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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파 Jan 21. 2023

내 표정이 뭐가 어때서

1차 남매 대전 발생 위기 진압

  내일 아침에 당근 라페 샌드위치 해줄게.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늦잠을 잘 다음 날의 나를 예상하지 못한 발언이었다. 함께 늦잠을 자고 일어난 동생이 느적느적 내 방으로 들어온다.


  "샌드위치"


저게 이씨. 나한테 샌드위치 맡겨 놨나. 샌드위치를 해주는 것은 너에게 베푸는 나의 호의인데 마치 밥상을 차리는 것은 내 일인양 당연하게 요구하는 그의 말을 듣자마자 잠기운을 떨치기도 전에 기분이 팍 상했다.


 "약속 시간이 얼마 안 남아서 샌드위치 만들 시간은 없겠다. 김치찌개 데워 먹어라.

  오늘은 뭐 할 건데? 오늘은 꼭 국민취업제도 신청하러 가래이."


상한 기분을 최대한 덜어내고 답했다. 그랬다고 생각했다. 주방에서 어제 끓인 김치찌개를 데우는 동생이 한숨을 푸우욱 쉰다. 수저를 꺼내면서 또 한 번 푸우욱.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한숨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이 불편하다는 신호를 보내는 한숨이었다. 소극적이지만 확실한 신호는 나에게 전달되었다.


  "왜 그렇게 한숨을 쉬어?"

    - 누나 때문에.


뭘까, 이건. 샌드위치 안 해줘서 삐진 건가.


"내가 뭐 잘못했나?"

  - 누나 왜 내 볼 때 표정 그렇게 하는데. (표정 따라 함) 그런 표정 지을 때 기분 나쁘다.


나는 내가 어떤 표정으로 동생을 대하는지 확인할 수가 없으니 억울한 마음이 먼저 들었다. 일단 해명했다.


"나는 그냥 있을 때는 원래 표정이 밝진 않다. 니한테 불만이 있거나 그런 거 없으니까 오해하지 마라."


  그리고 방문을 닫았다. 나도 한숨을 푸우욱 쉬었다. 동생과의 한집살이를 시작한 지 13일째. 1차 남매 대전의 발생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몰려왔다. 샌드위치 요구 건부터 시작해서 이제 내 표정 지적까지. 혼자서 편하고 평화롭게 살고 있던 내 공간에 누군가 함께 살고 있다는 것 자체가 어색하고 불편한데 이제 감정적으로 부딪히는 상황까지 생기다니, 시간을 돌려 동거를 제안한 과거의 나를 뜯어말리고 싶었다. 그리고 함께 삶으로써 얻은 장점들은 새까맣게 잊고 단점들만 우수수 떠오르기 시작했다. 늘어나는 생활비, 내 모든 짐이 한 곳에 옮겨온 복잡한 내 방, 어지러운 신발장, 동생에게서 나는 아저씨 냄새, 샤워할 때나 옷 갈아입을 때마다 신경 써야 하는 불편함, 대책 없이 쉬고 있는 동생을 지켜봐야 하는 답답함, 그에게 느끼는 한심함, 한심함을 느끼는 나를 향한 죄책감.    


"내가 진짜 하고 싶은 말 다 해볼까? 나는 요즘 니 보면 진짜 한심하다. 이렇다 할 계획도 안 세우고 놀고먹기만 하고 있잖아. 내 집에서 얹혀사는 주제에 그렇게 꼬우면 나가서 살든가. 고마워하지는 못할 망정 뭐 그렇게 바라는 게 많은데? 스물아홉이나 처먹고도 아직 방구석에서 빌빌거리고 있으면서. 앞으로 니 인생 어떻게 살아야 할지 니가 제일 간절하고 답답해야지 옆에서 아무리 이야기해 봤지 무슨 소용이 있는데 그렇게 인생 망가뜨리면서 살꺼가."


이 말을 입 밖으로 냈다면 파국을 맞았을 것이다. 혼자 마음을 삭히며 파국열차의 질주를 막았다. 별 일 아닌 일을 큰 싸움으로 키우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싶지 않았다. 잠깐의 불편함을 삼키는 대가로 위태로운 평화를 얻었다. 이런 아슬아슬한 갈등 기운이 앞으로 얼마나 많을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갈등을 겪은 후 지혜로운 해결을 하는 것보단 서로를 참아주는 인내로 갈등을 만들지 않는 것이다. 아직은 어떻게 싸워야 할 지도, 싸우고 나서 화해하는 방법도 배우질 못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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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놈의 당근 라페 샌드위치는 오늘 아침에 해줬다. 건강한 음식 잘 만든다며 인정을 보냈다.

설 연휴는 혼자 보내기로 했다. 동생은 본가에 내려갔다. 아싸 자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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