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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Dec 26. 2018

방콕의 색깔

2018년 여름. 태국 방콕 두 번째 이야기.

사실 조금은 부끄러운 말이지만 나는 칼과 불을 무서워한다. 당연지사 요리를 잘 못하고 차라리 설거지를 잘 한다. 재료를 보면 맛이나 쓰임새보다는 색감과 신선도만 보고 고르는 그런 사람. 그럼에도 방콕에서 가장 해보고 싶었던 건 다름 아닌 요리 클래스였다. 한번쯤은 해보고 싶었다.

방콕 BTS 총논시(Chong Nonsi) 역

한국에서 인터넷으로 다른 쿠킹스쿨과 메뉴를 비교했고 솜퐁 쿠킹스쿨(Sompong Cooking School) 을 예약했다.


내가 신청했던 오전 클래스는 정해진 시간에 미팅 포인트로 가면 수업 전에 로컬 시장 투어를 함께할 수 있었는데, 이 때 함께 투어하신 분들과 한 클래스룸으로 배정받았다.

솜퐁쿠킹스쿨 (Sompong Cooking School) - 시장 투어

총논시 역에서 만난 스태프를 따라 시작 된 시장투어는 채소류부터 코코넛 밀크를 짜내는 과정까지 예상 외로 꼼꼼해주어 놀라웠다. 능숙한 스태프들이 시장의 원재료를 설명해주었고 앞치마 주머니에서 시중에서 구입할 수 있는 소스를 꺼내 비교해주어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솜퐁쿠킹스쿨 (Sompong Cooking School)

시장 투어를 끝내고 쿠킹스쿨로 들어갔다. 3-4층은 되어 보이는 건물의 층층마다 클래스 룸이 있었고, 창가를 에둘러 각자의 불과 웍이 준비 되어 있었다.


클래스룸에 들어가 테이블 보를 보자마자 ‘아. 이건 정말 사가야겠다.’ 싶은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이어서 보였던 타일에 또 한번 매료. 어쩜 형형색색 하나도 같은 무늬가 아닌데도 이렇게나 조화롭게 잘 두었는지 처음에는 조금 놀라기까지 했다. 방콕의 색감이 이렇게 화려한 거였구나.

솜퐁쿠킹스쿨 (Sompong Cooking School)

한참 테이블을 구경하니 각자의 재료가 소분 된 트레이가 주어졌다. 클래스에서 만드는 3-4종류의 음식들은 모두 각각의 트레이로 재료가 서빙됐고 왠만해서는 재료가 남지 않았다.


사실 시장 투어를 할 때, 작은 바구니를 하나씩 나누어 주길래 혹여나 장을 보라고 할까봐 걱정이 됐었다. 우리는 외국인이라 어쨌거나 재료를 구입하는 것부터 손질하는 법, 하다 못해 계량하는 법도 몰라 쉽게 남기고 버리면 어쩌나 하는 걱정들.


시장에서 실제로 사는 것들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쿠킹스쿨 자체적으로 이미 소분하여 준비해 둔 재료를 썼다. 내 트레이에 남는 건 물과 계란 껍데기 밖에 없을 정도로 꼼꼼하게 소분해주어 좋았다.

방콕 애드립 (Ad lib) 호텔

쿠킹스쿨을 마치고 호텔을 옮겼다. 그래도 명색이 결혼기념일 여행이었으니까 조금 여유로운 호텔에서 묵고 싶어 찾아 본 곳. 호텔을 온통 나무와 식물이 감싸고 있는데다 수영장은 크지 않지만 도심의 소리와는 먼 곳으로 두번째 둥지를 틀었다. 첫 번째 호텔만큼이나 좋았던 곳이었다.

방콕 애드립 (Ad lib) 호텔

수영장이나 도심 호텔보다 넓은 방 만큼 유명한 게 바로 이 곳의 조식이었는데 아침마다 여러 메뉴 중 하나를 골라 시킬 수 있었다. 과일이나 간단한 핑거푸드는 뷔페로, 커피나 티를 고르면 작은 티 팟에 담아주는 게 가장 좋았다.


