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향한 시선을 변화시키는 마음의 시작
살랑이는 바람이 기분 좋게 피부를 감싼다. 미세먼지 없이 맑은 하늘을 볼 수 있는 멋진 가을날들이다. 참 기분이 좋다. 그런 기분 좋은 어느 날, 이른 점심을 먹고 책 한 권, 커피 한 잔 들고 아이를 데리러 유치원으로 향했다. 늘 태권도장으로 바로 하원을 하던 아이였지만, 그날은 엄마와 같이 가고 싶다고 했다.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 바로 옆,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고등학교가 있다. 아침저녁으로 그리고 수시로 남녀 고등학생들을 볼 수 있다. 나도 그 시절을 지내온 한 사람이지만, 시대가 변했기에 내가 이해할 수 있는 고등학생에 대한 편견이 없지 않아 있었나 보다.
그날 그 고등학교 교실 바로 옆 담자락에 있는 벤치에 앉아 있노라니 악기 연주 소리가 들렸다. 리코더인지 오카리나인지 아니면 둘 다인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음악시간에 합주 연습을 하고 있는 듯했다. 다행히 바람소리만 들리고 사방이 고요해서 멜로디가 선명하게 다가왔다. 수 십 번도 넘게 불러서 지금도 별 어려움 없이 완창 할 수 있는 노래라 금방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이 노래를? 고등학생들이? 얘네들이 이 노래를 어떻게 알까?'
Pearly Shells, from the ocean
Shining in the sun
Covering up the shore
When I see them
My heart tells me that I love you,
More than all the little pearly shells
For every grain of sand upon the beach
I've got a kiss for you
And I've got more left over
For each star
That twinkles in the blue
Pearly shells, from the ocean
Shining in the sun
Covering up the shore
When I see them
My heart tells me that I love you
More than all the little pearly shells
More than all the little pearly shells
<PEARLY SHELLS>
나는 1990년대 말에 이 곡을 처음 들었다. 그러나 이 노래는 60년대 유행하던 하와이안 팝송이었다. 내 취향이 60-70년대 포크송을 좋아해서가 아니다. 중학교 때 영어 선생님께서 들려주셨던(또 직접 불러주시기도 했던) 아주 생소한 팝송은 절대 내 취향이 아니었다. 당시 나에게 팝송이라면 Backstreet Boy, N'sync , Hansons, 그리고 Spice Girls나 Aqua처럼 10대들의 워너비 팝가수들의 노래가 전부였다. 그런데 영어 선생님을 통해 듣게 된, 이 할머니 파자마 같은 느낌이 드는 이 팝송은(어디로 튈지 모르는, 하루에도 마음이 열두 번도 널뛰기하는 10대였던 나에게는 정말 그랬다) 그야말로 세대차이에 의한 문화 충격이었다. 영어 수업 시간에 팝송을 듣고 영어 문장 구조를 배우는 일은 종종 있었지만(학기에 1번, 팝송을 불러 영어 실기평가를 하기도 했다) '한국인이 좋아하는 팝송' 목록에도 없을 것 같은 이 희귀한 노래를 따라 부르면서 나는 꽤나 툴툴댔던 것 같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팝송에 대한 편견이 사라지게 된 건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비슷한 시기에 친하게 지내던 친구를 통해 Bee Gees와 Queen을 만났다. 맨날 만화책방에서 같이 키득거리며 놀던 내 옛 친구들은 실은 클래식과 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편견 없이 듣고 있었던 것이다. 10대 청소년들은 늘 쿵쾅쿵쾅 대는 EDM(electronic dance music)만 듣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그 벤치에 앉아서 잠깐 그런 생각을 했다.
어쩌면 나는 '요즘 10대 아이들은 ~~ 해'라는 프레임을 가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고등학교 교실에서 흘러나온 Pearly shells이 반가우면서도 이질적으로 느껴졌던 것이다.
얼마 전까지 10대 청소년들은 늘 호르몬 분비가 왕성해서 감정 기복이 불안정하고, 폭발적으로 넘치는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해 공격적이다 못해 무섭기까지 하다는 말을 서슴없이 내뱉기도 했다.
그런 아이들이 가지런히 앉아 리코더로 아름다운 화음을 만들어 내고 있다는 모습을 그려보자니 나의 편견의 희생양이 된 아무개 10대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고 괜스레 무안했다.
보이는 그대로 판단하기에는 아직 나는 성숙하지 못한 어른이다. 있는 그대로 사물과 타인을 인식할 수 있도록, 나 자신부터 편견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의식적 연습이 여전히 필요하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됐다.
70대 할아버지가 이어폰을 끼고 걸어갈 때, 트로트를 듣고 있을 거라는 편견을 깨는 것만큼 10대 아이들이 늘 아이돌 가수의 노래만 들을 거라는 것과 같은 선입견에서 늘 한 발 물러서 있기를.
이 글을 쓴 나는 음악을 좋아하고 장르를 가리지 않고 듣는 편이다. 의식적인 노력이기도 하지만 실제로 어떤 노래든 듣고 기분이 좋으면 좋다. 아이돌 가수들의 노래도 좋고, 아들이 좋아하는 만화 주제곡도 따라 부르며 들썩들썩하고, 바람 부는 날 차를 마실 때는 클래식을 듣는다.
덕분에 내 아들은 차이코프스키의 꽃의 왈츠와 드보르작의 유머레스크를 좋아하면서, 터닝메카드 노래(만화 주제가)가 나오면 목청이 떠나가라 불러대고, 싸이의 나팔바지를 들으며 춤을 추고, 윤도현 밴드의 나는 나비를 들으며 에어기타를 치기도 한다.
나는 나에게도 내 아이에게도, 다른 사람에게도 편견의 잣대를 들이대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노력할 것이다. 음악뿐이 아니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누가 무엇을 좋아하든 함부로 색안경을 끼고 보지 않으려고 노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