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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Jul 26. 2021

7월 26일 월요일

참 더워도 이렇게 더울 일인가 싶다

1. 말이 없는 사람들

3개월 간 크고 작게 나를 괴롭히던 지난 3주 간의 많은 소동들이 지났다. 귀엽게도 내일모레면 수습 딱지를 떼고 한 사람 몫을 해야 하는 정규 사원이 된단다.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는 것들.


얼마 전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다 문득 회사 생활 정말 별 거 없는데 이렇게 나를 좌지우지 하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저 오셨어요-식사하셨어요-커피 드실까요-별일 없으세요-축하합니다-고맙습니다-내일 봬요 같은 시답지 않은 대화 몇 개로도 함축되는 게 회사생활인데. 지금의 회사생활을 돌이켜보면 어떤 것으로도 함축되지 않는다. 그저 아침과 저녁만 있는 느낌이랄까.


친한 동기들과 여러 과제를 하나씩 넘으며 서로를 위로하고 보듬었다. 크지도 그렇다고 작지도 않은 보고를 끝내고 나는 오히려 도움을 준 선배들을 찾아 감사인사를 전한다. 때로는 돌아오는 말이 있기도 대부분은 아무 말이 없는 고요한 곳. 말이 없는 사람들과의 3개월이 어찌어찌 끝났다.


2. 무더위

지난주 더워도 너무 더워 2년 만에 여름 이불을 꺼냈다. 나는 추위를 많이 타고 남편은 여름마다 에어컨을 끼고 살아서 어쩔 수 없이 간절기 솜이불을 사계절 내내 덮고 잤는데 이번 여름은 더워도 너무 덥다. 어제저녁엔 잠옷까지 훌러덩 벗고 선풍기 앞에서 와인을 마셨다. 그러다 노을이 아름다워 10분 정도 감행한 밤 산책에 더위를 먹은 것처럼 온몸에 진이 빠지는 기이한 경험을 했다.


마스크를 쓴 얼굴 위에 다른 걸 얹고 싶지 않아 지난 1년은 선글라스를 꺼내지도 않았는데 이제는 패션의 문제가 아닌 생존의 문제인가 싶기도 하고. 아침마다 가파른 언덕을 넘어 사무실에 들어갈 때까지 그늘을 찾아 겨우 걸어간다.


초여름엔 하루가 멀다 하고 비가 오더니 한여름이 되자마자 비 소식은 쏙 들어가고 그저 발등이 새카맣게 타는 햇살만 지독하게 내리쬔다. 차라리 바다에서 더위와 싸워가며 앉아있으면 기분이라도 좋을 텐데. 서울에서 온 몸이 새카맣게 타는 경험은 아무리 두 번째라도 그리 유쾌하진 않네.


3. 면

남편은 면을 별로 안 좋아하는데 나는 면을 사랑한다. 그것도 특히 여름이면 더더욱. 한 달 정도의 남편과 마주하고 먹었던 음식들을 다시 복기해보면 냉면, 소바, 칼국수, 라면, 비빔면, 막국수 정도가 있겠다. 쉼 없이 면을 사다 채우고 동치미 냉면 육수와 소바 밀 키트를 소비한다.


점심에도 딱히 입맛이 없어 샐러드나 샌드위치로 대충 때우고 저녁이면 어김없이 면을 먹다 보니 저절로 살이 조금씩 빠진다. 그래도 오늘 저녁엔 오랜만에 남편이 갓 지은 밥에 한우 미역국을 해줘서 든든하게 먹었네. 더울수록 잘 먹어야 하는데 영 입맛이 안 생긴다. 그저 면이 먹고 싶을 뿐! 내일은 초계국수가 먹고 싶은데 남편이 부디 내 일기를 읽기를.


4. 줄리앤 줄리아

주말에  영화에서  없이 음식을 만들어 대기에 오랜만에 케이크를 사다 먹었다. 희고 볼드한 진주 목걸이에 셔츠를 입고 음식을 만드는 메릴 스트립의 모습에 절로 흥이 났다. 아주 작은 스토브와 오븐에서 요리책에 나온 모든 음식을  시도해보는 줄리 모습도, 4 동안 집과  터전이 바뀌는 즐겁고 새롭지만 불안정한 환경에서의 줄리아도 어쩐지 모두 공감이 됐다.


블로그를 하는 줄리보며 월요일기를 떠올리기도 했다. 아무도 보지 않아도 그저 내가 알기 때문에 기록하는 이야기들과  숨어있는 독자와 반응들에  듯이 기뻐하는 모습이 나와 닮아 보여서. 그리고 지난 1   모았던 나의 월요일기가 기특하고  스스로가 조금은 대견해서.


5. 행복

주말 짧은 드라이브를 하면서 남편과 “지금의 생활이 행복한가?”라는 대화를 나눴다. 남편은 여행을 못 다녀 조금은 불편하고 답답하다고 했고 나는 그저 지금 이 시기에 같이 밥도 지어먹고 하루의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대답했다. 물론 설거지에 밥 하는 것까지 남편의 집안일 몫으로 조정하고 나니 내 행복감은 커지고 니 행복감은 줄어들긴 했겠다. 뭐 어쩔 수 없지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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