저녁 노을을 곁들였던 식사에 만족스러웠던 팟타이 끝에 내 사랑 로띠를 만난 곳. 형형색색의 삼각 지붕으로 유명한 딸랏롯빠이(딸랏롯파이)2 야시장에 갔다.


도대체 그 동안 어떻게 여행을 다닌 걸까 싶을 정도로 나는 꽤 많은 것을 선호하지 않는다. 주로 야시장이 그 중 하나여서 중국 왕푸징 꼬치거리, 홍콩 몽콕 여인가 거리에 가서 거닐 때도 그저 어서 호텔에 돌아갈 궁리만 했었다.

방콕 딸랏롯빠이2 야시장

그런 나에게도 충분히 매력적이었던 딸랏롯빠이 야시장. 그저 간단히 먹을 것들과 펍과 각종 잡화들이 어우려 있는 게 전부였지만 그래도 나에게 그 정도면 됐다.


어리숙한 무언가를 사지 않아도 됐고, 아이러브방콕이 온통 새겨 진 티셔츠나 온갖 명품 브랜드의 가방이나 옷들로 피로감을 느낄 새도 없었다.

야시장의 로띠

그리고 그 구석에서 로띠의 첫 맛을 즐겼다. 바나나를 듬성듬성 썰고 언제 닦은 지도 모르겠는 스프레드로 누텔라와 연유를 발라주었지만 맛을 보는 순간 다 괜찮아졌다!


방콕은 코끼리도 악어도 없이 그저 나무와 로띠가 있었다. 진작에 방콕이 이렇게 좋은 줄 알았더라면 좋았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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