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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Dec 30. 2018

한 달에 한 번

2018년 여름에서 겨울까지, 대만 타이베이.

한 여름의 타이베이

대학에서 외국어를 전공한 덕에 입사 후 여권 면이 부족하도록 해외 출장을 다녔다. 결국 새 여권을 받았고 아마도 그 즈음부터 타이베이 출장을 다니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게 바로 초여름 이었으니까 그렇게 시작한 출장이 겨울이 되어서야 마침내 끝이 났다. 그렇게 지난 계절의 타이베이가 고스란히 사진첩에 남아 있어 이 글을 적어 본다.

한 여름의 타이베이

10년 전 캄보디아 여행을 가던 중 타이베이에서 환승을 했던 게 아마 나의 첫 타이베이 기억이 아닐까 싶다.


불 꺼진 공항의 전등이 삽시간에 흔들렸던 기억,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할아버지 한 분이 의자 아래로 반듯이 누워 “지진이다!” 라고 외쳤던 기억. 그 이후로 두 번 정도 더 타이베이에 갈 기회가 있었지만 딱히 기억할 만한 것들은 없었다. 아마 그 몇번의 방문 중 가장 의미 있었던 건 상인수산(上引水産)이 아니였을까.

상인수산 (上引水産)

타이베이를 다니면서 가장 좋아했던 곳이 어디냐고 물어본다면 단연 타이베이 수산시장인 상인수산(上引水産)이라고 대답할 거다. 식사 시간대에는 늘 대기가 있고 현금 계산 밖에 안 된다는 불편함을 감수하면서도 좋아하는 곳. 맨 처음 선배를 따라 갔다가 그 분위기와 맛에 반해 버려 어쩐지 매번 가게 되었다.


상인수산에는 스시 바와 샤브샤브 그리고 BBQ 식당이 있었는데 스시 바는 스탠딩, 나머지 두 곳은 테이블에서 식사를 즐길 수 있다. 스시 바의 디럭스 스시 세트가 우리 돈 25,000원 정도로 싼 가격은 아니었지만 나에게는 이미 맛집. 그리고 장국이 예술. 맥주나 와인을 곁들여도 좋다.

화산 1914 창의문화원구

또 하나의 좋아하는 장소는 화산 1914 창의문화원구로 카페와 상점과 예술단지가 조화롭게 뒤섞여 있는 곳인데 사진 속의 카페 겸 잡화점인 소일자(小日子)도 그 곳에 있었다. 대만의 문구류와 잡화를 소개하고 판매하는 곳.


원래 이 공간은 양조장으로 쓰였다고 하니 인더스트리얼한 문화는 우리나라 서울의 성수동과 비슷한 것 같다.

화산 1914 안의 스타벅스

그 넓은 공간 중 어딘가에는 숲 속의 스타벅스도 있었다.


예전에는 여행지 곳곳의 스타벅스에서 시즌 MD를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는데 이제는 스타벅스 말고도 로컬 커피집들을 찾는 것이 더 재미있어 이전의 재미는 관둔 지 오래였다. 물론 벚꽃 철의 일본 스타벅스 MD나 크리스마스 시즌의 대만 스타벅스 MD는 조금 다른 사정이긴 하다.

타오위안 공항의 스타벅스

몇 번이나 기웃거리며 들어보기까지 했던 법랑 컵은 결국 마지막까지 사지 않았지만 마지막 출장에는 산타 곰돌이 키링을 사 왔다. 왜 인지 당분간 갈 일이 없을 것 같아서.

한 여름의 타이베이

여름에 가게 된 어느 한 번의 출장을 마치면서 마침내 타이베이에서 주말을 보낼 기회가 생겼다. 처음으로 캐리어에서 반바지와 슬리퍼를 꺼내 호기롭게 밖으로 나섰다.


한 여름의 타이베이는 어찌나 덥던지 우리나라 폭염에 습기를 끼얹은 더위였다. 실내에서 고상하게 원피스나 입고 일할 때는 몰랐던 더위라 당황했지만 왠지 모를 이국적인 느낌에 부지런히 구석구석을 걸었다.

BUT. we love butter 쿠키살롱

그렇게 들러 본 쿠키살롱 BUT. we love butter. 처음에는 동네가 너무도 고상하고 여유로워 이런 곳에 있는 쿠키집이라면 분명 예사롭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고, 그 예상은 정말로 적중했다. 입구는 영화 킹스맨의 테일러샵을 닮아 독특했고 살롱 내부는 몹시도 감각적으로 꾸며져 있었다.

BUT. we love butter 쿠키살롱

자리를 잡고 앉으면 오늘의 쿠키와 간단한 차를 내어 주며 주문할 수 있는 쿠키가 담긴 메뉴판을 건넨다. 카페가 아닌 쿠키살롱이기 때문에 메뉴판에서 고르는 쿠키는 당장 먹을 용도가 아닌 구입 그 자체에 목적을 두어야 한다.


두어 번 정도 다양한 쿠키를 구입해 보았는데 선물용으로도 간식용으로도 좋았다. 쿠키를 고르기 어렵다면 포장지를 고르는 것도 하나의 방법. 6개입과 10개입이 2-3만원 전후로 역시 싸지 않지만 이 곳 역시 나에게는 이미 맛집.

