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외) 연희동 이야기

내가 좋아하는 연희동. 매뉴팩트 커피 연희 본점.

by 나무

이사한 지 어느덧 3개월, 창 밖 목련 나무에서 꽃이 피려고 하는 걸 보니 정말 봄이 오고 있나 보다. 추운 날씨를 핑계로 아직 동네를 파악하지 못한 나는 옛 동네인 연남동과 망원동 그리고 여전히 좋아하는 연희동에 간다.


아파트로 이사 온 후 그간 꿈꾸었던 '분리수거'의 정례화를 이루었고 (아파트라면 당연한 거지만 연남동에서는 건물 앞에 섞어 내놓아 여간 마음이 불편했었다.) 밤마다 취한 이들의 불필요한 소음을 들으며 잠들지 않아도 되어 좋지만, 그래도 아쉬운 점 하나를 꼽으라면 "걸어서 연희동을 갈 수 없는 것"이라고 대답하고 싶다.

매뉴팩트커피

연남동 별천지를 조금만 벗어나 연희동 굴다리를 지나면 길 양 옆으로 중국 음식점이 나오고, 과일이 언제나 맛있는 '사러가' 마트 그리고 오징어 꼬마 김밥의 알싸함이 즐거운 '연희 김밥', 매진이 잦아 미리 예약해야 하는 '폴 앤 폴리나'와 카레 전문점 '히메지'가 쉼 없이 이어진다. 그 골목 초입에 내가 연희동에서 가장 좋아하는 '매뉴팩트커피' 가 있다.


처음 매뉴팩트에 갔을 때 그 무심한 위치 선정에 한 번 놀라고, 그 당시 3천 원이었던 커피 가격에 또 놀랐다. 지금은 조금 올라 4천원에서 5천원.


매뉴팩트커피


바리스타가 주문을 받고 커피를 만들어 주는 구조. 어느 오픈 키친도 이 곳을 따라잡을 수 없다. 주문지를 가지고 가는 바리스타의 뒤꽁무니부터 나한테 커피를 가져다주는 일거수일투족을 볼 수 있는 곳. 두세 종류의 콜드 브루도 항상 인기가 좋지만, 내가 주로 마시는 건 차가운 플랫화이트 혹은 따뜻한 모카. 계절에 따라 골라 마신다.



듀라렉스 작은 컵에 나오는 플랫 화이트는 마음만 먹으면 세 모금에도 가능하지만 다른 곳에서 마시는 것과 비교할 수 없다. 토요일 오전 매뉴팩트에서 아침 볕을 받으며 마시는 그 기쁨은 이루 설명할 수 없다.


성인 열 명 정도면 꽉 차는 아담한 사이즈의 카페가 때로는 여유롭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붐빈다. 문 앞에서 강아지들이 주인과 함께 커피를 기다리기도 하고, 부모님 품에 안긴 아이가 카페 공간을 함께 채우기도 하는 곳. 우리 부부가 연애 중이던 어느 크리스마스이브에도, 혼인신고를 했던 날 오후에도, 기쁜 날 슬픈 날 어느 날에 가도 언제나 동일한 위로가 되는 곳인 매뉴팩트는 얼마 전 7주년을 맞이했다.



좋아하는 카페가 오랜 시간 한 곳에 있어주는 것은 아주 감사한 일. 우리가 다닌 지 어느덧 4년 차, 일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문을 열지만 저녁 6시면 문을 닫아 주중엔 갈 수 없고 언제나 토요일 오전에 들르게 되는 곳이라 #토요일엔매뉴팩트 라는 개인적인 해시태그를 만들어 그곳에서의 시간을 남긴다.



매뉴팩트를 갈 때마다 종종 이런 생각을 한다. 이렇게 잔잔하게 좋아하는 몇 군데만 내 곁에 두고서 시간 가는 지 모르고 살다보면 1년이고 10년이고 그저 세월이 지나가겠다고. 이사한 동네에도 좋은 곳이 많을텐데. 날이 개면 길을 나서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