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이사 갑니다

첫번째 신혼집 Y동에서 두번째 아파트 D동으로의 이사 이야기.

by 나무

신입사원 시절, 서울 어귀에 직장을 잡고 경기 남부의 부모님 댁에서 출퇴근을 했다. 아침엔 머리에서 물이 뚝뚝 떨어졌고, 공항 대합실 끝 화장실은 화장대가 되었다. 퇴근 후 교통체증이 싫어 차라리 늦은 밤 귀가하기도 했고 괜한 오기로 지하철을 타고 기차를 타고 버스를 타가며 집에 갔다.

그렇게 2년 반이 지나고 나는 독립을 했다. 기다란 경의선 숲길 공원으로 유명한 연남동 안쪽 골목의 신축 건물. 건물은 예뻤고 집은 깔끔했다. 왕복 4시간의 통근 시간이 왕복 1시간 이내로 들어오던 날의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에 결혼을 했고 바로 위 층으로 이사를 했다. 커다란 식탁을 들이고 넓은 침대를 샀다. 같은 듯 다른 짐들이 집을 채웠지만 여전히 같은 건물 같은 동네. 그렇게 첫 번째 이사를 했다. 이사라고 하기에 조금은 거창한.

그렇게 시작한 서울살이 만 3년 6개월. 나의 첫 베이스캠프이자 우리 부부의 첫 신혼집을 떠난다.


나는 연남동을 좋아했다. 우리 부부의 크고 작은 기쁨과 슬픔이 담긴 곳, 그리고 나와 나의 친구들이 머물었던 곳. 주말이면 침대를 박차고 나와 향했던 커피숍이 있고 부모님을 모시고 근사하게 식사할 곳이 있었던 동네.

연남동에서 머문 지난 3년여의 시간 동안 동네는 꽤 많이 바뀌었다. 골목의 커피숍이 줄기차게 없어졌다 생기고, 우리가 좋아하던 ‘토미 베이커리’도 사라졌다. 옛 아파트의 외관 도장이 바뀌고 어느 계절엔가는 공원의 나무들도 모두 바뀌었다. 분리수거 다음 날엔 쓰레기 냄새가 골목에 진동했고, 더운 여름날 출근길에는 여전히 술에 취한 청춘들이 공원을 메웠다. 분기마다 헐리는 건물들과 공사장 그리고 이내 지어지는 새 건물의 외관을 구경하며 시간을 보냈다.

아파트 생활이 익숙한 나에게 5층짜리 다세대 건물에서의 삶은 생경했다. 경비원이 없는 건물을 들어올 때마다 앞뒤 좌우를 살폈고, 마땅한 쓰레기 장이 없어 건물 앞 쓰레기 더미에 내 것을 더하는 수밖에 없었다. 동네에 유행처럼 번지는 게스트하우스와 에어비엔비에서는 관광객들이 쏟아져 나왔고, 주말이면 마실 나온 인파로 골목이 가득 찼다.


어쩌다 한 번 울렸던 화재경보에 피할 곳 없이 갇힐 뻔한 경험을 하고 난 뒤 창문을 열고 이불을 돌돌 말아 뛰어내리는 시뮬레이션을 머리로 여러 번 해보기도 했다. 아파트였다면 방재 문을 열고 나가 가만히 소방관을 기다렸을 겁 많은 내가 이 건물이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무모한 상상이었겠지.


왜 이사 가냐 묻는 집주인 아저씨에게 제대로 대답해드리지 못했지만 사실 이유가 딱히 떠오르진 않았다. 특별한 사유가 있는 건 아니었다. 다만 조금 더 정돈된 삶을 살고 싶었을 뿐이라고, 대답할 수는 없었다.

이사를 결정하고 그저 집을 옮기는 것뿐이라고 생각했던 이사가 이렇게 고될지 몰랐다. 한강을 사이에 두고 위로 아래로 스무 개에 달하는 집을 봤고, 열 개에 달하는 부동산을 방문했다. 세 개가 넘는 적금을 중도 해지해 계약금을 내며 현실을 깨닫는 날엔 눈물이 날 정도로 힘들었고, 새로운 집에 대한 즐거움으로 금세 털고 일어났다. 주말마다 낯선 이에게 우리 집을 보여주었고 우리 역시 낯선 집을 방문했다.

그렇게 우리는 연남동을 떠나기로 했다. 조금 더 정돈된 삶 아니 조금 덜 간단한 삶을 살기 위해 이사를 가기로 했다. 지난 추석 와인 한 병을 들고 집주인 아저씨에게 가 마지막 명절 인사를 전했다. 아마 다음 명절에는 이 집에 없을 것이라고 그동안 감사했다 전했다. 첫 베이스캠프였던 연남동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