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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파 Sep 13. 2022

직장인이에요, 사무실은 교실이고요.

열정적이지 않으면 좋은 선생님이 아닐까?

  매월 17일은 나의 월급날이다. 이번 달은 17일이 토요일이니 하루 일찍 몸을 불린 통장 잔고의 숫자를 보며 든든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통장 잔고는 프로 다이어터인지라 하루 이틀 새에 숫자를 쭉쭉 줄일 것이다. 대출 이자로, 저축 통장으로, 보험료로, 관리비로, 여러 곳의 회비로. 금세 조촐해진 숫자를 보며 씁쓸해질지도 모르겠다. 1인분의 삶을 꾸리기에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작고 귀여운 월급이지만 매달 정해진 날짜에 월급이 들어온다는 것은 삶에 큰 안정감을 만들어준다. 한 달 치의 살림을 꾸려갈 월급이 들어올 금요일을 기다린다. 그날 저녁에 만나기로 한 친구에게 맛있는 식사를 한 끼 사야겠다는 작은 플렉스를 그리며.


 이처럼 월급날을 기다리고, 퇴근을 사모하며, 주말과 공휴일을 고대하는 것. K-직장인이라면 대부분 공감할 것이다. 그런데 나는 종종 교사의 신분으로 직장인의 범주에 들어가 비슷한 고충을 나누는 것에 부대낌을 느낄 때가 있다. 급여를 받는 임금 노동자이자, 교육청 산하의 공립학교라는 조직에 속한 직장인이 맞으면서 말이다. 이는 결코 교사가 다른 직장인에 비해 더 고상하거나 대단한 직업이라서가 아니다. 교사는 월급을 기다리며 일 해선 (돈 때문에 이 일을 해서는) 안된다는 이상한 준칙이 내 안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 오래전부터 쌓여온 나의 성직관적 교직관에서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교사가 되기 위한 기반을 닦던 대학 시절부터 새내기 교사 시절까지, 나는 교직에 대한 소명의식을 불태웠다. 교사로서 학생들을 부모님만큼 사랑하고, 학생들을 위해 나를 희생하고, 따뜻한 사랑의 힘으로 품으면 모난 모습을 보이는 학생들도 변!화! 될 것이라는 열정이 가득했다. (어우, 뜨거워) 밤잠을 줄이면서 수업을 준비하고, 학생들에게 좋은 것을 주고자 열의를 다했다. 급여는 학교의 모든 교사들 중 가장 적게 받으면서. 그때는 돈 때문에 교사를 하는 건 세속적이고, 교사의 자질이 의심될 만한 태도라고 여겼다. 낭만적이고 뜨거운 시절이었다.  


  지금도 그때의 열정 어린 나의 모습을 기특하게 여긴다. 문제는, 신규 시절의 나를 이상적인 기준로 삼고 지금의 나를 게으르고 안주한다 여기며 스스로를 채찍질한다는 것이다. 이전만큼 열정적인 수업 준비를 하지 않는 것 같고, 아이들을 헌신적으로 사랑하지 않는 것 같다고 하면서 말이다. 어느 정도 사실이기는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나를 게으르고 태만한 교사로 깎아내리진 말아야겠다는 것이 오늘 글쓰기의 이유다.


  지금의 나는 그 시절처럼 밤을 새워 수업자료를 준비하지 않아도 수업을 자연스럽게 이끌고 나갈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미리 철저한 준비를 하지 않아도, 아이들의 학습을 효과적으로 이끌어갈 만한 교구나 활동지, 질문을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나의 만족을 위한 완벽한 수업 준비는 때때로 아이들에게 쉽게 성을 내게 했다. '내가 어제 밤새 준비했는데, 왜 이렇게 밖에 못 따라와?' 하며 아이들의 속도와 흐름에 맞추기보단 내가 우선이었다. 이제는 나의 만족보다 아이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시야가 열렸다. 아이들은 화려한 교구나 자료가 없어도, 자신들이 직접 말하고, 그리고, 만들고, 움직이면서, 친구들과 어울려 의논하고 결정하는 기회를 주는 것만으로도 즐겁게 배운다.


