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해야 할 이유에 대하여
사람 사는 곳 어디나 먹고사는 이야기
넓고 넓은 세상. 그 땅을 밟고 사는 사람도 다양하고, 그 땅이 내어주는 것을 먹고사는 사람들의 식문화도 다양하다.
You are what you eat.
내가 먹는 것이 곧 나라고 할 정도로, 무엇을, 어떻게, 또 얼마나 먹느냐는 삶의 필수값이 아닌 선택값이 되었다.
나라와 나라를 넘나드는 일이 자유롭고 문화의 장벽은 낮아지고, 특히 식문화의 경계가 흐려졌다. 여러 문화와 삶의 형태가 혼합되면서 각 문화마다 서로의 음식들도 흡수되고 재탄생하는 퓨전푸드는 이미 오래전에 유행을 마쳤고, 주식(主食)의 개념도 바뀌었다. 아침에는 그리스식 저속노화식단, 점심은 이태리 파스타, 저녁은 한국인의 밥심, 김치찌개로 개운하게 마무리하는, 이 혼합식단이 전혀 이상하지 않은 이유다.
보통은 하루 세끼를 정해진 시간에 규칙적으로 먹는다. 영양섭취를 통해 생존에 필요한 에너지를 얻고 신체 기능을 유지하지만, 이제 식사는 사회, 문화의 활동의 영역이며 각자의 역량과 상황에 따라 하루 한 끼, 두 끼, 많게는 네 끼, 덧붙여 간식에 야식까지. 먹는 이유도 종류도 횟수마저도 천차만별이다.
일단 우리 집을 기준으로만 봐도, 다섯 명이 선호하는 음식, 식사량, 식사 빈도, 식사 속도가 다 다르다. 80억의 인구를 놓고 보면 더 많은 변수들이 생기면서 복잡해지기에 먹는 것도 하나의 일이다.
이러한 먹는 일의 복잡함을 논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기에 육하원칙에 근거하여 단순화함으로 가능한 이야기로 마무리 지어보려 한다.
- 나(누가 먹나) 슬슬 배가 고픈데..(왜 먹나)
오늘 점심은(언제 먹나) 제육볶음 어떨까?(무엇을 먹나)
- 실비집? (어디에서 먹나)
- 실비집 제육은 최고지.
젓가락의 전투가 난무하겠군.(무엇으로 먹나:손, 숟가락, 젓가락, 포크, 나이프, 또는 셰이크 텀블러 모두 포함하는 )
- 맞아, 씹을 틈이 없이 꿀떡꿀떡 잘 넘어가잖아(어떻게 먹나).
아이의 장애로 마주한 새로운 먹는 일
내 아이의 장애는 나와 가족의 삶을 전혀 다른 눈으로 보게 해 주었다. 처음 내가 그랬듯이, 여기서부터는 구독자분들에게 다소 생소한 먹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나의 둘째는 27주 만에 이른둥이로 세상에 태어났고, 태어나서 지금까지 쭈욱, 보통의 식사를 하지 못하였다.
보통의 아이라면 본능적으로 입으로 젖을 물고 빨고, 삼키고 할 텐데, 내 아이는 자가호흡도 어려워 기도삽관을 하고, 작은 몸보다 훨씬 큰 기계의 도움으로 위태롭게 숨을 쉬었다. 젖꼭지를 빨아 물 힘은커녕 자신의 침조자 삼킴지 못하여 매일 새로운 검사들을 하며 원인을 찾고자 했으나, 희귀 유전질환으로 분류되어 현재까지 미진단으로 남아있다.
1 kg 남짓 되는 아이는 신생아 중환자실 인큐베이터에서 콧줄(Levin tube:코를 통해 위나 소장으로 삽입된 튜브를 이용하여 액체 형태의 영양액을 공급하는 식이)로 유축한 모유와 초미숙아용 고가의 분유를 먹으며 2.5 kg까지 자라주었다. 그런데 문제는 아이가 이유 없이 온몸에 힘이 없고 여전히 자가호흡을 어려워했다. 먹은 것들을 자주 토하는 일들이 반복되고 이물질이 기도로 흡인되면서 폐렴이 오고 자주 위험한 이벤트들이 생겼다.
