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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파 May 16. 2023

0515, 그럼에도 희망을 노래할래

나의 여섯 번째 스승의 날

  온갖 기념일들로 빽빽한 5월 달력의 한가운데인 15일, 스승의 날이 돌아왔다.

선생님께 감사와 사랑을 전하는 날이라는 이 날의 의미가 퇴색된 지는 오래되었다. 먼저는 청탁 금지법인 김영란법이 만들어진 후로 스승의 날은 고사리손으로 준비해 온 선물을 상처받지 않게 돌려보내기 위한 분주한 실랑이를 벌이는 날이 되었기 때문이고 그보다 더 중한 이유는 지금의 학교는 스승의 날을 축하할 시간의 여유도, 마음의 여유도 없기 때문이다. 연일 교권침해와 과도한 업무로 병들어가는 동료들의 소식과 최근에는 무고하게 아동학대 가해자로 소송을 겪는 동료들의 소식을 들으며 오늘의 나는 운이 좋아 무사히 넘겼다며 안도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교직 탈출은 지능순’이라는 말이 진심 어린 농담으로 떠도는 현실을 그대로 둔 채로는 스승을 위한다는 이 날을 온전히 즐길 수 없는 것이다. 스승까진 바라지도 않는다. 한 ‘사람’으로서 안전하고 행복하고 건강하고 정당하게 일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진다면 스승의 날은 없어져도 된다. 학교에서의 매일이 축제이고 잔치 같을 테니까.


그럼에도 오늘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누군가는 희망의 노래를 불러야 하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서다. 교사들을 점점 벼랑으로 내모는 현실 속에서도 이 일을 하는 본질인 ‘아이들‘은 오늘도 나를 사랑으로 채워준다. 따뜻하게 남긴 이 기록이 우리의 시린 현실을 조금이나마 녹여주지 않을까.



  스승의 날의 출근길은 기대를 안 하려고 해도 어쩔 수 없다. 혹시나 비밀스러운 이벤트를 준비해 뒀다면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미리 생각해두기도 한다. 혹여나 편지 한 장도 건네는 아이가 없다면 서운함에 무너질 유치한 내가 두려워진다. 교실 문을 열고 들어선 교실은 여느 때나 다름없다. 아이들은 줄지어 아침인사를 하러 나오고 주먹을 부딪히며 '좋은 아침'을 외치지만 마음속 한편에 서운함이 올라온다.

  '올해는 편지 써오는 사람도 없는 거야...? 나 굉장히 소심하고 유치한데.'


  아침 활동 시간, 분주함이 느껴진다.

 ‘요놈들 뭔가 준비하는구나. 귀여운 짜식들.' 금세 마음이 풀어지는 유치한 안 선생. 4절 도화지가 교실 이리저리로 오간다. 이렇게 격렬하게 티를 내며 준비하는 이벤트라니. 나는 눈을 감고 귀를 닫고 애써 모르는 척을 하면서도 기특하고도 귀여운 마음에 자꾸만 웃음이 비실비실 새어 나온다.


  2교시 쉬는 시간, 잠시 자리를 비웠다가 교실로 향하는데

  "선생님 오신다!!!!!!!!!!!!"

망꾼의 요란한 알림이 들린다. 교실에 들어가려는 나를 아이들이 막아선다.  

  "아~~ 아직 안 돼요!!!!!!!"

나를 복도에 한참 세워놓고는 교실에서 저들끼리 소란스레 분주하다. 이제 들어오라는 허락을 받고 문을 열었더니 아이들이 양쪽으로 나란히 서서 길을 만들어놓고는 '스승의 은혜'를 부르기 시작한다. 아침부터 틈틈이 티 나게 준비한 건 롤링 페이퍼였다. 4절 도화지 두 장에 가득 아이들의 마음이 적혔다. 저마다 한 마디씩 남긴 '사랑해요' '죄송해요' '감사해요' '축하해요'  뻔하고 형식적인 말일 수 있지만 눈으로 읽히고 보여서, 확인할 수 있는 사랑은 마음에 더 와닿는다. 급히 휴대폰으로 찾아 튼 스승의 날 노래에 맞춰 작은 휴대폰 화면으로 가사를 커닝하며 부르는 노래는 나의 행복 지수를 넘치게 채웠다. 이벤트 성공여부가 내 표정에서 드러났는지 대성공에 기뻐하며 재잘재잘 비하인드 스토리를 풀어대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다.

  "오늘 아침활동 시간부터 열심히 준비했어요!!"

  "누가 안 쓰고 게임하고 있는데 열심히 꼬셔서 편지 쓰라고 했어요!"

  "쉬는 시간에도 안 쉬고 준비했어요."

  "오늘 수업시간에도 열심히 하려고 했는데~  발표도 많이 하고 말 잘 듣자고 했어요."  

  "00이 (우리 반 금쪽이)가 선생님 힘들게 해서 죄송하대요~ 앞으로 잘한대요."

   (물론 OO 이는 오늘도 친구들을 괴롭혀 나에게 혼이 났다.)  

  "다 같이 사진 찍어요!!!!!"

  

  한바탕 이벤트가 끝난 그때, 핸드폰에 반가운 이름이 보낸 메시지가 하나 왔다. 5년 전, 나의 첫 제자의 연락이다. 또래 친구들보다 유난히 작았던, 그림을 참 잘 그렸던, 3월에 함박눈이 내리던 날 혼자 새초롬이 서서 사진을 찍었던 꼬맹이가 어느덧 고등학생이 되었다고 한다. 메시지의 문장들도 이제 꽤 성숙해졌다. 아직도 나를 떠올려주고 연락을 주는 그 마음이 너무 고마웠고 마음이 가득 채워지는 듯했다. 열정만 가득했던 초임교사였던 미숙한 나였지만 그때 아이들에게 쏟았던 정성과 애정은 아이들에게 오롯이 전달되었나 보다. 진심은 통한다는 말을 나는 한번 더 새겨본다.



  나의 여섯 번째 스승의 날은 따뜻하게 기억될 것이다. 한동안은 아이들이 부르는 스승의 은혜를 돌려 들으며 고된 현실에 무너진 마음을 다시 일으키고 학교 현장에 대한 회의적인 마음에 긍정을 끼얹어볼 것이다. 희망은 여전히 있다. 아이들에게 있고, 사랑에 있다.  


  오늘 이 글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스승의 날이라는 오늘도 아이의 폭언에, 학부모의 악성민원에, 관리자의 갑질에 시달린 선생님들이 분명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의 모든 선생님들이 감사와 사랑을 주고받아야 할 오늘을 온전히 즐길 수 있도록 학교가 회복되길 바란다. 매일을 축제처럼 즐길 수 있는 일터가 되길 바란다. '교사가 행복해야 아이들이 행복하다' 진리와 같은 말이 우리의 현실이 되길 바란다. 이 땅의 모든 선생님들께 감사와 응원을 전한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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