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키파 Mar 21. 2022

하루에 30분은 나로 있고 싶어서

  학교가 일터인 나에게 3월은  그대로 '   없이' 바쁜 시기다. 처음 만난 아이들과 합을 맞추며 학급 살이의 기반을 닦아야 하고, 학기초라서 학교의 여러 부서에서 제출해달라는 서류들을 챙겨 보내야 한다. 거기에 3년째 이어지고 있는 지긋지긋한 코시국은  학기와 함께 정점을 맞아, 우리반은 개학 첫날 이후 24명이 모두 모인 적이 없다. 등교 중지 아이들을 위해 온라인 학습을 안내하고, 하루에도  통씩 오는 보호자들의 코로나 관련 문의를 받아낸다. 전국의 모든 담임쌤들.. 부디 건강을 잃지 마시길.

  오늘부터 일주일간은 학부모 상담 주간이다. 월요일. 우루루루루 수업을 끝내고, 교실 뒷정리를 마친 후 앉자마자부터 오늘 상담을 신청하신 보호자들께 전화를 돌리기 시작한다. 전화선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에 아이에 대한 애정, 염려, 냉소. 여러 온도의 마음이 담겨 전해진다. 아직 아이들을 만난 지 2주 남짓 된 상황에서 내가 아이들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할 수 있는 건 거의 없기에 보호자들, 주로 어머니들의 이야기를 듣고 맞장구치는 선에서 상담을 진행한다. 1학기 상담은 큰 의미가 있나 싶다. 그렇게 6건의 상담을 마치니 어느덧 퇴근시간이 훌쩍이다. 교실을 나서기 전 업무 시스템이 들어갔더니 확인하지 않은 공문이 한가득이다. 내 담당 업무는 다음 주부터 바쁘게 돌아간다. 계획서 마감 일자 좀 여유롭게 잡아주세요.... 하루 건너 하루 계획서 제출이 줄줄이다. 오히려 좋아. 짧고 굵게 빡! 바쁘면 한동안 숨 좀 돌릴 테니까. 학부모 상담에 업무 폭탄까지 가. 보. 자. 고!!! 결국 수업 준비는 하나도 못한다. 내일 수업 준비는 또 숙제로 안고 집으로 들고 온다. 그리고 방금까지 수업 준비를 했다. 준비, 라고 하기엔 다른 은혜로운 선생님들이 올려주신 멋진 자료들에 약간의 수정을 가미하는 정도이다. 난 과학은 자신이 없는데, 우리 반 아이들 중에 과학에 관심 있어 하는 아이들이 많아서 이 정도라도 준비를 해두어야 마음이 편하다.  

  그리고 지금. 잠들기 전, 온수매트를 데우며 노곤한 잠자리를 준비하는 동안 이렇게 몇 줄의 글을 써본다. 하루에 적어도 30분은 나로 있고 싶어서. 3월은 유난히도 출근길부터 입고 나간 '교사' 옷을 퇴근 후에도 벗지 못하는 날이 많다. 일터와 나로서의 일상의 경계가 없는 나날들이다. 그래도 이렇게 잠시나마 문장을 만들어내고, 생각을 정리하며 나로 돌아와 본다. 얼마 전, 도통 웃을 일이, 즐거운 일이 없다는 말을 했었다. 그래도 오늘 나는 아이들 덕에 많이 웃었다. 우리 반에 미운 아이, 나랑 부정적인 기운으로 부딪히는 아이가 없다. 다들 귀여운 구석이 있고, 아이답다. 넘치는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하는 몇몇 아이들을 탐탁지 못한 시선으로 보는 건 자제하려 한다. 넘치는 에너지를 분출하지 못하게 꽉꽉 눌러놓는 코시국의 교실에서 버티는 아이들이 고맙다. 잘 몰라도, 뭐라도 해보려는 아이들의 의지가 고맙다. 나는 퇴근 후에 함께 식사를 나누고, 선선한 봄기운을 느끼며 산책을 할 공동체 식구들이 있다. 함박웃음 지으며 볼 수 있는 드라마 2521의 이진과 희도가 있다. 이번 주말, 함께 바다를 보러 갈 친구가 있다. 편안한 잠자리와 나로 돌아와 쉴 수 있는 내 공간이 있다. 웃을 일이 없지 않다. 나쁘지 않은, 꽤 괜찮은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이제는 굿 나잇.

매거진의 이전글 펼쳐진 일기장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