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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Feb 27. 2019

미드타운을 걸었다.

2019년 겨울. 미국 뉴욕 두 번째 이야기.

뉴저지에서 이틀, 그리고 맨하튼에 넘어와 마침내 제대로 된 여행을 시작하던 날. 출근하는 사람들과 노란 스쿨버스들 사이로 설레는 첫 발을 내밀었다. 사실은 시차 적응에 실패해 새벽부터 일어나 부지런히 일정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던 거지만.


아무렴 뉴욕이어도 아침 7시에 문 연 곳은 베이글 집과 카페들이 전부인 데다 그마저도 Lower Manhattan 부근이라 호텔 앞에 떡 하니 있는 센트럴 파크를 걷기로 했다.

미국 뉴욕 센트럴파크

뉴욕에 가기 전부터 앙상한 나무들로 스산한 겨울 풍경을 예상하고 갔던 터라 그저 춥지 않은 날씨와 잔잔해진 바람에 감사하며 산책을 이어갔다.


남북으로 4km에 달하는 공원 전체를 걸을 수는 없었고, 남쪽의 콜럼버스 서클(Columbus Circle)부터 넓은 잔디밭으로 유명한 쉽 미도우(Sheep Meadow)를 지나 3분의 1 지점까지 못해도 한 시간여를 걸었다.

미국 뉴욕 센트럴파크

봄이나 여름 아니 가을까지만 해도 쉽 미도우에 앉아 일광욕을 하는 호사를 누렸을 텐데, 아쉽게도 겨울에는 웬만한 잔디밭들을 통제시켜 두었다. 공원에도 자생력이 필요하고 회복되어야 하는 일정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니까.


서울 집 앞 작고 좁은 공원에도 일정 정도의 강제 휴식시간이 주어졌으면. 공원을 만들고 또 가꾸어 가는 건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의 의지와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미국 뉴욕 센트럴 터미널

공원을 걷고 나오니 마침내 도시가 환해졌다. 맨하튼의 아름다운 스카이라인은 모두 고층 건물들의 꼭짓점들이 이어져 만들어진 건데 그걸 잊고 있었다. 시내 곳곳에 해가 들어 밝아지는 데에 예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려 새삼 묘한 기분이 들었던 아침.


그렇게 높은 빌딩 사이를 지나 꼭 가보고 싶었던 뉴욕 그랜드 센트럴 터미널(Grand Central Terminal)에 들렀다. 들어서면서부터 그 규모와 화려함에 압도되던 웅장하고 멋진 곳.

미국 뉴욕 센트럴 터미널

터미널이라기보다는 뉴욕 한가운데에 있는 유적지를 보는 기분으로 찬찬히 둘러봤다. 우리네 버스 터미널이나 공항에서 보이는 디지털 모니터나 LED 전광판 없이 레트로 한 출도착 안내를 고수하는 멋진 모습. 그리고 과거 어디로의 열차표를 팔 법한 우아하고 고상한 티켓 부스까지.

미국 뉴욕 센트럴 터미널

그중에서도 아름다움의 절정은 천장 벽화에 있었다.


민트색이 곱게 발린 천장에 별자리들이 수놓아져 있었다. 아시아 권의 아름다움과는 다른 차원의 것. 물론 어떤 것이 더 낫다고 판단할 수 없다. 그저 다른 차원의 것일 뿐.

미국 뉴욕 공립 도서관 (NYPL)

터미널에서 나와 그 옆 또 다른 아름다운 분위기를 지닌 뉴욕 공립 도서관 (New York Public Library)에 갔다.


도서관은 오전 10시에 문을 열었고 다행히 터미널에서 짧지 않은 시간을 보낸 덕에 오픈 시간에 맞추어 들어갈 수 있었다. 시차 부적응 덕에 보고 싶었던 곳들을 조금 더 여유롭게 볼 수 있어 좋았다.

미국 뉴욕 공립 도서관 (NYPL)

꽤 까다로운 가방 검사를 마치고 1층에 있던 북샵으로 직행. 독서를 좋아하는 아빠에게 드릴 가죽 북마크 그리고 뉴욕의 노란 택시 마그넷 같은 소소한 선물들을 구입했다.


가죽 북마크를 아빠가 읽는 책 사이에서 발견한 기쁨은 이루 말로 다 못한다. 아빠는 책을 읽으면서 그래도 조금은 내 생각을 하겠지 라는 묘한 만족감도 이루 말로 다 못해.


여하튼 그렇게 시작된 은밀한 도서관 구경.

미국 뉴욕 공립도서관 (NYPL)

은밀하다는 표현을 붙인 이유는 도서관 그 공간 자체의 분위기를 극대화시키기 위함이다. 어떤 도서관이 사용자보다 관광객이 더 많을까. 다들 각자의 일상을 여유롭게 보내고 있었을 텐데 쉼 없이 카메라를 들이미는 관광객들 중 하나가 된 것 같아 괜히 미안하고 민망했다.

미국 뉴욕 공립도서관 (NYPL)

그럼에도 한 장은 찍어 남기고 싶었던 곳. 실제로 책을 읽고 리서치를 하는 공간 입구였다.


어떤 자연재해에도 책을 견고하게 막아줄 것 같은 투박한 벽과 심지어 여성스러운 느낌의 아치 창문, 게다가 아름답고 화려한 샹들리에까지. 문과 책장과 칸막이와 바닥 타일 모두가 나무를 떠올리게 해 더 고상한 느낌이 들었다.

미국 뉴욕 모건 라이브러리 (The Morgan Library & Museum)

뉴욕에 가기 전 대형 서점에서 읽었던 어떤 뉴욕 여행 책자에 소개되었던 뉴욕 모건 라이브러리도 미드타운에 있어 들러보았다. 결론은 아주 진귀한 경험이었다는 것.

미국 뉴욕 모건 라이브러리 (The Morgan Library & Museum)

JP 모건의 개인 서재로 어느 박물관이나 도서관에서도 볼 수 없는 역사적인 책들이 많이 있었다. 셰익스피어의 초판본이나 1800년대에 만들어져 이제는 그저 삭아가는 가죽 커버를 보고만 있어야 하는 그런 책들도 많았다.

미국 뉴욕 모건 라이브러리 (The Morgan Library & Museum)

뉴욕 스카이라인을 잇는 웬만한 유명 고층 빌딩이 모여있는 미드타운에는 작지만 견고하고 웅장하여 놓치지 않았으면 하는 곳들이 많았다.


무릇 뉴욕에서라면 지켜낼 법한 아주 오래된 건물들과 넘칠 만큼 가지고 있는 자산을 우리에게 보여줄 줄 아는 자신감 덕에 즐거웠던 미드타운 걷기.


다시 뉴욕에 가게 된대도 비밀스러운 공립 도서관 탐험과 빨간 벨벳으로 가득 찬 모건 가의 서재를 탐닉하는 그런 도시 산책은 언제고 다시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 곳들이라면 누구에게도 그럴만한 곳들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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