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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Oct 07. 2020

10월 5일 월요일

어쩌다 보니 48시간이 지나 올리는 일기

1. 9월

돌이켜보면 9월의 많은 날들은 느리지만 분명히 기억나는 꽤 좋은 한 달이었다. 여름 내 내리던 비가 멈추고 시작된 가을. 서늘한 바람 몇 줄기로 환기되던 가을 아침과 매일같이 높고 푸르던 멋진 하늘.


거의 한 달이 다 되는 시간 동안 남편과 나란히 식탁에 앉아 아침이면 커피를 내려 마시고 점심과 저녁을 차려 먹던 고되지만 알찬 시간을 보낸 것이 사뭇 큰 힘이 되었던 달.


추석을 지내고 10월이 되니 여름이 지난 것만큼 9월이 끝난 게 아쉬운 기분이 들었다. 슬리퍼를 신발장에 집어넣고 반바지를 잘 개켜 넣어두는 새로운 계절. 10월에도 좋은 날들만 가득했으면.


2. 기념사진

결혼 준비를 하면서 과감히 혹은 무모하게 생략했던 스튜디오 촬영을 대신해 종로 계동의 물나무 사진관에서 사진을 찍었다. 10장이 조금 넘는 사진을 찍고 여러 주를 기다려 맘에 드는 1장을 골라 크게 뽑았다.


그 이후로 결혼기념일마다 물나무 사진관의 폴라로이드로 기념사진을 찍기로 했지만 1주년이 지나고는 사진관의 필름 소진과 가격 인상으로 그 계획은 무산됐다. 멈출 법도 하지만, 막상 찍어두면 1년 후 새로 찍은 사진과 비교해서 보는 게 은근히 재미있던 터라 다른 사진관에서 사진을 찍기로 했다.


그렇게 작년 결혼기념일부터 연희동 사진관에서 사진을 남긴다. 돌이켜보니 사진관의 문제라기보다 매 년 꾸준히 부지런히 기념사진을 남기는 것이 문제였다. 한여름에 결혼한 우리는 기념사진 속에서 늘 가을을 향해 힘차게 달려가고 있으니 내년쯤이면 겨울 코트를 걸쳐도 이상하지 않을 지경.


올해 찍은 사진은 냉장고 앞에 걸어뒀다. 이제껏 찍은 사진 중 가장 덜 예쁘게 나왔지만 아무렴 뭐 어때. 그저 매년 달라지는 우리 모습을 보는 재미가 더 크니까.


3. WWK

추석 연휴 동안 왓챠에서 가장 보고 싶었던 ‘와이 우먼 킬 (why women kill)’을 봤다. 색감과 배우들의 연기 그리고 OST까지 모두 마음에 들었고 시대별 주인공들을 모두 다양한 직업의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해 더 맘에 들었다.


한 개의 시즌 열 개의 에피소드뿐. 영화 500일의 썸머의 마크 웹 감독과 위기의 주부들 작가가 만든 블랙 코미디.


60년대의 볼거리는 톤이 한층 업되어 발랄했던 색감이 단연 최고였고 80년대의 볼거리는 루시 리우의 의상, 그리고 2010년대의 볼거리는 섬뜩한 눈동자였다.


와이 우먼 킬을 2박 3일에 걸쳐 다 끝내고 나니 오매불망 기다렸던 비밀의 숲도 끝났다. 그 역시 할 말이 많지만 TV 앞에 하루 종일 앉아있는 게 싫어 작은 방에 넣은 내가 추석 내내 드라마만 끼고 본 셈이니 이만 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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