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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파 Nov 01. 2022

수다 공동체, 고된 하루 끝의 숨구멍

  칼퇴는 누가 하는 것인가. 나 빼고 다 하는 것이다. 낡은 나무 미닫이문이 닫히는 소리가 고요한 복도에 유난히 크게 울린다. 교실 밖을 나와 어두컴컴한 계단을 내려오는데 바닥을 밟는 느낌이 어색하다. 양발의 높이가 다른 미세한 불편함에 발밑을 내려봤다. 세상에. 양발에 다른 신발이 신겨있었다. 왼발엔 스니커즈, 오른발엔 러닝화. 그래도 색깔은 흰색 계열로 맞췄다. 아침에 집에서 나올 때부터 이리 신고 온 것이다. 이걸 퇴근길에 발견하다니. 집에서 지하철역까지 자전거를 타고 오는 동안, 35분간 지하철을 타는 동안, 지하철역에서 다시 학교로 걸어오는 동안, 신발장에서 신발을 벗을 때, 다시 신을 때 마저 눈치를 못 챘다니. 오늘 아침, 내 맞은편에 앉은 사람들은 무기력한 출근길에 좋은 구경을 했겠다. 창피함이 몰려오기엔 타이밍이 늦어도 너무 늦었기에 부끄러운 감정은 금세 접어두고, 짝 안 맞는 신발이 지금의 내 상태를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이는 것 같아 작은 충격을 받았다.


정신이 없구나, 나사가 빠졌구나.


그럴 만도 한 것이, 내일 학교에 큰 행사가 있다. 이걸 준비하느라 지난 며칠간 숨 돌릴 틈이 없었다. 오줌 쌀 시간도 없었다고 하면 믿어주려나. 사람이 바쁘면 제 발에 무엇이 신겼는지도 알아채지 못한다는 것을 오늘 알았다. 말 그대로 우습고도 슬픈 이 장면을 찍어 친구 몇몇에게 보냈다. 고단한 하루의 마무리로 수다가 필요했다. 텍스트로든, 음성으로든 이 에피소드를 나누며 함께 웃고 싶었다. 아니, 실은 위로받고 싶었다.  


내 마음을 딱 알아주는 이름이 진동과 함께 휴대폰 화면에 떠오른다.

"자기야, 괜찮아?"

여기서 자기는 연인을 일컫는 것이 아니다. ㅎ

주로 중년 여성이 자기보다 어린 성인에게 친근함을 담아 부르는 그것이다.

이 언니는 중년은 아니지만.

괜찮아? 첫마디에 마음이 스르르 녹는 것 같았다. 수다에 시동을 건다.


"안 그래도 월요일부터 네 생각이 나는 거야. 한창 바쁠 텐데 싶어서 수요일 지나면 연락하려고 했거든. 그런데 신발 사진 덕에 며칠 먼저 통화하네, 좋네."


그리고 짝짝이 신발 이야기로 한참을 웃었다.


"정신을 좀 빼놓고 사는 것도 괜찮다야, 에피소드도 생기고. 계속 나사 하나 풀고 살아. 재밌다."

 - 그러게요, 세상이 미쳐 돌아가니 나도 약간 미쳐야 되나 봐요.


"그래, 좀 놓고 살아야 돼."


너무 내 이야기만 떠들었나 싶어 언니의 안부를 물었는데, 별일 없다는 말을 한다. 별일 없이 살기가 어려운데. 아마 별일이 있지만, 오늘은 나에게 귀를 열어주기로 마음먹은 것일 테다. 고마운 마음. 다음에 갚을게.  

저녁 잘 챙겨 먹고, 내일 행사가 끝나면 더 맛난 거 먹으라는 인사로 통화를 끝냈다.

맛있는 수다가 저녁을 배불린다.


 내가 애정 하는, 얼마 전에 세 번째 정주행을 끝낸 드라마가 있다. 수다 블록버스터, 멜로가 체질이다. 엄청난 양의 티키타카가 주를 이루는 이 드라마에 거의 매회 빠지지 않는 장면이 있다. 바로 하루의 마무리로 함께 사는 주인공들이 거실 소파에 앉아 수다를 떠는 장면이다. 늘 하늘빛 캔맥주와 함께 (PPL 대성공). 나는 그렇게 서로의 하루를 나누며 같이 웃고, 울고, 욕해주고, 단호한 팩폭도 때리며 맥주를 마시는 그들의 모습이 참 좋고도 부러웠다. 드라마 속 인물들이 고된 세상살이에도 버티며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충전해주는 데는 그들의 든든한 수다 공동체의 역할이 크다고 생각했다. 오늘은 내가 가진 수다 공동체의 현존을 실감했다. 전화기 너머로 나누었던 수다가 숨구멍을 내주었다. 그리고 맥주는 혼자 마셨다. 남아있는 작은 틈의 아쉬움까지 꽉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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