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unjung Kim Apr 08. 2022

나이를 먹는다는 것

진짜와 가짜 어른

마냥 아가인 줄 알았던 아이가 생각지도 못한 말을 했을 때, 놀란 마음에 어른들은 종종 묻는다.

"벌써 그런 걸 알아? 우와. 어디로 나이 먹었어?"


이제 좀 세상을 살았구나 싶은 어른이 생각지도 못한 철없는 행동을 했을 때, 정색을 하며 어른들은 묻는다.

"그런 것도 몰라? 아이고. 나이를 어디로 먹었어?"


나랑 비슷한 세대를 살아온 보통의 누군가는 한 번쯤 들어본 레퍼토리가 아닐까.

전자는 놀람과 대견한 마음에서 쏟아지는 감탄의 말, 후자는 짜증과 못마땅한 마음에서 쏟아지는 비난의 말.

전자는 당연하지 않은 일을 했을 때 반응, 후자는 당연한 일을 해내지 못했을 때 반응.

전자는 실수를 해도 귀엽고 예쁠 나이, 후자는 실수라도 했다 하면 미운털 제대로 박히는 나이.


<나이>

해가 바뀔 때마다, 떡국 한 그릇에 더해지는 나이. 한 살 더 먹는 나이.

내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은 나이에 굉장히 민감하고, 먹는 것에 진심을 담는 문화이다. 그러다 보니 나이마저 먹는다고 표현한다. 나이는 그저 시간이 흐름에 따른 숫자적 표현에 불과한데, 우리의 민족성은 그저 흘러가는 그 시간의 절대성에, 시간의 주체가 나 자신에게 있다생각한 나머지 나이를 먹음으로써 시간을 내 안에 들여놓았다. 다시 말해 시간마저 소유할 수 있다는 의지가 담겨있어서, 우리가 흔히  '너 몇 살이야?'로 시작하여 서로 소유한 시간을 비교해서 우위를 점하고 싶어 한다. 또 누군가 소유한 나이에 맞는 행동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먹은 나이를 들먹여 가며 '나잇값'도 못한다고 하고, 상대방이 먹은 나잇값을 따져 찍어 누르려고 한다.

도대체 나잇값이라는 게 존재하는 것일까, 존재한다면  나잇값을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연령별 생애주기

영유아기(0-5), 아동기(6-12), 청소년기(13-18), 청년기(19-29), 중년기(30-49), 장년기(50-64), 노년기(65-) (참고:e나라 도움)


보통은 그 나이에 맞는, 그 나이에 해야 할 중요한 일들이 존재한다. 이 글을 읽을 수 있는 분이라면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자라면서 해야 할 기본 이상(읽고 쓰기)을 해낸 사람들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 글을 읽을 수 있다고 '어우 잘한다' 칭찬해주지는 않는 것처럼 생애 주기에 따라, 그 나이에 기대대는 행동을 하는 것을 나잇값을 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이런 질문을 던지게 된다.


'나는 과연 나잇값을 잘하고 살았을까?'


영유아기와 아동기는 기억이 가물가물하거나 미화될 가능성이 크나, 그때는 그저 잘 먹고 잘 자고, 잘 크기만 했어도 되는 어화둥둥 내 사랑인 시기라 나잇값을 측정하는 의미가 없다.


질풍노도의 청소년기는 땀 흘리고 놀고 또 놀아도 크게 다치거나 큰 사고에 휘말리지 않았다면 그것만으로도 감사한 시기라 생각된다.(지나고 보니 사춘기를 무섭게 앓지 않았던 것이 참 다행이다) 그러니 무언가 잘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사치의미 없는 나잇값.


내 삶은 나의 것이라는 착각과 자기애로 가득한, 흔들리고 넘어지고를 반복하지만 아프니까 청춘이었던 청년기 또한 그 치열함을 '살아냈음' 그 자체가 결괏값이라 생각한다.(얼마나 많은 청춘들이 입시에 취업에 피지도 못하고 허무하게 지고 있는지 생각해보기를).


그리고 갑자기, 이름마저 낯선 중년기.

분명 나이는 한 살 한 살 차곡차곡 먹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갑자기 중년의 나이로 건너뛴 것 같은 이질감이 드는 것 같다는 중년기를, 나는 어떻게 살아내고 어떻게 나잇값을 하고 살아야 할까 고민하고 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제대로 나잇값을 하기보다, 먼저 어떤 어른이 되었는지-또 어떤 어른이 되고 싶은지를 더 많이 고민하고 싶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나잇값이 무색할 정도로  나이와 사람의 됨됨이는 전혀 무관하다는 것을 살아보니 조금 알겠더랬다. 나이 많은, 무례하고 나쁜 사람들을 많이 보아왔더니 나이가 무슨 대수일까 싶고, 나이는 어리지만 생각의 깊이가, 다른 사람을 대하는 마음의 태도가 착한 사람들을 보며 하늘을 향해 곧게 자란 나무처럼 나이도 건강하게 꼭꼭 잘 씹어서 잘 먹었구나 싶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차라리 '나이를 먹었다'보다 이만큼의 삶의 '연륜'이 쌓였다는 말이 훨씬 믿음이 간다.


여러 해 동안 쌓은 경험에 의해 이루어진 숙련의 정도, 연륜에서 느껴지는 여유와 내공이 상당한 사람, 그런 나이를 먹은 사람을 나는 진짜 어른이라고 부르고 싶다.


아직 나와는 어울리는 않는 좀 멀게 느껴지는 수식어이지만, 나는 연륜이 느껴지는 그런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계속 곱씹게 된다.

그런 어른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자기의 삶을 책임지는 것이 그 첫째이지 않을까. 삶이 굽이지고 가시밭 투성이더라도 자기 삶을 포기하지 않는 것. 남들이 뭐라 하건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걷는 그런 책임 있는 삶을 살고 싶다. 우리가 우러러보고 존경하는 역사 속 인물들이 그러하듯, 소신 있게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수많은 진짜 어른들이 그러하듯 그저 나와 내 가족을 위한 삶에만 급급하지 않고, 이웃을 돌아보고, 학교, 환경에 관심을 갖고, 여성, 아동, 노인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해 목소리를 내고 행동하는 사회 공동체로서의 나의 몫을 다하는 어른이 되고 싶다. 

누구나 어렴풋이나마 남은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마음속에 그려놓고 살아야 흔들리더라도 다시 중심을 잡을 수 있다. 조금 벗어나더라도 제지리로 돌아올 수 있다. 그렇게 나의 삶에 책임과 나의 몫을 다하기 위해 사는 그런 진짜 어른으로 살아가고 싶다. 그렇게 나의 나잇값을 해내고 싶다.



여름 볕에서 벌레와 새들의 숱한 위협에도 포기하지 않고 조금씩 자기를 키워내고 다듬어서 어느 서늘해진 가을바람에 농익은 사과 같은 그런 알찬 어른이 되어야겠다. 나는 지금, 어느 볕에 머무르는 사과가 되었을까.


*결국 ~싶다로 끝난 부끄러운 자기고백에 불과한 글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