방콕에서는 어디서든 길고양이를 볼 기회가 많았는데 호텔에서 조식을 먹을 때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덩쿨식물로 둘러싸인 벽 아래 틈에서 고양이가 빼꼼히 들어 와 테이블 위를 보무도 당당하게 걸어 다닌다거나, 밥을 먹는 우리 다리로 와서 가만히 앉아있기도 했다.

방콕 애드립 (Ad lib) 호텔

방콕 왕궁을 보러가기로 했던 날, 바로 결혼기념일 당일.


결국 왕궁 투어는 취소하고 오후 내내 수영장에서 놀았다. 한국에서 비행기 타기 전, 온 면세점을 다니며 모엣샹동을 한 병 사기에 이 무거운 걸 왜 사나 라고 생각했었는데. 수영장에 앉아 피자를 시켜 먹는 데 그 모엣샹동을 꺼냈다.


연애하는 동안에도 그리고 결혼하고 나서도 우리는 동갑내기 친구여서 끊임없이 장난치고 놀기 바빴는데, 이 날은 다시 생각해도 고마웠다. 내년 결혼기념일도 잘 부탁해.


그리고 피자 정말 맛있었다! 특히 수영장에서 수영하다가 시켜 먹었던 피자. 그리고 뜬금없지만 콜키지도 프리여서 잔을 가져다 달라고하니 술에 맞는 잔을 준비해주기도 했다. 기분 좋았던 휴식. 늦은 오후에는 투숙객들도 많지 않아 편하게 수영을 즐길 수 있어 더 좋았다.

저스트 녹 (Just Nok) 자전거 투어

방콕 여행 중 가장 충동적이었던 결정이자 재미있었던 것은 바로 저스트 녹 자전거 투어였다. 혹한기를 제외하고 한강변을 따라 자전거 타기를 즐기는 우리 부부는 자전거 투어를 보자마자 바로 이거라고, 호텔에서 논다고 왕궁투어도 포기한 와중에 자전거 타고 그 근처 사원을 돌 수 있다니 절호의 찬스라고 생각하고 바로 예약했다.


야간 투어는 한 사람에 1200바트, 우리 돈 5만원 남짓이었고 하프데이 투어 중 낮에 하는 투어, 풀 데이 투어 중 섬 투어 등도 있었다. ( http://www.justnoktours.com​ )

저스트 녹 (Just Nok) 자전거 투어 - 왓 아룬 야경

자전거를 타고 방콕 왕궁을 지나 꽃 시장과 야채 시장을 지났다. 그리고 대학가를 지나 배를 타고 왓 아룬으로.


강변 레스토랑에서 왓 아룬을 보긴 했지만 직접 가까이 가서 보니 너무 예뻤다. 아마 자전거로 가지 않았더라면 보지 못했을 한 밤의 왓 아룬. 가까이서 보니 정교한 무늬들과 매끈한 곡선들이 아름다웠다. 가이드가 중간중간 유적지들을 소개해주고 사진도 찍어주어 더욱 만족스러웠다.

저스트 녹 (Just Nok) 자전거 투어 - 왓 포 야경

그리고 가게 된 왓 포 사원, 방콕에서 규모가 가장 크고 오랜 전통을 가진 곳. 투어 일정에 사원 방문이 있어 미리 스카프를 준비해 가길 잘 했다. 반바지와 다리를 가리고 들어 가 왓 아룬과는 또 다른 사원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사원의 벽면에는 마사지와 관련된 벽화들이 있었는데 실제로 전통 타이 마사지 교육기관이 운영되고 있다고 했다. 이 곳도 역시 저녁 시간이라 간간히 작은 투어 그룹들이 올 뿐 여유로워 좋았다.

저스트 녹 (Just Nok) 자전거 투어 - 방콕 꽃/야채 시장

여행지를 선정할 때 내 심연의 편견과 고정관념이 얼마나 큰 기준이 되는 지, 방콕을 선택하고 나서부터 쭉 변덕을 부리던 나의 편견을 옅게 만들어주었던 여행이었다.


자전거를 타며 보았던 시장 곳곳의 풍경과 시원했던 저녁 바람이 생각난다. 쿠킹스쿨의 화려했던 클래스 룸도 간간히 떠오른다. 그리고 오 마이 로띠. 방콕이 가진 여러 색깔들을 더 늦기 전에, 스스로 낯선 여행지에 겁먹기 전에 또 보러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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