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학교에서 영어를 정식 과목으로 배우기 시작한 건 초등학교 3-4학년 무렵이었다. 그쯤만 해도 학교에서 영어를 처음 접하는 친구들도 반에 간혹 있었다. 영어를 배워야 한다는 인식은 있었지만, 아주 일찍부터 당연히 해야 하는 정도는 아니었던 걸로 기억한다. 학교에서 영어를 처음 배우는 친구들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요즘은 영어 유치원을 보낼 정도로 영어공부는 당연해졌다.
그렇게 일찍이 영어 공부를 시작해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토익, 토플, 토스 .. 짧게는 10년, 길게는 20년 혹은 그 이상까지. 대체 영어공부는 끝이 보이지 않는다. 끈질기게 쫓아다니는 영어 때문에 고생도 톡톡히 한 걸 생각하면 영어가 싫어지지 않는 것도 이상한 일이다.
하지만 그렇게 긴 시간 동안 영어를 공부하면서 영어를 왜 배워야 하는지, 영어를 어떻게 배울 것이고, 배워서 어디에 활용할 수 있을지는 별로 고민해본 적이 없다. 그냥 좋은 수능 성적을 위해, 토익 고득점을 위해 단어와 문법을 외우고 듣기를 연습하는데, 과연 그것만으로 충분한가에 대해서는 물음표가 남는다. 나는 주변에서 그렇게 노력한 끝에 결국 토익 900점대를 받고, 토스 lv.6을 취득해도 영어를 읽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친구들을 많이 봤다.
물론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다. 사회에서 요구하는 기준들이 높고, 어떻게든 꾸역꾸역 그 기준을 맞추지 않으면 그 다음 스텝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왜 우리는 영어를 이렇게 밖에 배우지 못하고, 또 영어를 언어로써 활용하지 못하는 것일까? 대체 영어를 배우면 뭐가 좋은 걸까? 이 부분에 대해서 한 번쯤은 꼭 되짚고 영어를 바라봐야 한다.
대체 영어는 왜 배워야 하는 걸까?
무엇을 하든 간에 '왜'라는 질문을 던지는 습관 덕택에 오랜 시간 동안 영어를 왜 배워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했다. 내 영어공부를 되돌이켜보면 몇 가지 단계가 있었다.
처음 초등학교에는 그냥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었다. 기억이 나지 않는 유치원 시절부터 우리 집에는 영어 동화책과 테이프가 매주 집으로 배달 왔다. 그리고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도 정말 많은 영어책을 읽었고, 따라 읽었다. 뭐 가끔은 단어와 문법 공부도 조금씩. 다행스러운 것은 재미없는 문법만 주구장창 외우는 공부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 다음에 조금 중요한 변화가 생겼다. 스스로 영어를 공부하기 시작했는데 그 이유는 바로 책을 읽기 위해서였다. 당시 한창 해리포터가 연재 중이던 때로 시리즈의 6번째 이야기인 '해리포터와 혼혈왕자'가 막 출간된 것이다. 하지만 영어로 쓰인 책이 번역되어 우리나라에 출간되는 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해리포터 시리즈의 열성 팬이었던 나는 영어판을 읽기로 결심했다. 부모님을 설득해 영어판을 구매했지만, 책은 크기도 컸고, 두꺼웠고, 심지어 글씨는 너무 작았다. 하지만 읽기는 해야겠어서 떠듬떠듬 읽어가던 기억이 난다. 생각보다 어려운 단어와 문장에 속도는 느렸고, 읽어도 이해하지는 못했다.
결국 영어판을 다 읽기 전에 번역본이 출판되었지만 내게는 큰 도약이었고 영어공부에 대한 동기를 불러일으켰다. 영어판으로 먼저 읽어볼 수 있었던 기회를 놓친 것이 아쉬웠다. 그래서 해리포터 열성팬이라면 영어판 전권 정도는 소장하고 읽어야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하지만 여전히 해리포터의 벽은 조금 높았다. 그래서 영어 공부를 했다. 처음에는 책을 읽고 오디오북을 듣고 단어를 찾는 정도였지만 나중에는 정말 미친 듯이 많은 책을 찾아 읽고, 공부하고, 외우고, 또 썼다.
해리포터를 읽고 나서는 내가 좋아하던 소설책의 영어 판을 찾아 읽었다. 덕분에 중학교 3학년부터 작가 로알드 달의 마틸다, 찰리와 초콜릿 공장, 찰리와 유리 엘리베이터, 마녀들, 레모니 스니켓의 위험한 대결 등의 책을 원서로 읽었고 나중에는 한글로 읽어보지 않은 소설책도 간간히 읽었다. 대학에 들어와서는 각종 자료조사를 영어로 한 덕분에 더 많은 자료를 찾을 수 있었고, 영어 기사, 칼럼, 블로그 포스팅 등을 읽으면서 그곳에서의 최신 이야기를 직접 읽었다. 물론 책읽기 만으로 이 모든 것들을 가능하게 된 것은 아니었지만 내 가장 큰 동기는 '책'이었고 재미였고, 정보였다.
앞의 이야기가 조금 길어졌지만, 나는 영어를 배우는 것은 좋은 정보를 얻기 위해서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좋은'이라는 말은 해석의 여지가 다양할 수 있다. 누군가에게는 읽고 싶었지만 번역되지 않은 소설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해외 논 문일수도 있고, 또 누군가에겐 해외 뉴스일 수도 있다. 내게 가장 와 닿았던 것은 한글로 검색할 때보다 영어를 활용할 때 훨씬 더 많은, 최신의, 질 좋은 자료를 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어쨌든 자신의 필요에 맞는 정보를 찾기 위해서 '영어'는 아주 좋은 수단이며, 또 때로는 권력이 된다.
당신은 왜 영어공부를 하는가? 어쩌면 그 오랜 세월 동안 영어를 공부해오면서도 깊이 고민해본 적 없는 주제이다. 남들 다 잘하니까, 스펙 쌓으려고, 그래도 잘하면 좋으니까 정도가 아니라 진짜, 영어를 배우면 대체 뭐가 어떻게 좋은 것인지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영어를 읽으면 얻을 수 있는 것이 참 많다. 어떤 공부든 '읽기'가 기초가 된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읽기만 잘해도 말하기, 듣기, 쓰기의 영역이 어느 정도 보완된다. 게다가 읽기는 정보를 가장 쉽고 간편하게 얻을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