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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파 Jul 22. 2023

얘들아, 오늘 선생님 옷이 왜 검은색이었을까?

2반, 안녕? 선생님이야.

우린 오늘 방학식을 했지. 얼마나 기다리던 방학이야, 그렇지?

모두들 한 학기 동안 저마다의 모습으로 자라느라 고생했어. 고마워.

오늘 선생님의 옷을 보고 시안이가 그랬지.

"선생님, 오늘 머리도 검정, 위에도 검정, 바지도 검정이네요, 어둠의 선생님 같아요."

나는 "그래~? 어둠의 선생님 같아~?" 하며 씨익 웃었지.


실은 말이야, 선생님의 동료가 하늘나라에 갔거든.

그 선생님의 죽음을 추모하려고 검은색 옷을 입었단다.

추모가 뭐냐구? 누군가의 죽음을 기억하고 슬퍼하는 거야.

추모의 마음을 표현할 땐 검은색 옷을 입곤 하거든.

아마 그래서 1반, 3반, 4반 선생님들도 모두 검은색 옷을 입고 왔을 거야.


선생님의 동료면 우리 학교 선생님이냐구?

그건 아니야,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이름도 모르는 저-기 서울에서 근무하셨던 선생님이야.

왜, 너희도 나랑 비슷한 친구를 만나면 괜히 가깝게 느껴진 적 있지 않니?

얼굴을 모르는 다른 지역의 친구라도 같은 열한 살이고, 나랑 똑같이 아이브를 좋아한다면 괜히 친근감이 들고 그런 적 말이야.

선생님도 그래. 같은 일을 하고, 비슷한 환경에서 공부해 왔고, 타지에 올라와 자취를 했다고 하니 괜히 가깝게 느껴지고 그렇더라. 동생 같고 말이야. 게다가 선생님으로 일한 지 이제 2년이 되셨다고 하더라고.

그렇게 어린 선생님이, 이제 막 꿈을 펼치며 훨훨 날아야 할 선생님이. 너무나 괴로워하다가 외롭게 돌아가셨어. 그것도 교실에서.  


선생님이 교실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대.

너희들보다 어린 1학년 아이들을 데리고 지지고 볶으며, 때론 웃고 때론 속상해하며,

어떤 추억, 어떤 흉터를 남겼을 그 교실에서.

나는 그 선생님의 마음과 고통을 감히 상상할 수도 없어서 그저 이렇게 부치지도 못할 편지를 쓴다.


우리 반엔 선생님을 메쳐 던지고, 발로 밟고 때리는 학생은 없지. 운이 참 좋았어. 우리 반엔 선생님에게 욕설을 퍼붓거나 폭언을 하고 밤늦게 전화해서 날 괴롭히는 학부모는 없어. 운이 정말 좋았어.  아직까지는 내가 잘못된 행동을 하는 너희의 이름을 불렀다거나, 너희를 훈육했다는 이유로 '정서적 아동학대'로 고소당한 일은 없었지. 운이 좋았어.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은 건 그저 운이 좋았기 때문이야.


그런데 말이야, 이렇게 그저 행운에 기대어 올해는 무사히 지나가길 바라며 한 해, 또 한 해를 넘기면 되는 걸까? 선생님의 동료들은 계속 죽어가는데 말이야. '나만 아니면 돼' 하며 다른 동료들의 죽음과 절규를 못 본 체하면 되는 걸까? 그건 아니잖아. 내가 너희에게 그렇게 가르치지 않잖아. 다른 사람들이 힘들면 도우라고, 다른 사람이 슬프면 함께 울고 위로하라고. 이 세상은 나 혼자 살아가는 게 아니라고. 선생님이 그렇게 말했잖아.


그리고 말이야, 솔직히 선생님은 무서워. 어느 해에 나를 때리는 학생을 만난다면 어떡할까, 나를 동등한 인간으로 대하지 않고 무시하며 인권을 짓밟는 학부모를 만난다면 어떡할까, 무고하게 아동학대범이 되진 않을까. 매일매일을 보이지 않는 불안과 두려움으로 출근을 해. 교문에 들어가기 전에 크게 심호흡을 한번 하곤 해.

나는 절대 이런 마음으로 학교로 향하는 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건 아니었거든.  


오늘 저녁에도 선생님의 휴대폰에 너희들, 또는 너희의 부모님이 보냈을 문자가 왔다는 알림이 떴어.

그 화면을 보는 순간, 선생님은 두려웠어. 혹시나 민원 문자일까? 지난 1학기 동안 내가 너희나 너희 보호자에게 책 잡힐 만한 말이나 행동을 한 건 없나? 재빠르게 검열했어. 그런데 무슨 문자였는지 아니?


'선생님 1학기 동안 수고하셨습니당~ 한 달 남은 방학 동안 푹 쉬시고 방학 끝나고 봬요~^^ 감사합니당!'

하는 유현이의 예쁜 마음이 담긴 문자였어. 이런 마음이 담긴 연락을 기대하기보다 나에게 상처를 남길 공격에 방어태세를 갖추는 내 모습이 참 슬펐어.


나는 오늘 감사 문자를 받고 여름 방학을 맞았지만, 선생님의 동료는 하늘나라에 갔어.

'나'와 '선생님의 동료'의 자리는 언제든지 바뀔 수 있어. 선생님은 오늘 그저 운이 좋았어.

 

어느 날, 동연이가 선생님한테 그랬지.

"선생님이 좋으면 저희도 좋고. 선생님이 느끼는 대로 저희도 다 느끼죠."

선생님은 그 말을 듣고 사실 울 뻔했어.

열한 살 너희들도 아는 사실을 왜 어른들은 모를까?

교사가 행복하면 그 행복은 가르침 속에 녹아 고스란히 너희에게 전달된다는 것을.  


나는 오래오래 너희 곁에 있고 싶어.

아마 세상의 많은 선생님들이 그럴 거야.  

선생님들이 죽지 않고, 살아서, 행복하고, 안전하게.

온전히 너희를 가르치는 데에만 모든 에너지를 쓸 수 있는.

그런 학교가 되면 좋겠어.


방학 잘 보내고 우리,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만나자.

부디 이 방학이 진실이 묻히는 시간이 되지 않길 바라.  


그리고

하늘에서 끝나지 않을 여름방학을 맞은 선생님,

그곳에선 행복하기만 하세요.

남은 우리는 변화를 만들어볼게요.

지켜봐 주세요.


* 글 속의 아이들 이름은 모두 가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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