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unjung Kim Mar 19. 2024

니가 제일 웃겨

웃음코드의 중요성

당신의 이상형은~~~?


누군가 지금 나에게 물어본다면 나는 대답할 수 있을까.

내가 '나의 이상형은~'이라는 말을 했던 게 언제쯤이었을까. 다행히 MZ세대에 발을 걸치고 있지만, 요즘 트렌드, 요즘 연애에 대해서는 들어도 잘 모르겠고 이해가 되지 않는 애매한 MZ 입장인터라 '이상형'이라는 말이 낯설다.

기혼자로서 굳이 다시 이상형을 생각할 일도 없지마는, '멋있다, 내 스타일이다' 싶은 남자 연예인은 한 둘 쯤 꼽을 수 있다. 물론 어디까지나 보이는(잘 생긴) 외모, 맡은 캐릭터가 멋있을 뿐이지만.

그런 외적인 부분 말고, 성격이나 취향 등을 고려한다면, 나는 20대에도 지금도, 재미있고 나랑 웃음코드가 맞는 사람이라고 하겠다. 성격과 취향은 타고 난 거라 바뀌기 쉽지 않지만 어차피 서로 다르게 태어나 다른 환경에서 자라왔으니 서로 맞춰가고 안 맞으면 안 맞는 부분은 비껴가며 살 면된다 생각한다. 허나, 함께 웃어야 할 때 웃지 못하는 그 애매한 온도차는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그래서 나는 남편과의 농담이 제일 재미있다. 십여 년 전 촌스럽기 그지없었던 과선배(지금의 남편)의 농담에 나는 배꼽을 잡고 깔깔댔다. 주변에 다른 사람들이 진짜로 웃기냐고 나한테 진지하게 물었다.


나는 웃긴데? 이게 안 웃겨? 최고로 웃긴데?


시간이 지나 그가 내 남자친구가 되고, 투닥투닥 싸우면서도 헤어지지 않고 결혼하고 서로 '여보 당신' 하며 아이 셋 놓고 살면서도 여전히 한결같이 나는 남편이 던지는 농담들이 재미있다. 그저 재미있기만 한 게 아니라, 남편은 농담을 던져놓고 자기가 더 깔깔 웃는데 그 모습에 나는 '뭐야~'하면서도 같이 웃는다. 억지로 장단 맞추느라 웃는 게 아니라, 남편이 던진 웃음포인트를 내가 잘 캐치했기 때문에 웃는 거다.

요즘말로 티키타카라고 해야 할까. 그가 웃으라고 던진 말을 내가 잘 받아냈고, 덩달아 나도 '옛다, 농담'하며 다시 던진 말에 남편도 깔깔거리며 잘 받아준 것이다. 어느 한쪽이 '그게 뭔 소리야', '그게 지금 할 소리야?'라는 찬물을 끼얹는 말을 한다면, 다시는 핑퐁핑퐁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아무에게나 웃음이 헤펐다고 오해하지 마시기를.

 나는 재미없는 이야기에는 절대 웃지 못했으며, 오히려 진지한 대화를 좋아했다. 그런데 상대가 농담을 빙자해 비꼬는 식의 말을 하면 불같이 화르르 달려들어 싸웠다. 그러면 상대는 한결같이, 


'웃자고 한 말에 죽자고 덤비네'


하며 오히려 웃어넘기지 못하는 나를 비난했다. 누가 들어도 그건 그냥 농담이 아니었다. 진짜 농담이었다면 나도 장난스레 웃으며 한 번쯤을 툭 받아쳐 줄 수 있었을 테니.

하지만, 의도가 불순한 농담을 몇 번 받아주면, 나는 호구가 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니 웃을 수 없는 말에 쉽게, 아니 어렵게라도 꾹꾹 참으며 웃어주지 않으려 했을 뿐. 공감이 결여된 농담은 오히려 관계를 망칠 뿐이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내 마음과 맞닿아 있는 상대와 같이 웃는 게 좋고, 그런 사람이 나의 '이상형'이다.


출처: 유퀴즈

JTBC의 유명한 아나운서, 많은 젊은 여성들의 워너비 중 한 명인, 강지영 아나운서가 유퀴즈라는 프로에 나와했던 말들 이 많은 이들의 공감을 자아냈다.

