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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jung Kim Feb 24. 2024

취향입니다, 존중합니다

그러나 진실은 조금 불편해요.

요즘 인기 있는 음식 프로그램들의 키워드는 '최강의 조합'(the best combination)이 아닐까 싶다. 1990년~2000년대 초반 방송사마다 꼭 하나씩은 있었던 TV 요리프로그램을 보면서 주부들은 요리 수준을 높였고, 가족들이 거실에 모여 앉아 맛집 탐방프로그램에서 좋은 음식을 먹는 리포터를 세상 부러워했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면, 인터넷 초강국 시대(이 말도 이제는 너무 옛날 같고 촌스럽게 느껴지는 그런)의 21세기의 '먹는 방송'은 실시간 개인채널로 정점을 찍고 있다. 블로그나 유튜브를 통해 레시피를 찾거나 요리를 따라하는 것은 기본이고, 직접 요리를 하는 모습을 개인 sns에 공유하는 등 이미 초개인화된 먹는 일상이 범람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별점이 높은 맛집을 찾아 먼 거리, 기나긴 웨이팅 시간도 마다하지 않던 모습이 벌써 옛날일이 된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먹는 일상'은 시시각각 변하고 있다. 먹는 것이 더 이상 먹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무엇을 맛깔나게 잘 먹었다 하면 빠르게 sns로 유행하고, 따라갈 세도 없이 또 새로운 유행이 등장한다. 그러나 먹는 일에 더 진심인 부류들은 어디의 무엇이 '맛있다'에서 어떤 음식을 어떻게 먹을 때, 무엇과 함께 먹을 때 어울리는 ''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개인의 취향이 다양하지만, 요리 좀 한다는 사람들, 좀 먹을 줄 안다는 사람들일수록 확고한 자신만의 호/불호가 존재해서 음식의 합을 중요시하는 부동층은 좀처럼 흔들리지 않는다. 절대음감처럼 절대미각이라는 말이 있는데 절대음감과는 달리 절대미각은 그저 많이 먹어보고 많은 맛의 미묘한 차이를, 철저한 훈련을 통해 학습한 '미각'에 지나지 않다고 한다. 개인의 취향이 다르니 절대적인 맛이라는 것도 존재하지 않는 게 당연하다. 

사실 맛이라는 것이, 재료의 상태변화에 따른 화학반응을 인간의 미각이 느끼는 과정에 불과하다. 사람의 혀는 나트륨 이온이 닿으면 짜다고 느끼고 포도당이 들어오면 달다고 느낀다. 나트륨이 생존에 중요하니까(나트륨, 칼륨 이온이 세포막을 이동하며 신체의 정보를 전기신호로 전달한다) 쉽게 중독되고, 포도당을 많이 먹어야 생존에 유리하니까(생명을 유지하는 에너지원) 포도당을 먹으면 행복하도록 우리의 미각은 진화해 왔다*

우리가 '먹는 일'의 궁극의 목표는 생존을 위한 것이지만 이것으로 설명을 마치기에 우리가 먹고 마시며 느끼는 감정은 너무나 다양하다. 누구는 미각을 느끼는 세포 수용체(미뢰 또는 맛봉오리) 남들보다 더 민감해서(유전적인 영향과 남녀 성별, 나이, 그리고 환경의 영향에 따라 다르다) 같은 음식을 먹고도 미묘한 맛 차이를 느낀다. 한국 사람들은 음식의 간(음식이 맛을 내는 물질)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간이 짜도 싱거워도 안 되는 표준의 맛이 존재하는 것도 아닌데 참으로 어려운 것이 이 간을 맞추는 것이다.

음식의 간(맛을 내는 물질)을 이야기하려고 이렇게 서두를 길게 돌고 돌아왔다. 음식이 다양하고 개인의 취향이 다르고 다양하지만, 음식을 먹을 때 느끼는 공통의 반응은, 딱 둘이다.

'짜다'와 '달다'

물론 시고, 쓰고, 맵고 등 다양한 맛이 있지만, 앞서 말한 생존과 가장 가까운 맛은 '짜다'와 '달다'이다.

짜고 달면 환상의 조합이라고 하고, 거기에 매콤한 맛이 더해지면 시원하고 알싸한 목 넘김이 필요하고, 음식이 음식을 부른다고 인간은 이 무한 굴레를 반복하며 먹는 일에 진심과 최선을 다한다.

아무리 입맛이 없어도 단 게 당기고, 적당히 짠 음식을 먹으면 침이 돌고 입맛이 생긴다. 살아야 하기에 머리가 먹고 싶지 않아도 일단 혀에 닿으면 씹고 위에 욱여넣게 된다.

