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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jung Kim Mar 09. 2024

그날의 (책) 분위기

어떤 의도로든, 일단 읽어요.

"당신은 책을 사랑합니까, 책 읽는 자신의 모습을 사랑합니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에, 나는 일단 둘 다라고 말하겠다.


단, 모든 책을 사랑하는 것은 아니다. 나도 모르게 몰입하게 되는 책들은 너무 사랑하지만, 한 장을 넘기기 힘든 책들은 사랑하지 않지만 읽어내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도무지 이해도 몰입도 되지 않는 책들은 당장은 읽기를 포기한다. 훗날, 다시 읽을 수 있는(이해가 되는) 책들도 있으니 남겨두는 책들도 있고 그렇지 않은 책들은 과감히 처분한다.

일단 책을 읽기로 마음먹으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완독 하려고 노력한다. 어렵게 초반부를 읽고 나면 뒤로는 술술 넘어갈 때도 있고, 처음에는 재미있었는데 뒷심이 부족했는지 끝까지 읽기가 힘든 때도 있다. 읽기는 했는데 책의 내용이 기억나지 않을 때도 있다. 읽어냈다는 뿌듯함으로 만족할 때도 있고, 책을 읽는 시늉만 한 것인지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들 때도 있다.


읽는 사람은 매번 나라는, 같은 사람인데, 어떤 때는 두꺼운 교양서적도 술술 읽어나가고, 어떤 때는 가벼운 에세이도 읽어내지 못해서 같은 페이지를 몇 번이나 왔다 갔다 하는 것일까.


책의 내용이 내 수준에 맞지 않아서 일 때도 있지만, 책 읽는 나의 마음, 그날의 분위기-즉 책을 읽는 나의 환경-가 책을 읽는데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눈여겨보아 왔던 좋아하는 작가의 따끈한 신간이건만, 홀로 그 책을 탐닉할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하면 책의 첫 장을 열어보지도 못하기도 한다. 아이들이 아프거나 내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가 그렇다.

몇 년 전만 해도 자기 계발이라는 명목하에 밤에 아이들을 재워 놓고 늦은 시간까지 책을 읽거나 하고 싶은 공부를 하기도 했다. 밤은 짧고 수면이 부족했지만, 자기만의 시간을 갖는 내가 멋있어서(?) 피곤했지만 그 상황을 즐겼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나는 혼자만의 멋짐 시간을 포기하고 잠을 택하게 됐다. 내 건강이 무너지면 우리 집은 비상사태라는 것을 몇 번 겪고 나니, 조금이라도 아프면 무조건 잘 먹고 틈틈이 쉬고 자야 했다.


그래서 나는 평일 낮시간에 잠깐, 주말에 한두 시간 책을 읽을 시간과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짧은 시간이라도 밀도 있게 읽으려면 최대한 집중할 수 있도록 평일에는 둘째가 낮잠 자는 시간, 주말에는 아이들이 없는 공간을 택한다.

가끔은 핸드폰으로 유튜브나 쇼츠를 보기도 하지만, 인위적으로라도 책을 읽을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핸드폰은 잠시 멀리 두고 창가 쪽 의자에 앉거나 편한 소파에 앉아 손에 잡히는 책을 펼쳐든다. 일부러 내가 선호하는 자리 곳곳에 읽고 싶은 책들을 올려둔다. 기회가 왔을 때 망설이지 않으려면 재빨리 자리를 잡고 앉아서 일단 읽어 내려간다. 두 줄, 세 줄 제자리걸음이라면 일단 그 부분은 뛰어넘고 빨리 흥미로운 대목을 찾아 책장을 넘기기도 한다. 마음에 드는 구절은 밑줄도 긋기도 하고 필사를 하기도 한다.


내가 책을 읽는 방법은  번에 두세 권의 책을 번갈아 읽는 것이다.


보통은 장르가 비슷하거나 책의 저자가 참고했던 책이거나, 언급했던 작가의 책이다 보니 내용이 연결되어 읽기가 수월할 때가 많다.

(엔드오브타임/브라이언그린, 하늘과 바람과 별과 인간/김상욱, 문과남자의과학공부/유시민 -이 세 책은 시작과 끝이 같은 느낌이라 병행해 읽으면 서로가 서로의 참고서적이 될 수 있다)


어렵지만 살면서 꼭 한 번은 읽고 싶었던 책은 모르는 내용이 나오면 검색하거나 관련된  강의를 찾아보기도 한다. 그래서 완독 하는데 수개월이 걸리기도 하고, 몇 년째 읽기 진행 중인 것들도 있다.

(코스모스/칼세이건- 우주 같은 방대한 이야기를 따라 가기기 숨차서 열두 번쯤 포기한 책)


소설은 잘 읽지 않지만 SF장르를 좋아한다. 한 번 빠지면 작가의 신간을 줄줄이 읽게 되는데 마치 시리즈 영화를 보는 것 같은 즐거움이 있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지구 끝의 온실, 방금 떠나 온세계 등등/김초엽)


마음이 심란하거나 어려울 때는 고전소설을 꼭 찾게 된다. 사람 사는 게 예전이나 지금이나 거의 비슷한 일로 괴롭고 힘들다. 인간에게 주어진 삶의 무게는 다르지만 고통의 총량은 비슷한 법이라 고전소설 속 주인공들과 주변인물들의  얽히고설킨 이야기 속에서 현재의 나의 모습을 비추어보고 위로하기도 위로받기도 한다. 때로는 맥없이 무너진 채로 끝난 이야기에 '그게 인생이지'라고 무릎을 치기도 한다.

(여자의 일생/기드모파상, 제인에어/샬럿브론테)


사실 살면서 기억에 남는 문장이 있는 책 한 권, 필사를 해둔 문장으로 위로와 힘을 얻는 책 한 권이 있다면 그러면 좋은 것 아니겠는가.

꼭 책을 읽고 무언가를 남기겠다는, 내 삶에 적용시킬 내용을 잘 뽑아내고야 말겠다는 의지는 이미 오래전에 포기했다. 나는 그런 책 읽기를 하기에 너무 부족한 사람이다. 온전히 다 이해하지도 다 읽어내지도 못하는데 책을 읽고 무언가를 남기는 것이 부담스럽고 힘들다. 어쩌면 내가 책을 읽는다는 것은, 책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렇게 책을 읽어내는 내 모습을 사랑하고 응원해 주기로 했다는 것이다. 거창하게 책을 리뷰하겠다는 말은 못 하겠고, 그저 내가 삶을 살아내듯, 책도 읽어 나가겠다. 그렇게 내가 좋아하는 모습으로 나를 사랑해 주겠다는 소소한 의지이다.


몇 년 전에 읽고, 어설프게나마 리뷰를 했던 책, '초의식 독서법/김병완'에 의하면, 나는 읽기만 하는 바보 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책을 읽는 나를 사랑하며, 이 책을 이렇게 읽어냈노라, 그래서 오늘도 살아내겠노 라는 말로 리뷰를 마칠 수 있다면 어떤 식으로든지, 이런 의도를 가지고서라도 책을 읽을 것이다.


그러니, 주저하지 말고 무엇이라도 읽어야 한다. 남들이 말하는, 추천 하는 책이 아니더라도, 그날의 (책) 분위기 찾아왔을 때 주저 없이 펼쳐들 수 있는 책 한 권쯤은 손 닿는 곳에 있기를.



책은 읽기도 하지만 사진 찍기 좋은 소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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