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unjung Kim Sep 13. 2022

일상으로 회복_간절함

코로나 감염의 나비효과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 지루하다.. 는 생각과 함께 몸도 마음도 나태해지려는 찰나에.

'그렇게 지루한 일상이라면 바사삭 깨부수어 주겠어'

라고 누군가가 작정이라도 한 듯이 삶이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궤도 이탈하기 시작한다.


9월의 첫날, 나는 코로나19 확진이 되었고(왜 때문인지 내가 제일 궁금하고 답답하고 매우 화가 나지만, 삶이 그렇듯  감염 경로를 딱히 알 수 없어서 급기야 택배 상자에서 묻어왔나 라는 헛소리를 하게 됨), 급히 격리에 들어갔지만, 24시간 함께하는 내 작은 아이들이 줄줄이 증상이 나타났다. 가장 우려했던 일이 손 쓸 새도 없이 폭풍처럼 밀려왔다.

우선은 내가 너무 아파서 죽겠는 데다가  막내가 고열에 꼬박 이틀을 앓았기에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남편이 첫째 둘째를 케어했지만, 우리 집 최약체인 둘째가 감염되자 이제 다 끝난 것만 같아서 헛웃음이 나왔다. 해열제 먹여가며 닦아주고 반복하니 둘째의 열도 잡히는 듯싶었다. 그렇게 나흘이 지나고 남편마저 감염이 되었다. 이제 누가 누구를 돌볼 처지가 아니었지만 남편과 나는 정신력으로 아이들을 보살펴야 했다. 가족들이 먼 곳에서 애태워하며 걱정하며 먹을 것들을 보내주셔서 살려고, 기운 내서 아이들을 돌보려고 감사하게 먹었다. 집안 살림이고 뭐고 엉망진창이고 정신없는 와중에 명절이라 기분이라도 내볼까 전 몇 개 부쳐 먹으려는데, 둘째가 영 심상치 않았다.

입으로 먹질 못하는 아이라 배에 위루관을 넣어 정제된 영양식을 먹고 있는데, 여느 때와 다르게 위속에 남아 있는 물질이 새까맣게 변했다.

'어딘가에 피가 났구나'

아픈 아이 키운 지 언 5년 차 되다 보니 직감적으로 뭔가 잘 못되었다는 불안이 엄습해왔다. 하나 이미 명절 연휴는 시작되었고, 격리 중이라 응급실도 못 들어갈 텐데..  이리저리 머리 굴리며 일단은 아이를 금식시키고 상태를 살폈다. 다행히 열이 떨어지고 더 이상 피가 나오지 않아 안심했으나, 니큐(신생아 중환자실) 간호사 선생님들의 조언에 따라  응급실로 가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날 밤부터 다음 날까지 아이는 고열이 심했고 뱃속에 계속 피가 고였다. 심지어 얼굴, 손발 온몸이 새하얗게 변했다.

큰일이다... 괜히 이리저리 머리 굴리다가 골든타임 놓쳐서 애 잘못되는 거 아닌가,. 내가 엄마가 맞나.. 온갖 자책과 불안 초조, 원망의 감정들의 소용돌이에 둘러싸여 토요일 밤, 분당 서울대병원 응급실로 갔다. 연휴기간 늦은 밤 시간임에도 응급실은 문전성시고, 선별 진료소에서 대기하고, 코로나 확진자라 응급실에는 들어가지도 못하고 선별 진료소 밖 컨테이너에서 꼬박 3시간을 기다려 격리 치료실에 입성, 의례 하는 검사란 검사는 모조리 다 했는데도 아이에게 수액 한 방울 들어가기까지 또 1시간이 넘게 걸리고, 소아과 전문의가 와서 처방이 내려지기까지 지루한 몇 시간이 천년만년처럼 느껴지는 이 지옥을 다시 경험하는구나..

밤을 꼬박 새워 내가 할 수 있는 건 젖은 수건으로 아이의 마른 입술을 닦아주고 몸을 닦아주고, 끓어오르는 가래를 빼주는 것, 그것뿐이었다. 이때는 후회도 자책도 다 필요 없고 아이가 최대한 편해지길 바랄 뿐, 빨리 빌어먹을 시간이 흘러  연휴가 끝나 정밀검사를 하고 담당교수의 명쾌한 원인 분석과 치료방법을 듣기를 바랄 뿐.

아이는 위장 내 출혈로 헤모글로빈 수치가 5까지 떨어져 있어서(정상 12~14 g/dL(소아), 10 이하는 빈혈) 급히 수혈도 하고 위장보호제도 맞고 해열제 항생제를 처방받고는 겨우 부은 눈을 떴다. 격리 해제되기까지 병실에 갇혀있어 보니, 아..  이제 알겠다..  내가 답답해했던  불과 열흘 전의 일상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그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이렇게 바닥에 내동댕이 쳐져야 깨닫게 되는구나.

씻지도 잘 먹지도 못한 채 반 미친 상태로 사경을 헤매는 아이를 보고 있으니, 다람쥐 쳇바퀴 같았어도 그 일상이 천국이었구나.

평일이 된 오늘, 아이는 수면 내시경을 하고 지금 꿈나라를 여행 중이다. 출혈의 원인을 분석하고 일회성인지 아닌지를 가늠하고 치료계획을 세우는 건 의사들의 몫이기에 나는 또 무한정 기다리고 있다. 이 무력한 시간에 내가 할 일을 찾고 싶어 브런치에 글을 남겨본다.

다음에는 혹시  만약에, 아이가 조금이라도 아프면,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득달같이 병원으로 달려오겠노라는 다짐도 담아보고, 기간의 일어난 일들을 차분히 정리하며 내 마음의 대나무 숲에 이야기해본다.

기가 차고 어이없고 속상하고 억울하지만, 지나가는 감정이고, 일어난 일이기에 이제 간절함만 담아 어서 건강한 모습으로 집으로 가고 싶다. 그저 그런 하루하루지만, 그것도 감사히 여기며 다시 일상을 살아가고 싶다.


아픈 아이를 키우는 건 늘 시한폭탄을 안고 사는 것처럼 마음이 무겁습니다. 그렇지만 이제는 두려움에 떨며 은둔자처럼 살지 않겠습니다. 아이들과 많은 것을 경험하고 행복하고 싶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