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낯선 집을 염탐하는 실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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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아침저녁 쌀쌀하고 낮 햇살엔 땀이 났던 그야말로 초봄의 어느 날. 첫 번째 낯선 집을 보았다. 과하지 않은 수준의 대출이면 되는 합리적인 전세. 아마도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어쩌면 이사를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때가.


여름이 되고 남편과 이사에 대한 이야기를 충분히 나눈 후 다시 그 동네로 갔을 땐 전세 가격이 무려 6천만 원이나 올라있었다. G동 끝에 있는, 그러니까 지하철 역에서 조금 멀고 전망은 좋지만 거의 등산 수준의 언덕 위 아파트 정도가 겨우 우리 예산에 맞는 집이었다.


서울 전셋값은 이렇듯 달마다 천만 원씩 오르는 것이었다.

수개월을 꿈꿨던 G동으로의 이사는 마치 신기루 같았다. 나에게 이사란 ‘연남동에서 G동으로’ 옮기는 일 그뿐이었는데 이제는 그렇지 않았다.


유난히 태풍이 연달아 왔던 늦여름, 스무 개에 달하는 낯선 집을 보았다. 얼마 전 종영한 ‘타인은 지옥이다’ 오프닝 시퀀스의 임시완처럼 지하철을 수없이 갈아탔다.


처음으로 30평 대의 29층 탑층 집을 본 날. 넓은 거실에서 보이는 탁 트인 서울 전경이 너무 멋졌다. G동 언덕 위 낡고 허름했던 20평 대 아파트가 모두 잊힐 만큼 넓고 멋졌다.


집주인이 급하게 이사를 결정하면서 5년 전 새로 한 인테리어가 아깝지만 조금 싸게 나왔던 올수리 매물. 모두 좋았지만 출퇴근이 번거롭고 주상복합의 20만 원이 넘나드는 관리비가 부담되어 포기했다. 집주인의 인테리어 취향과 나의 인테리어 취향이 정반대였던 것도 한몫했지만.


그렇게 몇 번의 주말 동안 낯선 집을 염탐하는 실례를 끼쳤다.


아침이나 저녁이나 주중이나 주말이나 그 각자의 번거로움에 죄송했던 발걸음. 비가 오는 날엔 옷이 젖어 걱정이었고 퇴근 후 급하게 잡힌 집을 볼 땐 구두 속 맨발이 부끄러웠다.


어느 날은 부동산 사장님이 젊은 나이에 예산이 크다며 놀라워했고, 어느 날은 내 예산을 비웃었다. 내 나이보다 오래된 집을 보기도 했고, 20년 전 엄마 아빠와 함께 살던 아파트와 똑같이 생긴 아파트를 보기도 했다.


이렇게 보잘것없고 구질구질한 집만 보여주다니 탓할 곳 없는 화가 넘쳐났다. 조급하지 않으려 했지만 조급해졌고, 충동적이지 않으려 했지만 집을 볼 수록 떨어지는 체력에 충동적으로 결정하게 될까 겁이 났다.

나이 서른에 원래 N억짜리 아파트 전세를 구하는 게 맞는 건지 진지하게 고민한 날도 있었다. 서울에서 계속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건지 아주 여러 번 나에게 물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강뷰 아파트를 구경할 기회가 생겼다.


올림픽대로에서 아파트로 바로 진입 가능한 교통의 요지 D동의 아파트. 부엌과 작은 방에서 한강 밤섬의 전경이 내려다 보이던 멋진 집. 밤에는 창문 가득 불 켜진 국회의사당이 들어오던 작은 방에 이미 식탁을 들여놓는 상상까지 마친 상태였다.


남편을 데리고 다시 한번 보러 간 날, 비로소 그 집 곳곳의 습하고 음침한 골짜기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게다가 집주인이 한국에 없다는 이유로 조금은 과한 부동산의 방어까지 더해지니 모른 척 넘어가려 했던 여러 단점들이 한꺼번에 나를 밀어냈다. 도배와 장판, 부엌과 화장실 어느 곳 하나 손보지 않을 곳이 없었던 아주 낡고 불쾌했던 집.



추석 연휴가 시작되기 바로 직전의 어느 주말. 살고 있는 세입자는 너무 바빠 만날 수 없지만 그저 빈 집이라도 보겠냐는 부동산의 연락에 D동의 또 다른 아파트에 갔다.


이미 D동에 나와있는 열 개가 넘은 매물을 본 데다 한강뷰의 불쾌했던 기억까지 더 해져 피곤한 상태였지만 집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이 집인 것 같았다. 아니 이 집이었다.


거실은 작지만 통창이 멋진 집. 싱크대와 화장실이 깨끗하고 작은 베란다가 있는 28평형의 널찍한 공간. 이미 선약해 둔 G동의 마지막 매물을 보는 동안에도 계속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 남편 퇴근 시간에 맞추어 다시 한번 양해를 구하고 집을 다시 찬찬히 둘러보았다.


천장의 야광별과 아이 눈높이마다 붙여진 스티커에 낙서들이 못내 아쉬웠지만 이 정도면 됐다고 생각했다.


연남동으로 돌아와 동네 이자카야에 앉아 늦은 저녁과 맥주를 곁들였다. 언젠가 회사에서 괴로웠던 날에도 그 이자카야에 앉아 맥주를 마셨었지. 지금보다 아주 조금일지라도 덜 성숙했을 과거의 내가 머물던 공간이 3년이 넘게 한 자리를 지켜주었다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었다.


그렇게 소소하고 위대한 연남동을 떠날 준비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