배고플 때 먹으면 뭐든 맛있는 이유가 생존에 필요한 포도당을 합성하려면 뭐든 먹어야 하기에 뇌가 알아서 나를 세뇌시키는 것이다. '아, 맛있다, 정말 꿀맛이다'


배가 출출해지는 오후 4시, 오븐에 감자를 서너 개 쪘다. 물을 자작하게 넣어 군고구마 굽는 기능으로 구었더니 수분은 적당하게 날아간 겉바속초 포슬감자가 완성됐다. 뜨거운 감자를 살살 불어 한 입 먹으니, 적당히 침이 고여 감자에 있는 전분 속에 녹아있는 단맛이 나고, 계속 먹으면 적당히 짠맛이 나면서, 단지 감자만 먹었을 뿐인데도 단맛 짠맛의 향연을 느낄 수 있다. 우리가 잘 느끼지 못할 뿐, 감자 자체에도 미량의 나트륨이 존재한다. 감자뿐만 아니라 살아 있는 생명체는 그 정도가 다를 뿐 세포에 나트륨을 포함하고 있다. 영장류인 인간은 말할 것도 없고 소, 돼지, 닭 등 동물들도 마찬가지로 일정량의 나트륨을 가지고 있다.

구운 감자는 100 g 당 1 mg 정도 나트륨을 함유하고 있는데 이게 어느 정도인지 감이 잘 안 온다. WHO에서 규정하는 성인의 최소 필요 나트륨양이 600 mg인데 이에 비하면 보잘것없이 적은 양이지만, 어디 하루에 감자 하나만 먹나 우리가.(하루 2000 mg 이하가 권고사항)

중요한 것은 인간의 혀에 있는 맛을 느끼는 이 미뢰가 민감한 사람은 이 극미량의 나트륨도 인지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맛에 민감할수록, 덜 짜게 덜 달게 쉽게 말게 심심하고 싱겁게 먹게 된다. 내가 그런 사람 중 하나에 속한다. 내가 절대미각이라서가 아니라, 맛을 느끼는 미뢰가 유난히 민감해서다. 그래서 감자를 그냥 먹어도 간이 딱 맞다고 느낀다. 목이 메고 퍽퍽해도 삶은 달걀에 절대 소금을 찍지 않는다. 이미 달걀 자체에서 짠맛을 충분히 느낀다. 소고기를 먹을 때도 소금이나 후추 간을(내가 혼자 먹을 때 절대 하지 않는다) 하지 않고도 고기를 씹을수록 짠맛을 느낀다. 그런 내가 일반적으로 맛있다, 간이 맞다 하는 음식을 짜다고 느끼고 진저리를 칠 때가 많다. 집에서 요리할 때도 나는 간을 수십 번 본다. 내 입에는 간이 적당한데, 아이와 남편은 싱겁다고 하기에 부러 내 입에 짜다고 느낄 정도로 간을 한다. 의도치 않게 저염식을 하지만, 그렇다고 감자튀김을 싫어하지 않는다. 가끔은 자극적으로 짠 감칠맛이 필요할 때, 즉 나의 생체 리듬이, 나의 컨디션이 유난히 단짠을 원할 때는 꼭 먹는다.


인스타그램에  감자에 설탕 찍어먹냐 소금 찍어먹냐, 그냥 감자 본연의 맛을 즐기느냐 투표를 했다. 나의 몇 안 되는 인스타그램 친구분들께 투표해 주십사 요청했고 감사하게도 소중한 개인의 취향을 투표해 주셨다.

압도적으로(?) 설탕 찍먹이 많았고(52%), 소금찍먹(30%), 구운 감자 본연의 맛(18%) 순으로 결과가 나왔다. (물론 그 외 다른 감자 취향을 가진 친구들의 선택지를 생각하지 못했던 점을 죄송스럽게 생각한다.) 어떻게 먹든 개인의 취향대로 맛있게 먹으면 좋지만, 사족을 붙이자면, 영양학적으로 설탕보다는 소금을 찍어먹으면 감자 속 칼륨이 나트륨과 만나 신체 노폐물 배출을 촉진시킨다고 한다. 또 감자에 들어 있는 비타민B1이 설탕을 만나면 흡수되지 못한다고 하니(음식의 합이 맞지 않는 경우) 혹시 생존을 위한 식욕보다 건강을 생각한다면, 혹시 다이어트를 하고 있다면 설탕보다는 적당량의 소금을 찍어드시기를 슬쩍 권해본다.


그냥 먹어도 맛있는 감자지만, 더 맛있게 건강하게 먹고 다 같이 건강한 일상을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을 이렇게 길게 적어봅니다.

*참고: 하늘과바람과별과인간(김상욱)79p.  21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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