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일기 #10:
멈추고, 충전하고, 다시

여행, 맛난 음식 그리고 가족

by KAY 케이

최근 2주간 휴가를 받아 한국에 다녀왔다.

뉴욕의 춥고 깜깜한 겨울을 이 휴가 하나만 기다리며 버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언제나 규칙적이고 체계적인 루틴 속에서 착실히 살고 있었지만,

겨울의 차가움과 바쁜 일상 속에서 조금 지쳐 있었던 것 같다.


이번에는 늘 타던 대한항공이 아니라 에어프레미아를 이용해 보았다.

맨해튼 서쪽에 살아서 뉴어크 공항이 JFK보다 훨씬 가까운 것도 이유였고,

동생이 프리미엄 이코노미석이 장시간 비행에도 괜찮다고 추천해 줘서 도전해 봤다.


한국행 비행기를 탈 때마다 나는 항상 울컥하는 마음을 느낀다.

어릴 적부터 부모님과 떨어져 지내면서

자연스럽게 홀로 생활하는 것에 익숙해졌고,

이제는 해외생활도 씩씩하게 잘하고 있지만

가끔은 타국에서 혼자 생활하는 것이 힘들고 지칠 때가 있다.

그럴 때 비행기 문 앞에서 승무원 분들이 한국어로 인사하는 게 들리면

그동안 버텨왔던 순간이 한꺼번에 지나가면서 감정이 북받친다.


주변 미국 사람들은 내가 한국을 간다고 하면

항상 시차적응에 대해서 묻곤 한다.

내 생각엔 최고의 시차적응 방법은 시차적응을 따로 안 하는 것이다.

한국에 착륙하면 절대로 휴식시간을 따로 갖지 않는다.

도착하면 무엇을 할지 최소 3일 치 일정을 미리 다 짜두고

그 일정에 맞게 저녁시간까지 밖에서 시간을 보내려고 한다.

그렇게 해야 그 나라 시간의 취침시간에 맞춰서 잘 수 있고

밖에서 에너지 소모를 많이 했기 때문에 중간에 깨지 않고 아침까지 푹 잔다.

이걸 며칠 반복하다 보면 시차는 자연스럽게 적응되는 것 같다.


한국에 도착한 지 이틀도 안돼서 홍콩으로 떠났다.

'The Upper House'라는 곳에서 호캉스를 했는데,

이곳은 지금까지 내가 가본 호텔 중에서 최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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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실보다 화장실이 훨씬 넓었고

거실과 욕조에서 보이는 마운틴 뷰가 너무 좋았다.

맨 위층 식당에서 먹은 크로와상과 커피는 기대 이상이었고,

비가 내리는 흐린 날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전망이 인상적이었다.

다시 홍콩에 가보고 싶을 정도로 만족스러운 경험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친구들과 카페에서 만나듯

홍콩에서는 딤섬을 먹는 게 문화라고 한다.

홍콩에서의 2일 동안 매일 딤섬을 먹었는데,

첫날은 그랜드 하얏트 호텔에서,

둘째 날은 중국회(The China Club) 멤버 전용 중식당에서 먹었다.

미국에서도 딤섬은 많이 먹어봤지만, 홍콩에서 먹는 딤섬의 맛은 정말 달랐다.

잊지 못할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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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의 날씨는 아주 따뜻했다.

나는 추위보다 더위를 좋아해서,

영하의 뉴욕을 지나 따뜻한 홍콩에 도착하니 살 것 같았다.

그곳은 20도 정도의 기온이 가장 추운 날씨라고 해서 더욱 부러웠다.


이번 휴가에서 가장 좋았던 점은 엄마와 목욕탕을 자주 간 것이다.

미국은 탕 문화가 아니어서 보통 샤워실과 사우나는 있는데 탕을 즐기기는 쉽지 않다.

반신욕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자주 탕에 들어갈 수 있는 이 기회가 너무 소중했다.


어릴 적에는 엄마와 목욕탕에 자주 갔다.

그때 나는 대야에 물을 담아 장난치고, 뛰어다니는 아이였다.

그런데 이제는 어른이 되어 엄마와 함께

탕 안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니,

시간이 참 많이 흘렀다는 걸 새삼 느꼈다.


휴가를 가기 전 짐을 싸면서 꼭 챙겼던 게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부모님께 드릴 용돈, 또 하나는 내 회사 명함이다.

어렸을 때, 연예인들이 부모님께 용돈을 드리거나 집을 사드렸다는

인터뷰를 보면서 정말 멋있다고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나도 돈을 벌면 꼭 부모님께 용돈을 드려야지 다짐했던 게 기억난다.

최근에 연말 보너스와 저축한 돈으로

처음으로 부모님께 용돈을 드릴 수 있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부모님께 용돈을 드렸는데

내내 부모님께 받기만 하다가(아직도 받는 게 많다..ㅎㅎ)

스스로 벌어서 뭐라도 드릴 수 있다는 생각에 뿌듯함을 느꼈다.


휴가 마지막날, 엄마가 물그릇에 돌멩이를 여럿 담아서

화분 옆에 두고 싶다고 하셨다.

그래서 아빠와 함께 해운대 백사장으로 돌멩이를 주우러 갔다.

겨울철이라 관광객이 거의 없었고,

한적한 바닷가에서 파도 소리를 들으며 가만히 서있으니

평화롭고 좋았다.

휴가 동안 아빠와 함께 보낸 시간이 많지 않아서,

함께 돌을 줍는 그 순간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졌다.

엄마는 미국에 자주 오시니 몇 달 후면 다시 볼 수 있지만,

아빠는 1년에 한 번밖에 만나지 못해 늘 애틋한 마음이 든다.

그래서 이번에는 아빠와 셀카도 찍고,

아빠가 돌을 줍는 모습도 사진과 영상으로 열심히 담아두려 했다.

그저 돌멩이를 줍는 단순한 일이었지만,

나에겐 소중한 추억으로 남기고 싶은 순간이었나 보다.

늘 그렇듯 떠나기 며칠 전부터는 아쉬운 마음이 가득했다.

그래서인지 엄마를 한 번이라도 더 안아보고

아빠한테 말을 한 번이라도 더 붙여보고

곧 떠날 거지만 아직은 떠나지 않았다는 것에 위안을 삼았다.

마지막날 일기를 쓰다가 휴가 첫날 적은 일기를 읽게 되었다.


"하루하루가 더디게 가길.

집에 있는 동안 자유와 편안함, 행복, 기쁨을 있는 그대로 만끽하길.

두 눈 가득 멋진 바다와 햇살을 담아가길."


시간은 참 빨리 흘렀지만 하루하루 정말 알차게 보냈다.

직장생활로부터 자유로웠고, 오랜만에 집에서 보살핌을 받으니 너무 편안했다.

평소에 회사를 다닐 땐 해가 뜨려고 할 때 출근하고

해가 다지면 퇴근해서 주말에만 햇빛을 볼 수 있었는데,

매일매일 멋진 해운대 바다와 바닷물에 반사되는

반짝거리는 햇빛을 볼 수 있어서 너무 기쁘고 행복했다.


휴가 시작부터 끝을 생각했고, 끝은 아쉬울 것이라는 건 이미 알았지만

아쉬운 마음을 느끼기 때문에 이 모든 게 훨씬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휴가에서 돌아와서 회사 동료들과 친구들에게

가장 많이 들은 얘기가, '너 정말 잘 쉬다 온 게 티가 난다'는 말이다.

고작 2주밖에 되지 않는 짧은 휴가였지만,

몸과 마음을 잘 충전했고, 다시 힘을 내서 달릴 여유를 되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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