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월요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무 Aug 16. 2021

8월 16일 월요일

짧고 굵게 바캉스

1. 제주행 비행기표

호기롭게 2주 전 제주행 당일치기 비행기표를 끊어두었고 오랜만에 세끼에 간식 두어 번 그리고 바닷가에서 신선놀음하는 모양새를 기대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런저런 사정으로 비행기표를 취소했고 오랜만에 제주를 생각해서인지 이미 다녀온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했다. 제주에 장마가 짙게 온 주말, 그리고 유난히 확진자가 늘어나기도 한 주말. 제주에 가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고 말하기엔 죄송스럽고 가고 싶다 말하기엔 철없어 보이는 주말이 지나갔다.


2. 양양에서의 이틀 밤

2달 전쯤 여름휴가에 대한 짧은 대화를 나누다 양양에 있는 한 숙소를 발견했다. 깔끔했고 산골이었다. 바다도 시내도 가깝게 이동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 숙소 앞 너른 잔디가 마음에 들었다.


 길로 예약을 하고 트윈베드를 붙여달라는 요청까지 드렸는데,  역시 이런저런 사정으로 취소하게 되었다. 상황을 설명드리고 약속을 지키지 못해 죄송한 마음을 전했다. 흔쾌히 사정을 이해해주셨고 다음에  다시 가고 싶을 만큼 메시지를 남겨주셔서 더욱 아쉬운 마음이 앞섰다.


3. 그렇게 바캉스

나름의 계획으로 짜두었던 8월의 여름휴가가 모두 사라지고 나니 속이 조금 상했다.  사이 확진자가 2천 명으로 올라 이제는 더 이상 계획을 하기도 새로운 휴가를 찾아 나서기도 겁이 나는 상황. 그렇게 8월이 되고 에어컨 아래 가만히 누워 지내는 2주를 보냈다.


연휴를 앞두고 서울에 있는 가까운 호텔이라도 가서 룸서비스나 시켜먹으며 청소도 요리도 설거지도 없는 휴가를 보내보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마음에 드는 호텔들은 이미 만실이었고 가격은 천정부지. 그러다 언젠가 남편과 차를 타고 지나다 본 낮은 산 아래 허름한 호텔이 떠올랐다. 사진을 찾아보니 다행히 붐비지 않는 수영장과 작은 선베드 여러 개가 옹기종기 모여있는 장면들이 여럿 발견됐다.


그 길로 호텔을 예약했다. 예전 홍은동 힐튼 자리에 리뉴얼된 그랜드 스위스 호텔, 아주 고풍스럽고 또 클래식한 매력이 일품이었다. 연희동의 고상한 분위기를 그대로 이어받은 듯 중년 부부들이 삼삼오오 모여 피트니스 룸으로 들어가고 동네 주민들이 수영장으로 모여들었다.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곧장 해가 쏟아지는 야외 선베드에 누워 날씨를 만끽했다. 햇살도 좋았고 마스크 없이 쐬는 바람도 너무 좋았다. 그중 가장 좋았던 건 공간에 띄엄띄엄 떨어져 무용하게 널브러져 있는 우리와 같은 여러 명의 사람들. 가까이 있기엔 걱정이고 멀리 있어야 더욱 안심되는 이 시대에 제격인 시간이었다.


룸서비스는 아쉽게도 호평을 받지 못하고 있어 동네에 맛있다는 떡볶이집에서 분식을 시켜 든든히 먹고 느지막이 내려가 앤트러사이트에서 레모네이드를 한 잔 마셨다. 사실 그 정도의 바캉스만 돼도 좋은데 왜 늘 더 놀지 못해 안달이었을까 싶을 정도로 참 좋은 시간이었다.


4. 서울 하늘 아래

호텔에서 체크아웃을 하고 매번 멀어서 못 가던 강남의 소바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부랴부랴 먹고 나와 좋아하는 커피숍의 테라스에 앉아 커피를 마셨다. 바람도 선선하고 이른 시간이라 사람도 없어 좋았다. 테라스에 앉아 커피를 마실 수 있는 날씨가 되었다니. 이제 가을이 온 것 같았다.


그랜드 스위스 호텔 (구. 홍은동 힐튼)
매거진의 이전글 8월 9일 월요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