우육면 집 시유 (時寓。Shiyu)

어쩐지 쉬어 가는 동안 먹고 싶었던 것들만 먹은 느낌이 있긴 하지만, 정말 아름답게 꾸며 진 우육면 집에 들러 간단히 식사를 했다.


조금은 낡은 감이 없지 않은 건물 2층에 자리한 시유 (時寓。Shiyu) 는 각종 앤틱 가구, 시계들로 꾸며져 있었다.

우육면 집 시유 (時寓。Shiyu)

좋아하는 많은 것이 모여 있던 곳. 예를 들면 크고 넓은 원목 식탁과 희고 군더더기 없는 벽, 정돈된 식재료와 선반같은 것들이 그러했다. 이런 다이닝 룸 대환영!


우육면은 넓거나 일반인 면을 고르거나, 맵거나 일반적인 탕을 고르는 등 선택할 수 있었고 조미료 없이 요리한다고 설명해주었다. 타이베이에 많은 우육면 집들이 있겠지만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즐기기에 이 곳도 참 좋았다.

신베이터우(新北投) 도서관

한 여름이었지만 꼭 한 번 가보고 싶었던 온천도 들렀다.


여러모로 기동력이 떨어져 버스를 타고 1시간 여를 달려 신베이터우(新北投)의 온천에 가는 길, 나무 외벽이 아름다운 도서관에 들렀다. 이맘때쯤 푹 빠져있던 어떤 소설책 속의 목조건물이 생각 나 여기저기를 구경했었다.


물론 우리나라도 녹음에 파묻힌 도서관이 많겠지만 사실 도심에서 발견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라 이런 도서관들을 보면 내심 부럽기도 했다. 특히 어린이 구역이 꽤 잘 나누어져 있어 어린이들도 많았던 작지만 알찬 느낌의 도서관.


최근에 한국에서 본 이런 느낌의 도서관은 아마 대학 캠퍼스 내 중앙 도서관이 마지막이었던 것 같아 아쉬웠다.

신베이터우 온천 (金門, Golden Hot Spring)

도서관을 빠져 나와 미리 전화로 예약해 둔 골든 핫 스프링(金門)온천에 갔다. 온천을 길게 즐기며 숙박까지 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해 90분 코스로 예약했는데 피로를 풀기에 여간 좋은 게 아니였다.


점심보다 조금 이른 시간으로 예약하니 할인을 받아 90분에 우리 돈 3만원 정도가 나왔다. 2인용 프라이빗 룸에 냉온탕이 각각 있고 간단히 옷을 갈아 입고 짐을 보관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미리 사 둔 망고에 맥주까지 곁들이니 이런 호사가 따로 없었다.

샹산(象山)에서 본 101타워 야경

온천을 즐기고 노을지는 시간에 맞춰 샹산에 올랐다.


코끼리 상아를 본 뜬 글자 ‘상(象)’ 이라는 이름을 가진 산. 산 곳곳에 코끼리 모양의 벤치가 귀여웠고, 관광객도 현지인들도 가볍게 산책을 즐기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샹산(象山)에서 본 101타워 야경

우리나라에서도 가볍게 오를 수 있는 동산들이 꽤 있고 제주도에 내려가면 등산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오름이라면 금방 올라가 시원한 공기를 마음껏 들이 마시고 내려오곤 하니까. 이런 ‘걸을거리’들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은 없었는데 막상 샹산에 올라 야경을 구경하니 왜 인지 조금 부럽기는 했다.


여러모로 짧았던 일정을 마무리하면서 온천에 등산, 그리고 야경까지 구경하고 호기롭게 한국으로 돌아왔다. 아마 당분간 타이베이 출장이 없겠지 라는 마음이었던 것 같다.

짧은 가을의 타이베이

그로부터 오래지 않아 나는 또 같은 호텔 방에 앉아 차와 맥주와 망고따위를 사 와 앉아 있었다. 아마 지난 출장의 끝에 여유로운 주말을 보내지 못했더라면 진작에 질려버렸을 텐데 라는 마음으로 위안을 삼았다.

초 겨울의 타이베이

그리고 얼마 전 일을 마무리 하러 갔던 마지막 출장 때, 처음으로 비 내리는 타이베이를 마주했다. 겨울의 타이베이는 이렇게 비가 온다고 했다. 돌이켜보니 그 잦은 출장에 늘 날씨가 좋았다는 것도 감사, 아프지 않고 잘 먹고 잘 자고 일한 것도 감사했다.


우스갯소리로 이렇게 공을 들이고 정성을 들인 곳이 또 어디 있겠냐고 말했지만 할 수 없을 것 같아서 무섭고 걱정되는 마음이 앞섰던 일이었다. 든든한 선배와 동료들이 처음을 열어주지 않았더라면 혹여나 뒷받침이 되어주지 않았더라면 한 달에 한 번 공을 들인다해도 택도 없었을 일.


앞으로는 일 생각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가보련다. 타이베이. 이왕이면 여행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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