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혼자일 때도

꽤 괜찮은 나

by Eunjung Kim
혼자 있다는 것은 무엇일까


10여 년 전, 첫 아이를 육아하며 찾아왔던 번아웃에서 허덕일 때 가장 많이 생각했던 단어가, 바로 혼자였다.

(물론 지금도 자주, 간절한 단어가 혼자이다. 나 혼자..)

완벽한 혼자. 하루 단 몇 시간이라도 오롯이 혼자라는 느낌을 충만하게 누리기를 간절히 바랐던 시절에, 그랬다.

함께가 주는 심리적 안정감과 행복도 좋지만 그와 반대로 적당한 거리감과 어딘가에도 속해있지 않다는 탈소속감도 분명 필요했고 중요했다.

그래서 그때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놓고 카페에 앉아 글을 썼고, 하고 싶은 공부를 했고, 대학원 준비를 할 수 있었다.(물론 대학원은 쌍둥이 임신과 함께 물 건너 가.. 다)

철저하게 혼자일 수 있던 그 시간들이, 한정된 시간이었기에 더욱 소중했고, 그래서 더 그 시간들이 즐겁고 유익했는지도 모르겠다.


삶이 그렇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다.


가장 먼저 받아들여야 할 제1의 원칙.

24시간을 꾹꾹 눌러 알뜰살뜰 사용하며 사는 사람도, 숨 쉬듯 농담하며 설렁설렁 하루를 사는 사람도, 하루의 단 몇 시간, 단 몇 분이라도 이 우주에서 나 혼자만 존재하고 싶은 충동을 느낄 것이다.

먹고살기 바빠서 그런 생각은 사치라고 말하는 그 사람도, 분명 안다. 지독히 외롭지만 홀가분한, 홀로 나를 마주하는 그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런 시간을 통해 내가 얼마나 형편없는지 확인하는 사람들은 그 시간이 두렵지만, 그 시간을 통해 내가 나 자신을 돌보고 아끼고 위로하는 사람들은 그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안다. 전자는 치유가 필요한 사람이고, 후자는 이미 스스로 치유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혼자 조용히 시간을 보낼 필요가 있다

때로 철저히 혼자일 필요가 있다.

누구나 그렇다. 혼자 덜렁 남겨진 시간이 느닷없이 주어졌을 때, 우왕좌왕 만날 사람을 찾아 연락처를 뒤적이기보다 나만의 장소에서 외부와 적당히 단절된 채 나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


당신만의 그런 곳이 있어야 한다.


물론 그런 곳이 완전히 외부와 단절될 필요는 없다. 나의 마음과 생각, 주의를 흩트리지 않을 정도의 공간,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좋지만, 적어도 듣고 싶은 노래를 듣거나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을 천천히 음미하며 꼭꼭 씹어 먹거나, 크게 변하지 않는 경치 좋은 창가 자리에 앉아 햇살을 바라보며 한갓지게 일광욕을 하거나.


우주선을 타고 지구 궤도를 유영하는 우주인들이 파랗고 초록이었다가 암흑이었다가 찬란한 후광과 함께 다시 초록이었다가를 반복하는 지구를 바라보며 느끼는, 내가 그 땅에 발 디디며 살 때는 느끼지 못한, 경이로운 이질감으로 삶을 바라보는 프레임이 확장되는 것처럼.


나라는 우주를 조금은 멀리서 관찰하면,


유치 찬란 초라했다가 조금 반짝반짝 빛났다가, 가끔 놀라울 만큼 똑똑했다가 자주 우스꽝스러웠다가를 반복하는 나를 한데 뭉뚱그려 '형편없는'으로 치부하기보다, 하나하나가 모두 다 나라는 사실을 인정하면-그런 나 자신이 정상이며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고, 우리 모두는 그렇게 서로 다른 이면들이 반복되면서 하루를 둥글 둥글게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쓸데없는 열등감도, 교만함도 자괴감을 배설물처럼 흘려보낼 수 있다. 감정의 배변도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을 통해 가능하다.



남편이 7일간 해외 출장을 다녀왔다. 그 말은 나 홀로 7일 동안 독박육아를 했다는 뜻이다. 여기서 홀로는 결코 혼자가 아니지만, 24시간 케어해야 하는 장애아이 포함 삼 남매와 함께한 일주일은 그 어느 때보다 혼자를 열망하게 해 주었다.

남편에게 오늘 하루 휴가를 내라고 하고, 지난밤에 나는 울었다.

오늘 하루 혼자 뭐 할까, 생각하는데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혼자 영화 보고, 전시 보러 가기.. 좋아하는 것들 다 떠올려봤는데 영 하고 싶지 않았고, 누구도 만나고 싶지 않다는 사실에 그냥 울어버렸다. 서운하고 서러워서가 아니라, 그만큼 정신적, 육체적으로 내가 버거웠다는 사실과 이제 남편이 왔으니 됐다는 데에서 오는 안도감에서 오는 카타르시스였다.


그리하여, 아이들 학교 보내고, 둘째를 남편에게 맡기고 홀로 자주 가는 카페, 내가 좋아하는 창가자리, 그 자리에 앉아 혼자에 대한 글을 쓴다.

이 글을 마치면 둘째를 데리고 남편과 쇼핑몰에 가서 점심 먹고 조금 돌아다니다 오후에는 테니스를 칠 예정이다.

오롯이 혼자를 정리했으니, 기운을 내서 다시 삶으로, 내가 사는 지구에 안전하게 착지해서 삶을 살아내야지!!

내가 좋아하는 카페, 창가 자리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나의 영어 성장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