다른 멋진 말들이 많았지만, 그의 이상형이 '빡침 코드'가 맞는 사람이라는데 나는 깊이 공감했다. '빡치다'는  화가 난 상태를 '머리빡'에 빗대어 속되게 표현한 말인데, 어감만 빼면 아주 화가 단단히 났음을 잘 나타내는 말인 것 같다.

빡치게 화가 난 사람에게


'뭘 그렇게 화를 내고 그래'

라든지,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겠지'


라며, 나를 빡 치게 하는 어떤 인간을 두둔하는 눈치 없는 말을 하는 애인이나 배우자들이 있다.

(사실, 그런 사람은 먼 곳에 있지 않다. 내 남편은 내 빡침포인트를 이해도, 공감도 하지 못한다.)

강지영 아나운서의 말에 의하면, 내가 빡쳤을 때 상대가 나보다 더 깊이 빡쳐줘야 한다. 내가 화났을 때 왜 화가 났는지, 어떻게 된 일인지 정성스럽게 묻지말고 그냥 같이 빡쳐주라는 거다.


'와, 내가 더 열받네. 그걸 참았어?'

'당장 가자, 내가 혼구녕 한 번 내줘야지, 어!!'


라는 말들을 더해주며 상대의 빡침에 나의 빡침을 더해 계속 핑퐁핑퐁 하다 보면 어느새 그 감정은 자연스레 해소된다. 빡쳐서 정신 나갔던 이성이 상대의 공감으로 다시 제자리에 돌아온다.

그러다 '생각해 보니, 나도 잘한 건 없었네'라고 스스로 빡침을 종결시킨다.

빡침코드가 잘 맞는 상대를 만나면 불필요한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 화가 났다가도 금세 누그러질 수 있다. 진심 어린 공감을 받으면 사실 자기반성을 더 빨리 할 수 있다.


웃음코드가 잘 맞는 사람도, 빡침코드가 잘 맞는 사람도, 그런 상대를 만난다는 것은 쉽지 않고 그런 사람이 되려고 노력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운명처럼 나와 딱 맞다고 생각했던 사람도 시간이 지나면 변하고 멀어진다. 반대로 맞는 구석 하나 없는데도 지지고 볶으며 끝까지 이어가는 인연이 있다. 그것은  필연 어느 한쪽의 완전한 희생이거나, 엄청난 배려일 것이다. 

되돌아 생각해 보니, 나는 내 남편의 농담이나 웃음이 좋았지만, 남편 입장에서 내 농담이 재미있었다고 확신할 수는 없다. 남편이 나에게 맞춰 내 농담을 받아주고 웃어주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지금까지 티격태격 불같이 싸우고 냉전을 하다가도 별 시답잖은 농담으로 서로를 웃게 만들고 웃었던 게 아닐까 싶다.

빡침 코드도 중요하지만, 남편과 나는 이 부분에서는 영원히 평행선을 걸을 것 같기에 덜 화내고 덜 부딪치고 덜 싸우도록  죽을힘을 다해야겠다.


그러니 우리는 더 많이 농담하고 웃어야겠다. 우리에게 위기가 찾아왔을 때, 우리가 견디고 극복할 수 있었던 힘도 상대를 웃게 만드는 농담이었다. 심각한 문제 가운데 환기가 필요할 때도 남편이나 내가 툭 던 지 농담에 어느 한쪽이 웃으면 그러면 우리의 문제가 한결 가벼워진다. 웃음의 힘은, 웃는 상대를 보며 내가 웃는 감정의 파동이다. 웃음 코드가 맞으면 파동은 증폭된다. 남편과 내가 주고받는 농담과 웃음 속에서 아이들은 안정감을 느낀다. 말 그대로 나와 남편, 나의 아이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난다.


처음 질문에 다시 대답하면,

여전히 내 이상형은 나와 웃음코드가 맞는, 내 남편이다.

출처. 내가 과자 먹는다고 뭐라고 했더니 딱 세개만 먹는다고 하는 새초롬한 남편.



매거진의 이전글 그날의 (책) 분위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