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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Dec 05. 2018

그렇게 도쿄에 다녀왔다.

2018년 초겨울. 일본 도쿄.

초등학교 동창이었던 우리 부부는 연애를 시작하던 2013년이 되기 전까지도 무척이나 많은 것들을 공유해왔다. 동네의 작은 음식점들부터 좋아하는 영화에 대해 논하고, 때로는 여행이나 쇼핑 등 전방위적으로 각종 취향을 이야기하곤 했다. 여차저차 10여 년의 친구 생활과 4년의 연애 시절을 거쳐 결혼 1년차인 우리는 여행을 자주 다니고 있다. 수없던 여행의 기록들 중에서도 최근에 다녀 온 짧은 도쿄 여행기로 첫 글을 시작해보려 한다.

남편의 새 직장 첫 출근일이 정해지면서 우리는 국내외 다양한 선택지 가운데 마침내 도쿄를 골랐고, 여행 바로 전 날 비행기와 호텔을 예약했다. 부랴부랴 비행기에 올라 도쿄에 도착하니 어느새 저녁 시간. 캐리어를 그대로 끌고 돈카츠 집의 미닫이 문을 열고 들어가 앉았다.

돈카츠 동키에서의 첫 식사, 꽤 정갈했고 맛도 그만이라 마음에 들었다. 소복한 양배추 샐러드에 수분감 없는 튀김옷, 늘 그렇듯 평균 이상의 쌀밥까지 모두 좋았다. 금요일 밤이었는데도 가족 단위 외식이 많아 흐뭇했던 식사 자리.

예약이 잘못 되어 도요코인 흡연 객실에서 밤 사이 짧은 휴식을 취하고는 이른 아침 눈 뜨자마자 에쉬레 빵집에 가 줄을 섰다. 뼈가 시리고 피부 사이사이 추위가 스며들어 힘들었지만 먹어보고 싶다는 의지 하나로 1시간 정도 줄을 서서 빵 3종류와 쿠키 그리고 보냉백을 하나 샀다.


빵을 좋아하고 고기를 좋아하는 우리에게 버터는 에쉬레 라는 묘한 고집이 있는데 그 이전에 파리 샤르드골 공항에서 에쉬레 버터를 사서 들어오다 보안 검색대에서 걸린 경험 때문인 것 같다.

파리 시내 슈퍼에서 에쉬레 버터를 구입하고 호기롭게 공항에 갔던 그 날. 나는 버터가 고체라고 생각했고 (너무도 당연하게) 검색대 직원은 그것이 액체라고 말했다. (그도 너무도 당연하게)


When I bought this, This was solid.

- No. Butter is liquid.


정말 웃음꽃이 만개하는 상황이었고 결국 검색대 직원이 지퍼백에 우리가 사 온 두 덩이의 에쉬레 버터를 넣어 주며 Not okay for next time. 이라며 보내주어 겨우 들고 왔었다. 아직도 매번 에쉬레 버터를 살 때마다 웃게 되는 에피소드. 왜 나는 그토록 당당했던가.

다시 도쿄로 돌아가보자면. 생각보다 추웠고 사람은 예상대로 많았고 모든 것이 바쁘게 돌아갔다. 하지만 대부분 영어를 사용할 수 있어 소통이 용이했고 많은 것들이 서울 그 외의 대도시와 비슷해 익숙했다.


어떤 면에서는 고즈넉한 일본이었다가

또 어떤 면에서는 분주한 일본이었다가

도쿄는 분명 다른 도시와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숱한 일본 여행을 다녔었지만 주로 친구가 살고 있는 간사이 지방이 대부분이었던지라 도쿄는 정말 새로웠다. 오히려 다음에 여행을 가게 된다면 도쿄에 다시 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까지 했다. 나는 주로 여행지에서는 뜬금없는 다른 여행지를 생각하는 스타일이라 (예를 들면 베트남에 가서 괌을 생각한다던지, 대만에서 일본은 생각한다던지 하는 사람) 이 부분은 다소 긍정적인 예외였다고 할 수 있겠다.

다만 여행에 대한 생각을 해보게 되었는데. 요즘은 여행의 풍속도가 인스타그램을 중심으로 한 각양각색의 소셜 네트워킹을 따라가기 때문에 여행책이나 지도를 전혀 보지 않고도 가능하게 된 것 같다. 물론 나도 여행을 준비할 때 구글 보다는 네이버를, 네이버 보다는 블로그를, 블로그 보다는 인스타를 찾는 편이기 때문에 그것을 무조건 나쁘다고 비판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는 하지만.


다이칸야마 골목에 있던 - 어쩌면 그냥 지나칠 뻔 했던 - 작은 음식점이 제일 좋았던 걸로 봐서는. 꼭 인스타그램만이 정답이 아니라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소셜 네트워킹으로 점철된 여행만이 마냥 좋다고만은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골목에 있는 편의점 하나도 누군가의 사진을 좇아 가게 되는 요즘 여행의 모양새는 과연 어떤 것을 보여주는 걸까?

익숙하지 않은 여행지였던 도쿄 여행은 다행스럽게도 조금은 무모했던 것 같다. 아무리 찾아봐도 다 유명하다고 하니 대체 어디를 가야할 지 몰라 구글 지도에 잔뜩 별을 박아두고도 찾아가지 못했다. 그럼에도 발에 걸리던 넘버슈가나 블루보틀은 들러 보았고, 여러 명이 추천해준 다이칸야마는 오래오래 걸으며 서점도 카페도 가보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긴 했다.


하지만 그 장소가 가진 소소한 재미까지 과연 스스로 발견했던 걸까? 불특정 다수의 프레임 속의 익숙한 재미를 공감했던 건 아닐까?

그럼에도 낯선 도쿄에서 남편과 손을 부여잡고 이 골목 저 골목을 걸어다니고 또다른 골목에서 나와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는 소소한 재미들이 있어 좋았다.


차라리 잘 모르는 여행지여서 그 낯섬을 따라 놓아버린 의지가 원동력이었을까? 이처럼 차라리 모르는 게 많은 여행지가 돌이켜보면 재미있는 기억들이 많은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그렇게 도쿄에 다녀왔다.


여전히 여행책도 지도도 보지 않았지만. 구글 지도에서 나를 채근하는 별들에 현혹되지 않고 처음 가 본 동네에서 처음 타 본 버스를 타고 창 밖으로 도쿄타워를 봤지만.


나는 이 정도면 좋다고 생각했다.

여행은 이 정도여도 꽤 괜찮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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