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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Feb 06. 2019

서울에서 뉴욕으로

2019년 겨울. 미국 뉴욕 첫 번째 이야기.

예정대로라면 올 5월 뉴욕에 갈 계획이었지만 설 연휴 티켓이 남아있는 걸 보니 끈기가 바닥났다. 벌써 3번째 여행 적금을 들었고 마일리지도 두둑하게 모아논 참이었기 따문에 미룰 이유가 없었다.


운이 좋았다고 표현하면 될까? 셈에 꽤 밝은 남편 덕에 결혼 준비를 하면서 생애 첫 신용카드를 만들었고 그 카드 덕에 미국행 항공권을 손에 쥐었다. 가는 편은 황송하게도 비즈니스 좌석이라 타기 전부터 이미 여행 시작된 기분.

OZ222 (ICN-JFK)

게다가 명절마다 부지런히 여행 다니시는 시부모님이 매번 우리의 신속한 여행 결정에 한몫해주시니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여행에 나섰다.


13시간의 비행을 마치고 서울에서 맞이했던 아침을 뉴욕에서 다시 맞이했다. 비행 대부분의 하늘은 은하수와 쏟아지는 별이었고 미국에 다 들어와서야 해가 뜨기 시작했다.

Sal’s Roma Deli (Rossmoor, NJ)

추위가 한풀 꺾이고 구름 없이 맑은 하늘을 보며 뉴저지의 작은 타운의 샌드위치 집에서 첫 번째 끼니를 때우고, 결혼 전 스치듯 만나 뵈었던 남편의 고모님 댁으로 갔다.


6년 전에 머물렀던 뉴저지와는 정반대인 주 최남단 작은 타운이었지만 뉴저지에 들어선 것만으로도 기분이 묘했다. 금방 돌아오지 못할 거라는 건 알았지만 이렇게 오래 걸릴 줄은 몰랐는데. 시간이 얼마나 쏜살같이 지나가는지.

Home away from Home (Rossmoor, NJ)

도착한 날 마침 슈퍼볼 결승이 있어서 Maroon 5가 나오는 하프타임 쇼까지 겨우겨우 버티다 잠들었다. 시차 적응에는 밥과 잠이 다라고 하니 눈이 감기면 그저 누웠다.


예쁜 전등과 무심하게 쌓여있는 악보들 사이사이 반가웠던 한국스러운 문양들과 그렇게 이틀 밤을 보냈다. 매일 새벽 3시면 일어나서 한참 수다를 떨고 배가 고파 베이글을 구워 먹고 다시 잠들면 새벽 4-5시. 시차 적응이랄 것도 없이 새벽의 배고픔을 이겨 낼 재간이 없어 괴로웠다.

Jersey Shore Premium Outlets

맨하튼에 들어가지 않은 이틀 동안 조금은 따분했지만 유명 아울렛에 들러 쇼핑을 했다. 쇼핑할 생각으로 옷을 딱 두 벌씩만 챙겨 왔더니 어찌나 불안하던지. 불안을 가장한 탕진을 마치며 Theory와 버버리에서 꽤 합리적인 가격대의 겨울 코트를 장만했다.


뉴저지에서 구입하는 옷과 신발에는 택스가 붙지 않으니 오히려 같은 브랜드라면 뉴저지에서 사는 게 더 좋았다.



미국에 온 지 3일 차. 드디어 맨하튼에 들어왔다.


높은 스카이라인과 노란 택시 그리고 분주한 사람들이 길가에 가득한 걸 보니 이제 뉴욕에 왔다 싶었다. 뉴욕에 도착하자마자 호텔 체크인을 하고 2블럭 떨어진 MOMA (Museum of Modern Arts, 뉴욕 현대미술관)에 갔다.

MOMA (뉴욕 현대미술관) - The Starry Night by Vincent van Gogh

예전의 나는 뉴욕의 대형 미술관 중 MET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을 워낙 좋아했던 터라 MOMA에 대한 특별한 기억이 없었는데, 무료 오디오 가이드를 들으며 찬찬히 보니 꽤 좋았다. 모든 작품은 아니지만 유명한 작품들은 한국어 가이드도 함께 준비되어 있어 이해도가 다 높아졌다. 오디오 가이드는 심지어 무료!

MOMA (뉴욕 현대미술관)

넓은 전시장에 적정한 거리로 떨어트린 그림들. 그리고 전시장과 작품이 이어지는 곧고 예쁘게 뻗은 라인들이 좋았는데 그중에서도 모네의 ‘수련’으로 가는 길은 참 예뻤다.


프랑스 파리의 오랑주리에서도 봤던 작품 컬렉션이지만 볼 때마다 조금씩 다른 느낌의 수련이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모네가 세상을 떠나기 전 10년 동안 그린 그림이 바로 수련 컬렉션인 데다 타원형의 전시장에 걸어둘 작정이었다고. 인생 마지막 10년 동안 완성한 작품이라면 필연 가장 좋아하는 장면 혹은 아름답다 여기는 장면을 같은 듯 다른 느낌으로 그렸겠지. 참 아름다웠다.

MOMA (뉴욕 현대미술관) - The Dream by Henri Rousseau

사실 가장 아름다웠던 작품은 앙리 루소의 ‘꿈’ 이었다.


작가는 단 한 번도 프랑스를 벗어나 본 적이 없어 이 그림을 그릴 때 상상 속의 정글을 그렸다고 했다. 그럼에도 동물은 아주 사실적으로, 식물들의 잎사귀 역시 너무도 정교하게 묘사한 작품이었는데 색감이 아주 예뻤다!

MOMA (뉴욕 현대미술관)

맨하튼에서 보내는 첫날. 엽서도 그림도 하다못해 마그넷도 모두 내려놓고 나왔지만 예뻤던 작품들이 계속 머릿속에 맴돈다. 그럼 잘 보고 나왔다는 말이기도 하겠지.


낮은 덥고 밤은 추운 겨울과 봄 그 사이의 날씨가 이어진다. 어서 침대에서 나와 또 다른 하루를 시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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