아이가 호흡이라도 편하게 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8개월이 되었을 때, 미루었던 기관절개술(Tracheostomy: 목에 기관으로 통하는 구멍을 만들어 기관튜브를 삽입하여 숨길을 확보하는 수술)을 했다. 그나마 호흡은 편해졌고, 입과 코에서 넘어간 침, 가래가 기도로 넘어가기 전에 석션(Suction: 기관절개관에 카테터를 사용해 이물질을 흡입하여 제거해 주는 행위)을 해주어 이물질 흡인의 위험은 낮아졌다.
또 다른 문제는 오랜 시간 L튜브를 비강을 통에 넣고 빼고를 반복해서인지 비강과 식도에 염증이 생기고, 역류성 식도염이 심해져 코, 입, 기관절개관에서 시커먼 피가 콸콸 흘러나왔다. 콧줄 식이는 중단되었다. 아이의 간수치, 혈액 내 염증 수치가 높아 집중치료를 하는 동안에는 TPN(Total Parenteral Nutrition완전비경구영양법) 중심정맥관을 통해 영양을 공급해 주었다. 정맥영양은 환자의 상태에 따라 정확히 정해진 양만 투여할 수 있었기에 생명에는 지장은 없지만, 아이는 영양실조만 간신히 면한 몰골을 하고 있었다.
결국 만 12개월, 태어난 지 350일 즈음, 위루관(Gastronomy tube:경피내시경 위루술을 통해 위에 삽입한 튜브) 수술을 하기로 결정하고, 무사히 수술하고 잘 적응하여 현재까지 위루관으로 경관식이만을 하고 있다.
※사족: 보통은 안정기가 되면, 위루관으로 생식을 곱게 갈아 먹이기도 하지만, 내 아이는 신장결석, 위장관 출혈 위험이 있어, 6개월에 한 번씩 피검사, 초음파 검사를 하며 추적관찰을 하고 영양상태를 고려하여 소아영양과 교수님과 피드백을 통해 철저히 정해진 칼로리와 영양을 갖춘 경관식이만 할 수 있다. 특이 중 특이 케이스.
보통의 방법을 제외한,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아이를 먹이고 키워내 이제 8살, 아이는 초등학교 1학년이다. 키와 몸무게는 얼추 정상 범위에 근접했지만, 신체발달, 인지발달 등 모든 면에서 아이는 만 2살 남짓의 어린 아이다. 그리고 여전히 입으로는 전혀 먹지를 못한다.
지난 8년간 가정에서, 치료실에서 연하재활을 하고 있고, 현재까지 4번의 삼킴 검사를 시도했지만 결과는 삼킴 반응이 0-구역반사조차 없는-완전 0의 상황이다.
입안에 음식물이나 이물질이 들어오면 본능적으로 기도는 닫히고 식도는 열리는 게 정상적으로 설계된 보통의 인간의 기능이다. 그런데 어떠한 이유에서인지 내 아이는 이 당연한 기능이 아예 탑재되지 않았거나, 망가졌거나 둘 중 하나임이 틀림없다. 아니면 현대의학, 과학이 도달하지 못한 무한한 유전자의 영역 그 어딘가에 내 아이가 갇혀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입으로 먹는 것만이 방법은 아니야
처음에는 입으로 먹지 못하는 아이를 두고, 맛있는 음식 냄새를 풍기고 먹는다는 사실에 엄청난 죄책감에 시달렸었다. '내가 엄마인데, 내 자식 입에 들어가는 거 보는 것만으로도 뿌듯하고 행복한데.. '
시간이 흐르면서, 내 아이의 현실을 직시할 수 있게 되었다. 음식을 입으로 먹어 본 경험이 없어서 인지, 입안에 음식 자극을 주고 먹이는 시도를 할 때마다 아이는 발작하듯 거부했다. 꿀꺽 삼킬 수 없으니 퓨레처럼 걸쭉하든 요거트처럼 미끈하든 어떤 종류의 음식물이든 모두 기도로 흘러가거나 침과 함께 비강에 고여 있어서 석션으로 이물질을 빼주고 난 후에야 호흡과 맥박이 진정이 되었다.
이런 일이 몇 번 반복되고 나니,
내 아이에게는 입에 음식을 넣는 자체가 고문이고 고통이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음식을 맛보는 경험이라도 꾸준히 해주려고 했던 모든 시도들이 아이에게는 기도 흡인의 위험이었고, 비강이 꽉 막혀서 답답하고 짜증이 나는 부정적인 경험들이었음을, 오랜 시간 재활의학과 교수, 재활 치료사들과의 피드백을 통해 받아들이고 나서는 관점을 바꾸기로 했다.
