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월요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무 Sep 27. 2021

9월 20일 그리고 27일 월요일

추석을 핑계로 미뤄둔 월요일기 곱하기 둘.

1. 추석의 풍류

올해도 추석 연휴  길었다. 연휴기간만 5일이었고 뒤로 2일의 연차를   있는 용기만 있었다면 연이어 9일을   있었던 연휴. 게다가 추석 내내 날씨가 고와서 어영청 밝은 달을   있었다.


결혼  처음으로 추석 연휴 동안 오롯이 친정에만 다녀왔다. 그럼에도 부모님은 우리 부부를 뒤로한 채 시골 할머니를 뵈러 내려갔지만 기분이 왜인지 묘하게 좋았다. 부엌에 비린내가 가득 차도록 생선을 구워 먹고 고기와 투박한 집 채소를 먹고 과일도 잔뜩 먹었다. 오랜만에 진짜 명절 연휴를 보내는 느낌이었다.


설 연휴는 왜인지 나이를 한 살 더 먹는 데에 집중해 막상 즐거이 연휴를 보내지 못하게 되는데, 추석은 내가 좋아하는 초가을로 가는 길목이라 그런지 늘 즐겁고 행복해.


2. 보복 여행

짧은 임신 기간을 마치고 그저 누워서 보낸 지난여름이 아쉬워 매주 여행을 계획해둔 참이었다. 추석엔 속초로 그다음 주엔 제주로 그리고 10월 초엔 논산까지. 그러다 결국 병이 나지 싶어 마지막 논산 여행은 취소해버렸다.


코로나가 시작되고 멈춰버린 여행에 관한 소비를 결국 집 안으로 끌어들였다. 괜히 비싼 식재료를 사 와 냉장고를 메우거나 멋진 가구를 사는 것과 같은 소비들. 그래도 여행에 대한 갈증이 딱히 사라지지 않았다. 작년엔 멈췄다면 올해엔 발굴하는 삶. 나무로 둘러싸인 소나무 독채 숙소를 구하거나 바다도 산도 아닌 한적한 동네 윗산에 있는 가정집을 빌려 여행한다. 여행이라기엔 조금 더 쉼에 가까운 움직임으로.


이번 추석에는 괌이고 사이판이고 하와이까지 티켓이 없어 못 팔았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아마 내년 설에도 그다음 추석에도 점점 여행객은 늘어나겠지. 마스크 벗고 여행하면 얼마나 좋을까 벌써부터 신난다.


3. 강원도 이야기

고성 주성 리조트 사진을 보고 참 촌스럽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트위터에서 찍어둔 마음 덕에 주성 리조트를 1년 만에 다시 보니 지금 이 시국에 딱 맞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박에 15만 원 정도, 추석 연휴가 시작되는 주말이라 예약도 한산했고 덜 붐빌 것 같아 부랴부랴 예약해 강원도로 갔다.


이상한 시간에 출발해 이상한 시간에 점심을 먹고 이상한 시간에 숙소에 들어갔다. 하나로마트에서 산 신선도도 맛도 떨어지는 삼겹살을 분위기로 구워 먹고는 침대에 누워 드라마를 보고 잠에 들었다. 강원도에서 한 거라곤 바닷가에 캠핑의자 펴고 앉아 바다를 바라보는 일. 그렇게 1시간씩 이틀 동안 쉬었다. 그저 바다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되는 기분이 들었다.


고성 주성리조트


4. 제주도 이야기

제주 별장 서홍을 예약하고 비행기 티켓을 바꿨다. 5월에 퇴사한 이후로 벌써 몇 번이나 비행기 티켓을 옮겼는지. 눈치 보느라 바쁜 나는 새 직장에서 혹시 무슨 일이 생길까 싶어 결국 여행을 모두 취소하거나 미뤄뒀다. 이번 제주도 여행도 사실 얼마나 큰 마음의 짐이었는지. 비행기가 지연되거나 취소되면 이제 더 이상 면죄부가 없는 상황.


불안한 내 마음을 읽은 건지 모든 일정은 아주 여유롭고 순조로웠다. 어느 일정 하나도 마음이 조급하지 않았다. 그저 자연스럽게 시간이 흘렀고 주말이 모두 끝났다.


온 가족이 둘러앉아 이번 여행이 너무 좋았노라고 숙소도 식사도 비가 오던 거문오름 트레킹도 길게 걸었던 서귀포 치유의 숲 산책도 모두 좋았노라고. 코로나가 시작되고 그저 각자 바빠서 자주 못 보던 우리 가족은 더 단란해지고 여행 내내 나는 임신이 종료된 게 못내 아쉬웠다. 새로운 가족 구성원과 이 여행에 함께 했더라면 여행의 행복이 배가 되었을 텐데 하면서. 물론 임신을 하고 있었다면 걱정 많은 나와 열성적인 우리 아빠의 콜라보로 여행은 전면 취소되었겠지만.


별장서홍


여러모로 시간이 참 순리대로 잘 흘러간다. 순리대로. 9월엔 쉬었으니 10월부터 다시 열심히 몸을 만들어야겠다. 또 다른 순리대로.

매거진의 이전글 9월 13일 월요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