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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Aug 23. 2021

8월 23일 월요일

가을장마인 줄 알았더니 태풍이 오고 있는 월요일

1. 삼청동

오랜만에 삼청동에 갔다. 주말이면 오히려 더 활동반경이 소심 해지는 수상한 계절에 어느 요일보다 가장 번거롭다는 월요일 연차를 덜컥 낸 참이었다. 삼청동 끝자락의 브런치 집에 앉아 오손도손 남편과 담소를 나누었다.


연애 시절 주말이면 이른 시간의 무궁화호를 끊어 수원에서 서울로 올라와 찜해두었던 음식점의 오픈을 기다려 기어코 첫 손님으로 식사를 하던 우리였는데. 막상 결혼을 하고 서울에 적을 두고 살다 보니 데이트를 위한 삼청동 방문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올봄 좋은 날씨를 핑계 삼아 마스크 아래로 푹푹 찌는 공기에도 불구하고 두어 번 경복궁을 걸었던 이후로 처음. 오늘은 비가 내려 경복궁도 못 가고 밥만 먹고 돌아왔지만 바쁜 세상과 여유로운 나의 간극을 느낄 수 있는 기분 좋은 나들이었다.


2. 2시간

요즘은 주말에 집을 나서도 고작 2시간 정도가 지나면 금방 집으로 돌아오고 만다. 일단 집을 나서면 볼 일만 빠르게 보고 지체 없이 돌아오려는 심리적 요인이 강하게 작용하는 것 같다. 장을 보고 커피를 사고 빵과 반찬을 사고 쫓기듯 차에 올라 집으로 돌아온다. 얼마 전에는 자주 가는 연희동 사러가 마트에서 주차비가 정산되기도 전에 빠르게 장을 보고 나오기도 했다. 토요일 오전 메뉴 팩트에서 커피를 주문하고 기다리고 마시는 데까지 고작 10분 정도를 머물다가 돌아오기도 하고.


그래도 왕복 2시간의 외출이 끝나면 어딘지 모르게 환기가 된 기분을 지울 수 없어서, 짧게라도 길을 나서게 되는 코로나 시대의 우리.


3. 여름의 끝

올여름엔 바다는커녕 휴가도 제대로 못 갔지만 지난주 다녀온 호캉스 덕에 아쉬운 마음을 달랠 수 있었다. 여름 샌들보다 플랫슈즈를 찾게 되는 여름의 끝. 가을장마인 듯 태풍인듯한 비가 그치고 나면 아마도 정말 가을이 올 것 같다.


여름 내 우리 집 화분들은 쉼 없이 새 잎을 틔웠다. 화분들 덕에 계절이 지나가는 것을 절절하게 체감한다. 습기를 머금은 바깥공기를 마음껏 쐬라고 환기도 자주 시키고 흙이 마르면 물도 부지런히 퍼다 주었다. 결혼한 해에 구입한 여인초와 휘카스도 나란히 새 잎을 두세 개나 내었다. 이제 가을이 시작되면 모든 화분의 새 잎이 멈추겠지만 겨우내 잘 버티고 내년 여름에 또다시 무럭무럭 자라 새 잎을 틔워주었으면.


4. 지난주엔

일 년에 네 번 열리는 작은 언어 시험이 있었다. 외국인 유학생들의 한국어를 하루 종일 작은 이어폰을 통해 듣고 있자니 북경 유학 시절의 모습과 미국 유학 시절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처음 북경에 유학 갔을 때 중국어가 하나도 들리지 않아 학교 앞 리어카에서 파는 작은 계란빵도 겨우겨우 사 먹곤 했었다. 그저 손짓으로 주문하고 모든 동전을 다 꺼내어 보여주면 사장님이 손톱 아래가 검은손으로 동전을 가지고 가 계산을 해주었다. 북경 생활이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친구들과 함께 갔던 북경 클럽에서 보드카와 섞어마셨던 중국 홍차는 어쩌다 한 번씩 마실 때마다 그 클럽이 눈에 선해질 정도.


미국 유학을 시작하던 때를 떠올려보면 오히려 더 괴로웠고 답답했던 순간이 많았던 것 같다. 영어를 잘하지 못해 부끄러웠고 생각보다 큰 땅덩어리와 생각지 못한 문화 차이로 꽤 오래 적응에 애를 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겁 없이 1시간이 넘도록 버스를 타고 뉴욕에 넘어가 2만 보씩 걷던 기억. 미국 교회에 앉아 누구보다 절실한 마음으로 매주 기도했던 기억.


몇 달 동안 유학을 준비하는 학생을 가까이에서 접하면서 막상 유학생의 신분으로 한국에 와 집을 구하고 친구를 사귀고 생활 반경을 넓혀가며 겪게 될 시간들을 상상해보곤 한다. 정말 즐겁지만 동시에 괴롭고 외로운 시간이 이어지겠지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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