현재 아이는 키와 몸무게, 몸의 움직임과 하루 활동량을 반영하여 -컨디션이 나쁘거나 감기로 호흡이 나쁠 때를 제외하고- 최대 1400 kcal를 위루관을 통해 섭취한다.
예전에는 하루에 6,7회 경관식이를 해야 칼로리를 맞출 수 있었기에 하루가 아이 식사 챙기느라 시간이 늘 빠듯했다.
8살이 된 요즘은, 아이의 컨디션에 맞추어 꾸준히 양을 늘린 결과 하루 4회 경관식이를 한다. 땀이나 침을 많이 흘리면 링티아이로 중간중간 수분보충을 해주고, 운동량이 많은 날은 간식으로 과일퓨레를 묽게 희석해서 간식으로 주기도 한다. 아이는 나머지 가족이 식탁에서 식사할 때면 혼자 자유놀이를 하기도 하고, 원하면 식탁 한 자리에 앉아 영상을 보며 놀기도 한다. 우리는 이것이 일상이 되었지만, 언제가 아이와 함께 같은 음식을 먹을 날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은 놓지 않기로 했다.
입으로 먹지 못하는 장애아이와 비장애 가족의 외식 풍경
가끔, 아니 종종 온 가족이 외식을 할 때가 있다. 둘째의 휠체어 자리를 위해 6명 식탁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데, 가끔 1인 1 메뉴를 강요하는 분위기의 식당들이 있다. 초등학교 1학년이 두 명이라 메뉴를 어떻게 할까 고민을 하게 된다.
'초등학생부터 1 메뉴'
처음에는 4인 메뉴만 주문했다가 유독 몇 식당에서 두 번 세 번이나 4인 맞냐고 묻길래 둘째가 입으로 못 먹는다고 양해를 구하면 그러냐고 웃어주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이해 못 하는 표정으로 나를 이상한 맘충으로 보는 눈길들도 꽤 많았다. 그래서 그냥 넉넉하게 음식을 주문해서 배부르게 먹고 남겼다.
그래서 외식할 일이 있다면 다음 세 가지 정도를 고려하여 식당을 선택한다.(카페도 마찬가지)
1. 사람들이 몰리기 전에 일찍 가서 식당 회전율에 영향 주지 않고 여유 있게 식사하기.
2. 유명 맛집으로 대기 시간이 길거나 테이블 간격이 좁은 식당은 피하기.
3.1인 1 메뉴 식당보다 여러 메뉴 나눠 먹는 식당에서 넉넉하게 시키되 가급적 남기지 않기.
가끔 둘째의 식사 시간과 외식 시간이 겹치는 날에는, 우리 음식을 미리 주문해 놓고 바로 아이에게 위루관으로 경관식이를 해준다. 30분 정도 시간이 걸리는데 음식이 나오면 남편과 교대로 식사하고 아이들이 먼저 먹는다. 주변 시선이 따가운 날도 많지만 아이가 크게 소란을 피우거나 울고 보채지 않는 이상, 보란 듯이 꼼꼼히 야무지게 식사를 마치고 나온다. 요즘 둘째는 나름 점잖아져서 가족들의 식사가 끝날 때까지 잘 기다려주고 있는 모습을 보며 감개무량하다는 마음이 든다.
(시켜 먹으면 되지 굳이 외식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질문은 받지 않습니다.)
Q. 아이가 음식에 달려들거나 입으로 음식을 가져가려 하지 않나요??
이런 질문을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들었다.
단 한 번도 없다. 과일이나 요거트로 촉감놀이도 하고, 여러 재료로 놀이하듯 요리도 해보았지만, 아이에게는 그저 하기 싫은 놀이 중 하나일 뿐, 입에 넣어 보고자 하는 호기심이나 음식에 달려드는 충동적인 행동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식욕이 없는 것도 아니고, 그저 입에 음식을 넣는 일이 아이에게는 어떠한 매력도 없는, 고통스러운 일임을 깨닫고 나서, 나는 이 부분에서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입으로 먹는 이 보통의 당연한 일을 내 아이에게 강요하지 않기로 했다.
세상에 당연한 것이 없듯, 입으로 먹을 수 있다는 이 당연한 삶을 사는 것에 감사하며, 내 아이도 자신의 방법으로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며 감사하게 된다.
혹시 오늘 입맛이 없다고, 점심 메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투덜거리고 있다면, 잠시, 숨 한 번 크게 쉬고, 침을 꼴깍 삼켜보시길.. 그게 당연한 당신은 그것만으로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