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월요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무 Oct 13. 2020

10월 12일 월요일

간 밤의 꿈을 까먹기 전에 쓰는 일기

1. 일에 대한 생각

어느덧 복직 3주 차 월요일 아침. 운이 좋게도 추석과 한글날 연휴 덕에 적응이랄 것도 없이 쏜살같이 복직 초반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휴직과 복직이 반복되며 맡은 업무의 경계도 옅어졌다. 모든 일이 그렇듯 겉은 비슷하고 속은 다른 일을 하며 예상외로 많은 에너지를 소진한다. 그 덕에 아침이면 알람 소리에 겨우 일어나고 저녁이면 숨도 쉬지 않고 잠에 든다.


1년 365일 개인적인 일정과 출장 일정을 조율해가며 주말에도 밤에도 회사일을 처리하고 고민했던 내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올해는 정말 낯선 한 해였다. 아마 이렇게 시작되어 버린 낯선 회사 생활은 내년에도 또 그 이후에도 영향을 미치겠지.


휴직 초반 나는 일하지 않는 하루하루를 보내며 은근 우울했던 것 같다. 집에서 뒹굴거리는 성격도 못되는데다 원래 하던 일을 칼로 무 자르듯 내려놓지 못해 알음알음 업무를 처리하기도 했다. 어느 밤에는 잠 못 들어 해가 뜰 때까지 소파에 누워있기도 했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어찌 시간을 떼워야할 줄 모르고 하염없이 걷기도 했다.


첫 번째 휴직을 시작하면서 매 달 알려오는 출근 여부에 어쩔 수 없이 마음이 쓰여 주로 괴로웠다. 두 번째 휴직은 끝이 있었던 덕에 꽤 세련되게 잘 보냈던 것 같다. 모든 것은 적응하기 나름이라는 생각에 씁쓸하기도 한 그런 상황.


그저 지금은 마지막 출근일까지 최선을 다해 업무를 마무리하고 최대한 폐 끼치지 않고 휴직에 들어가고 싶다.


2. 꿈

작년 여름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나는 외가에서 가장 큰 맏이이자 첫 손주여서 외할머니의 사랑을 정말 많이 받았다. 어렸을 때는 어려서, 어른이 되고는 어른이라서 그저 예쁨 받는 이유도 다양했다.


작년 출장의 파도 속에 마지막 도시 마지막 날을 앞두고 할머니의 부고를 들었다. 사실 실감이 안 나서 눈물도 안 날 줄 알았는데 왈칵 쏟아지는 눈물을 겨우 참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아주 먼 길을 돌아 자정을 넘기고서야 겨우.


할머니는 꽤 오래 아팠지만 그래도 나와 남편을 보면 금방이라도 일어나 걸을 것처럼 밝게 웃어줬다. 결혼식 사진을 보며 가지 못해 미안한 마음을 보이기도 하고, 언제고 내 손을 꼭 잡고 잘 가라고 말해주기도 했다. 돌아가시기 전엔 치매가 와서 언젠가는 내 손을 잡고 이모 이름을 불렀는데 그게 너무 속이 상해 엉엉 울었더니 할머니도 금세 정신이 돌아와 나를 보고 같이 울었다.


이번 추석은 할머니가 떠난 첫 추석. 할머니가 만들어주던 송편이 없어 이번 해엔 집 송편을 한 알도 못 먹었다. 할머니가 엄청나게 보고 싶었다. 추석 내내 계속 하루도 거르지 않고 할머니를 생각했다. 그러더니 어제 꿈에 할머니가 나왔다! 돌아가시고 나서 딱 한 번 꿈속 빵집에 들러 단팥빵을 사달라면서 엄마는 안 보고 간다고 홀연히 떠난 이후로 일 년도 넘게 꿈에 안 나오더니 드디어 꿈에 나오다니 너무 기뻤다.


할머니는 얼굴이 뽀얗게 젊어져서는 나에게 헤진 행주는 그만 쓰고 본인 손에 쥐고 있던 덜 헤진 행주를 주며 이걸 쓰라 했다. 촌스러운 분홍색 부직포 행주. 꿈속에서도 그 장면이 너무 웃겨 아무 말도 않고 앉아있는 할머니한테 여러 번 되묻다가 아침이 됐다. 엄마는 줄 거면 예쁜 꽃을 주고 가지 행주를 줬다며 타박했고 나는 할머니를 만나서 기뻤다. 식탁 안 닦고 그냥 잠든 나에게 청소 좀 열심히 하라고 잘 살라고 건강하라고 일 년만에 내 꿈에 왔겠지 할머니 너무 늦지 않게 내 꿈에 또 와서 먹고 싶은 거 걷고 싶은 곳 같이 걷자 할머니. 보고 싶네. 꼭 천국에서 만나자.



매거진의 이전글 10월 5일 월요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