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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는 거짓말 하지 않는다

하지만 개인취향이지요

by 현진형

세팅을 끝냈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페달보드를 다시 정리하면서 시그널 체인을 바꿨을 뿐 소리는 아직 엉성했다. 나름대로 순서를 고민했고 페달 간의 조화도 생각했지만 실제로 소리를 내보면 예상과 다른 경우가 많았다.


먼저 컴프레서. LYR사의 Cali76 복각 페달, 6개의 노브가 달려서 조정 난이도가 높았다. 처음에는 Input과 Output만 손봤다. 기타 소리가 약간 눌리는 듯한 느낌만 있어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연주해보니 원하던 느낌이 아니었다. 내가 원하는 뉘앙스가 어떤건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다시 Attack을 조정했다. 살짝 빠르게. 릴리즈는 길게 열어두고, Blend는 2시쯤. 노브를 수십번을 돌려보고 나서야 어느 정도 감이 잡혔다.


KOT 왼쪽 채널은 항상 켜두기로 했기에 설정이 더 중요했다. 드라이브는 최소한으로. 거의 클린에 가깝게. 볼륨은 Unity보다 아주 살짝 위. (Unity는 페달을 켜고 껐을때 볼륨 차이가 없도록 맞추는 걸 말한다.) 중간에 톤이 부스트되기보단 자연스럽게 묻히는 정도가 좋았다. 유튜브를 맹신하는 건 아니지만 많은 기타리스트들이 왜 페달보드에서 항상 왼쪽 채널을 켜 둔다고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소리가 앞으로 튀어나오기보단, 살짝 뒤로 눌리면서도 밀어주는 느낌. (소리를 글로 표현하는 건 항상 어렵다. 잘못 쓰면 너무 오글거리거나 너무 추상적인 말이 되어버린다. 그래도 느낌을 글로 표현하는 건 나름 즐겁다.)


다음은 TS9 DX. 솔로 부스트 용도였다. 오래 일했던 부서에서 나오면서 나름 굿바이 선물이라고 부서원들한테 받았던거다. 뭘 받고 싶으세요?라는 질문에 망설임 없이 TS9이라고 말했다. 페달보드에 꼭 올리고 싶었던 드라이브. 드라이브는 살짝만 주고 볼륨을 올렸다. 드라이브를 너무 올리면 톤이 두꺼워지면서 먹먹한 느낌이 올라온다. Tone은 12시, Volume은 2시. 이 페달의 역할은 솔로할 때 미드를 조금 부풀려주면서 자글자글한 느낌을 주는 부스트. 소위 맛깔나는 소리로 바뀐다.


BB Preamp는 클린 부스트. 페달보드를 만든 이후 수 많은 바꿈질 속에서도 절대 팔지 않았던 페달. 깨끗한 볼륨 부스트로는 이거만한게 없다. (아무생각없이 처음 샀을 때는 메인 드라이브로도 썼었는데 부스트 용도로 훨씬 적절하다.) 게인은거의 제로에 가깝게, 볼륨은 12시. 처음엔 톤을 12시에 뒀는데 소리가 너무 밝았다. 10시로 깎았더니 딱 좋았다. 전체적인 톤을 들쑤시지 않으면서 볼륨만 살짝 끌어올리는 느낌. 이 페달은 TS9보다 앞에 두기로 했는데 그 선택이 맞았다. 부드럽게 미드가 쌓였고 다이내믹도 살아났다.


Gladio는 소위 덤블톤을 내주는 드라이브. 존 메이어 톤이라고도 하는데 솔직히 그 느낌인지는 잘 모르겠다. (오리지널이 아니라 복각 제품이라 그럴지도) 다만 드라이브 질감 자체는 너무 좋다. 주저없이 메인 드라이브로 선택할만큼 마음에 쏙 들었다. 듀얼채널인데 양쪽 채널을 동시에 켜도 잡음이 생기지 않고 부드럽게 부스팅 되는 것도 완벽했다. 다만 하이게인 드라이브가 아니기 때문에 적절하게 세팅해두지 않으면 메인 드라이브로서 중심이 흔들릴 수 있다. 게인은 9시, 볼륨은 12시. 톤은 1시로 열어줬다. KOT랑 같이 활용해도 좋고 단독으로 써도 충분했다. 공간감이 느껴지는 드라이브.


Suhr Riot는 모던 하이게인. 요즘 유행하는 솔다노나 EVH 등의 앰프헤드 느낌을 기대하고 샀었는데 그것과는 달랐다. 하이게인이지만 약간 퍼즈의 느낌이 섞였다고 할까. 어쨋든 디스토션 본연의 역할은 충분히 해준다. 솔직히 말하자면 바꾸고 싶은 욕구가 제일 큰 페달 중 하나. 하지만 요즘은 앰프 시뮬레이션이 너무 잘 나오다보니 굳이 바꾸지 않고 필요할 때 쓰기로 했다. 게인은 12시, 톤은 10시, 볼륨은 Unity. (디스토션을 켰을 때 너무 볼륨이 부스팅 되지 않도록 맞춰주는게 좋다.)


마지막으로 리버브랑 딜레이. 리버브는 잘 쓰면 공간감을 줘서 소리에 풍성함을 가져다 주지만 조금만 과하면 전체 톤이 지저분해진다. 딜레이는350~450ms 정도가 딱 적당했다. (딜레이는 고수의 영역인 듯)


노이즈 게이트는 드라이브를 켜둔 상태에서 잡아가면서 조절해야했다. Threshold는 30~40 정도가 적당했다. 너무 빡빡하게 잡으면 리버브도 같이 잘려나가고 너무 느슨하면 피드백이 걸렸다. 딱 그 중간 지점을 찾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NUX Amp Academy의 기본세팅. 모델은 Brit 800. Gain은 5, Bass는 4, Middle은 7, Treble은 5. Presence는 4. IR은 ML Sound Lab의 무료 IR 중 Brit Green. Marshall 4x12, Greenback. 게리무어 톤을 내는데 좋은 조합으로 검색해서 받았다. 이 조합은 지금까지 써본 IR 중 가장 마음에 들었다. (물론 이 마음은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하다보면 언제나 부족하다는게 느껴지고 그 때부터 다시 연습은 뒷전이고 바꿈질이 시작된다.)


모든 설정을 끝내고 기타를 잡았다. 노브는 거짓말하지 않았다. 페달은 정직했다. 내가 하나씩 쌓아간대로 그대로 반응했다. 원하는 톤이 만들어지면 연습하는게 즐겁다. 좀 더 다양한 표현을 해보고 싶어진다. 이 모든 과정을 거치고 나니 확실해졌다. 시그널 체인이 지도라면 노브 세팅은 그 위에 올려진 길이었다. 이제 그 길을 직접 걸어보면 된다. 앞으로 무엇이 남고 또 무엇이 사라질지 확인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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