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를 가야 하는 걸까
1. 이사
어제 오랜만에 남편과 한강을 걸었다. 한강을 걸으면서 이대로 가다간 벼락 거지가 될 수도 있겠다는 말을 주고받았다. 집 앞에 새로 생긴 오피스텔이 분양을 시작할 때도, 주변에 친구들이 집을 사서 이사를 갈 때도, 아직 살 동네를 정하지 못했다는 핑계로, 딱히 자가에 대한 욕심이 없다는 핑계로 외면해왔던 내 집 마련의 꿈이거늘.
우리가 그동안 남의 집을 전전하면서도 (그러니까 전세) 별다른 위기의식을 느끼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집주인 복이 컸다. 처음 서울에서 6평짜리 원룸을 구하던 날, 첫 신혼집으로 이사 가던 날, 그리고 우리의 세 번째 집인 지금 이 낡은 아파트에 들어오던 날도. 늘 마음 한편에 이 집을 내어주신 좋은 집주인 어르신들에 대한 감사함이 있었다. 그저 예민하게 굴며 몇 번이고 입주청소를 하는 신혼부부인 우리가 보기 드물게 깔끔한 세입자라고 좋아해 주셨던 분들. 하지만 이 엄청난 부동산 대란에 아마 곧 우리는 벼락 거지가 되겠지.
이사를 가야 할지 이제라도 모든 재테크를 부동산에 들이부어야 할지 갑자기 엄청난 고민에 빠졌다. 내가 사랑하는 연희동 단독주택엔 언제 가서 살 수 있는 건데! 왜! 왜 살고 싶은 곳에서 살 수 없는 건데!
2. 심리상담
작년 이맘때쯤부터 시작된 엄청난 우울감은 빠르면 보름에 한 번 늦어도 한 달에 한 번씩 나를 엄청난 무게로 짓누른다.
작년엔 휴직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직을 했다. 올 초엔 이직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적응을 하려고 노력했다. 노력하고 있지만 유난히 적응이 안 되는 조직이라고 생각했다. 자신감도 자존감도 떨어지는 계절들을 보내다 보니 어느덧 가을. 게다가 얼마 전 의도하지 않은 개인사를 겪고 나니 우울감은 걷잡을 수 없는 범위로 커지기 시작했다. 어느 날은 아침부터 말 한마디가 하기 싫고, 어느 날은 눈물이 하염없이 나기도 하고. 그런 나를 보고 남편은 아무래도 상담을 받아보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했다. 동의했다.
올해는 참 나에게 도전이 많은 해라고 그래서 여러 변화와 성과가 생기는 해라고 생각하고 잠에 든다. 아침에 일어나면 올해는 참 나에게 모진 해라는 생각을 하면서 잠을 깬다. 나도 어쩔 줄 모르겠는 변덕과 무기력한 우울감. 지금이라도 실마리를 찾고 마음의 무게를 가벼이 하면 되니까. 오늘은 그래도 좋은 날이었다.
3. 백신
지난주 금요일 백신을 맞았다. 화이자 1차. 겁이 나 뾰족한 주삿바늘도 못 바라본 채 앞에 붙은 여러 장의 안내문을 읽고 있었다.
힘 빼세요.
어깨 내리세요.
꾹꾹 누릅니다.
콕.
15분을 기다렸고 아무 이상 없이 집에 왔다. 컨디션 난조가 있긴 했지만 백신 맞기 며칠 전부터 안 좋았던 참이었다. 오히려 백신을 맞고 푹 자니 컨디션은 더 좋아졌다. 1차는 워낙 안 아프다고들 하지만 나는 정말로 주삿바늘이 들어가는 통증도 없던 터라 철없게 “주사 맞은 거 맞나?”라는 농담이 절로 나올 지경이었다. 2차는 대체 얼마나 아플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