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일기 #9: Luna Luna, 꿈의 아트 카니발

40년 전 독일의 카니발, 뉴욕에서 부활하다

by KAY 케이

오늘 아침, 일찍부터 집 근처 The Shed에서 열리는

Luna Luna 전시를 다녀왔다.

얼마만의 문화생활인지 모를 정도로

오랜만에 예매한 전시라서 며칠 전부터 마음이 너무 설레었다.


Luna Luna는 세계 첫 예술 놀이공원으로 우리가 익히 아는 Keith Haring, Salvador Dalí, Andy Warhol 등등의 유명한 현대 예술가들이 만든 놀이기구와 작품들이 한 곳에 모여있는 축제였다.


1987년에 독일 함부르크에서 처음 열린 이 축제는 André Heller이라는 사람이 주최했는데, 어떻게 이 축제에 잘 나가는 예술가들을 이렇게나 많이 모을 수 있었냐는 질문에, '어린이로 살아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네. 어린이 시절, 놀이공원에 가보신적이 있으셨나요? 네. 놀이공원 좋아하셨나요? 네.'와 같은 대화 한 번이면 설득하는 게 너무 간단했다고 한다.


나는 어린 시절에 양산에 있는 통도 환타지아라는 곳에 자주 갔었고,

초등학교 6학년 수학여행으로는 환상의 나라 에버랜드에 갔었는데,

'환타지아', '환상의 나라'의 이름처럼 어릴 때 놀이공원에 가는 건

꿈만 같고, 마법 같은 초현실적인 경험이었다.

그런 어린아이의 마음을 다시 현실로 실현할 수 있는 일에 참여한다는 건

생각만 해도 너무 벅차고 신나는 일이다.

아마 많은 사람이 비슷한 마음일 것 같다.

그래서 André의 섭외 전략은 실패할 수 없었을 것이다.


André는 Luna Luna의 월드 투어를 꿈꿨지만,

설치물들의 영구 보관 장소를 찾지 못해 어려움을 겪었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법적 다툼도 있었다.

결국 모든 설치물들이 44개의 큰 수출 컨테이너에 담겨 미국으로 보내졌고,

15년간 텍사스의 사막에 방치되었다.

그렇게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 갔지만,

Micheal Goldberg라는 사업가가 이 컨테이너들을 찾기 시작했고,

래퍼 Drake가 이 44개 컨테이너를 모두 구입했다.

그로부터 2년 동안 모든 설치물들을 조립해

André가 꿈꾸던 월드 투어를 현실화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뉴욕에서 전시가 시작되었다.


그 시대 치고는 과감했던 'anyone can marry anyone or anything' (누구나 누구와도, 또는 무엇과도 결혼할 수 있다)

Luna Luna는 온 세상이 어려운 시기를 지나고 있을 때

예술을 통해서 사람들이 버틸 힘을 찾고 나아갈 수 있도록 돕기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또한 20세기 초반에 두 번의 세계 전쟁으로 인해 어린 시절을 빼앗겼던 사람들이 Luna Luna를 통해서 그 시간을 되찾는 의미도 있었다.

이 전시를 보는 내내 오감이 즐겁고 어린 시절의 동심이 느껴져서 너무 기쁘고, 자유롭고, 행복한 마음도 들었지만, 사회적 비판을 예술로서 풀어낸 작품들이나

과감한 사회 풍자를 담아낸 작품들을 보면

그 당시 사람들이 전반적으로 느끼고 있던 사회적인 피로감도 함께 전해졌다.


평소 미술관이나 전시회를 가면 작품 옆에 있는 설명을 잘 읽지 않는 편이다. 작품을 보고 느끼는 것에 더 의미를 두고 마음이 가는 대로 전시장을 누비는 재미를 우선시한다. 그런데 오늘은 거의 모든 설명을 정독했다. 마음에 남는 멋진 문장들이 정말 많았고, 한때 각광받던 카니발이 15년 동안 아무도 찾지 않은 채 방치되어 있다가 다시 부활했다는 역사도 드라마틱해서 내용을 읽는 내내 재미난 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이었다.




가장 인상적인 문구는 'Art should come in unconventional guises and be brought to those who might not ordinarily seek it out in more predictable settings.'

('예술은 기존의 틀을 깨는 형태로 나타나야 하며,

보편적인 환경에서 예술을 찾지 않을 사람들에게도 다가가야 한다.')였다.

생각해 보니 Luna Luna에 참여했던 많은 예술가들이 이 문구에 딱 맞는 사람들이다.


Keith Haring은 뉴욕 지하철의 빈 광고판에

분필로 그림을 그리며 '서브웨이 드로잉'으로 대중에게 다가갔고,

그의 작품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Salvador Dali의 흘러내리는 시계 역시 유명하고,

특이한 발상으로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남은 작품이다.

어린 시절, 미술 유치원에서 이 작품을 보고 충격을 받았는데.

어린 나이여서 무슨 작품을 봤는지 기억을 못 할 법도 하지만

그 시계는 보자마자 내 기억에 확고히 자리 잡았다.

아직도 그 시계를 처음 봤던 순간이 생생히 기억난다.


나는 평소 미술과 미술사에 큰 관심이 없고, 전시회도 자주 가지 않지만, 이번 전시에서는 익숙한 작품들이 정말 많아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Luna Luna의 예술가들은 틀을 깨는 것뿐만 아니라, 나처럼 미술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에게도 자연스럽게 다가갔다. 내가 이 전시를 가보고 싶다고 생각한 이유도, 내가 한 번쯤이라도 들어본 예술가들이 많고, 홍보물에 나와있는 작품들이 모두 익숙했기 때문이다.



Luna는 라틴어로 '달'을 의미하는데, 달은 미스터리, 아름다움, 밤과 꿈을 상징한다. Luna Luna는 Luna라는 단어가 두 번 반복되었으니 어두운 밤과 밝은 달빛이 공존하는 것처럼,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그런 경험을 선사한다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또, 달은 주기적으로 모양이 변하고, 매달 재탄생하는데, Luna Luna는 전쟁과 사회적 피로감과 어려움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작을 하며, 다시금 힘을 내어 성장하고 앞으로 나아가고 싶은 열망을 표현한 게 아닐까 싶다.




Luna Luna의 예술가들은 각자 자신이 그린 달이 있었는데, 전시에는 이 달들을 모두 모아둔 공간도 있었다.

나의 favorite달은 Kenny Scharf의 달이었다.

달이 짓고 있는 표정에서 넘치는 에너지와 장난기, 광기, 악랄함을 모두 느낄 수 있었다.

색 조합도 너무 마음에 들고,

그저 보고 있으면 마음이 즐거웠다.

이 그림이 그려진 티셔츠가 컨테이너에서 발견이 되어 기념품 샵에서 판매되고 있었는데,

이 달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정말 사고 싶었지만

기념품으로 사는 티셔츠 치고는 너무 가격이 비싸

결국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ㅎㅎ


오랜만에 다녀온 전시회였지만,

한순간도 빠짐없이 즐거운 시간이었다.

Luna Luna 팀이 뉴욕을 떠나 실제로 월드투어를 할 계획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오늘부로 나는 Luna Luna의 팬이 되었고,

팬으로서 André의 꿈이 꼭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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