  지금의 나는 신규 시절보다 훨씬 더 많은 학교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업무부장과 학년부장을 맡아, 학교가 원활하게 운영될 수 있도록 책임을 다하고 있다. 예전에는 교사가 내 교실, 내 수업만 잘하면 된다는 생각이 컸다. 지금도 교사의 본질이자 제1 업무는 학급경영과 수업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공립학교 교사로서 교육부나 교육청, 학교 전체의 요구를 전혀 무시하며 '나는 우리 교실만 잘 챙길게요.' 하며 마이웨이를 걷는다는 것은 쉽지 않다. 연차가 쌓일수록 (그래 봤자, 나 5년 차밖에 안 됐는데... 우리 학교는 나에게 일을 너무 많이 줬다.)  업무적으로 담당해야 하는 파이가 커지면서 수업 준비나 학생관리에 써야 할 에너지를 업무에 나눠줄 수밖에 없다. 이건 너무나 아쉬운 일이다.


 지금의 나는 나를 갈아 넣는 열정은 결국 나를 해친다는 것을 안다. 내 잠을 줄이고, 내 퇴근시간을 늦추고, 내 주말을 바치며 학생들을 위해, 학교를 위해 일하는 것은 나에게 해를 입힌다. 나의 건강을 해치고, '나'로 존재하는 시간을 소거시키며 '교사'라는 정체성만 남긴다. 내가 나로서 행복하고 충만한 일상을 누리는 것이 행복한 교사, 행복한 교실을 만드는 지름길임을 안다. 퇴근 이후에는 나를 위해 건강한 식사를 하고, 드라마를 보고, 좋아하는 사람들과의 시간을 가지며 충전해야 한다. 주말에는 화분을 돌보고, 책을 읽고, 자전거를 타고, 가고 싶었던 카페나 책방에 들러 행복을 찾는 것이 나를 더 단단하고 행복한 교사로 아이들 앞에 설 수 있게 만든다. 나는 교사이지만, 훗날 책방을 운영하는 꿈을 꾸고, 어느 책모임의 운영진이고, 환경과 인권, 마을 공동체에 관심 있는 시민이고, 누군가의 친구이고 이웃이다. 내가 교사라는 유일한 정체성으로만 존재하지 않고 입체적인 사람이 될수록 아이들은 나를 통해 더 넓은 세상을 볼 수 있다.   


  지금의 나는 학교에 많은 짐을 지우는  사회에 염증을 느낀다. 아이들이 과적된 유람선에서 구출되지 못하고 차가운 바다에서 죽어간 사건이 일어난 후에 학교에는 생존 수영 수업이 생겼다. 아주 빡빡한 수학여행 안전 매뉴얼과 함께. 가족 여행을 간다고 보호자 동행 체험학습을 신청한 일가족이 자녀 살해  자살한 사건이 일어난 후에는, 담임들에게 가족과 여행을  아이들의 안부를 전화로 확인하라는 지침이 내려왔다. 여기저기  구멍의 근원을 해결하기보단, 임시방편으로 메우는데 교육을 이용하고 교사들을 동원시키는 것을 반복적으로 목격하고 겪어오면서 나는  열정을 아끼게 되었다. 교사를 존중해주지 않는 환경에서 열과 성을 다해 일하고 싶은 교사는 드물 것이다.  


  새로운 모임에 나가 직업을 말할 때면, 나를 '직장인'이라고 소개한다. 그저 사실을 말한 것이지만, 묘한 해방감을 느낀다. 교사라는 타이틀에 과하게 얹힌 높은 도덕성과 책임을 벗은 데서 오는 가벼움이라 생각한다. 그만큼 필요 이상의 짐을 교사들이 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질문해본다. 그러면, 나는 교사를 하고 싶지 않은가? 아니, 전혀. 나는 이 일을 자의로는 그만두고 싶지 않다. 최대한 오래 하고 싶다. 그 이유가 안정적인 급여 때문이냐고 묻는 이가 있다면, 부정하지 않을 것이다.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일자리가 있다는 건 큰 축복이니까. 그렇지만 안정적인 급여만이 이유는 아니다.


'아-!' 하며 터지는 배움의 소리가,

꺄르르르 넘어가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지지고 볶으며 매년 새롭게 써가는 이야기들이,

계절의 흐름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학급 살이가,

좋기 때문에.


뜨거운 열정이 아니라 은은하게 오래가는 뜨뜻함으로,

투철한 사명감의 교사보다는 월급날을 기다리며 퇴근 후의 삶을 즐기는 직장인으로,

무엇보다 행복한 나로,

오래오래 교실에 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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