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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달을 다 팔고 싶어졌다

뉴럴이 뉴런을 지배한다

by 현진형

페달보드를 열심히 세팅하고 뿌듯해하던 지난주. 잘 세팅된 보드로 녹음을 해보려고 케이크워크를 켰다. 보드 연결하기 전에 간단한 테스트를 위해 내장된 TH3 플러그인을 켰다. 이거 저거 돌려보다가 역시 이런 소프트웨어는 별로라며 다른 대안이 있는지 검색해 봤다. 그러다 뉴럴을 보고야 말았다. 아니 듣고야 말았다.


기타 릭, 앰플리튜브, 블루캣, 톤엑스 등 무료로 배포해 주는 플러그인은 모두 써봤다. 그중엔 톤엑스의 크런치 앰프톤이 가장 깔끔했다. 하지만 뉴럴에 비할바는 아니었다.


깔끔하게 세팅된 뉴럴에 기타만 연결해서 연주해 보니 발 밑의 페달보드가 다 필요 없어 보였다. 이렇게 깔끔한 톤이 이렇게 쉽게 나오다니.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쉽게. 나처럼 톤을 다양하게 쓰지 않는 사람들은 플러그인 하나만 구입해도 충분하다. 내 페달보드 10분의 1 가격도 안 된다.


물론 아날로그에는 아날로그의 맛이 있다. (솔직히 블라인드 테스트 하면 자신 없다. 그냥 그렇게 믿는 거다. 내가 공들여 만든 거니까. 내 애정이 붙은 페달과 누가 만들어 준 건 같은 소리라도 느낌이 다르니까.) 하지만 뉴럴의 소리는 너무 깔끔했다. 믹싱까지 거친 것 같은 소리. 중간 단계를 모두 건너뛰고 마지막 보스판까지 바로 가 버린 느낌. 새삼 디지털 음향 쪽이 엄청 발전했다는 걸 알았고 내가 그걸 너무 늦게 알아버렸다는 걸 깨달았다.


결국 뉴럴 플러그인 2개 구매. 페달보드는 이제 어찌 처분해야 할지 고민이다. 소형 페달보드로 최소화하려고 가닥을 잡았는데 나름 고르고 골랐던 놈들이라 어느 하나 방출하기가 쉽지 않네.


어제도 한참을 발 밑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다시 커버를 씌웠다. 바닥에 붙은 밸크로 하나 떼어내기 쉽지 않지만 성향을 생각하면 2/3는 처분해야 한다. 아니, 성향이 문제가 아니라 합리적이고 효율적이고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그렇다. 뉴럴 세트에는 컴프도 노이즈게이트도 리버브도 딜레이도 모두 포함되어 있다. 왜 다들 쿼드코어텍스로 갈아타는지 알 것 같다. 왠지 점점 찬양글이 되어가고 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부정할 수가 없다. 앞으로 뉴럴을 능가할 플러그인이 또 나올 거고, 플러그인을 능가할 신기술이 또 나오겠지만 지금은 뉴럴이다.


아, 페달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뉴럴 플러그인 한 방에 이렇게 힘겹게 쌓은 페달성이 무너질 줄이야. 하지만 내 노력에 대한 아깝거나 페달에 대한 아쉬움보다는 신문물에 대한 호기심이 더욱 크다. 지금도 머릿속에 뉴럴 프리셋들을 하나씩 다 돌려보고 마음에 드는 걸 찾은 다음에 나에게 최적화된 톤 작업을 해보고 싶은 생각밖에 없다. 뉴럴이 뉴런을 지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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