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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jung Kim Dec 03. 2023

Quality of life

삶을 대하는 단단한 마음

불과 30년 전, 내가 아직 세상 어려움 모르는 어린아이였을 때, 사실 심리적으로 그다지 먼 과거가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유년기를 돌아보니 좋은 기억들도 많지만, 전체적으로는 참 '심란했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로 개인 위생과 감염병에 더욱 민감해진 21세기의 우리 삶에 비추어 보았을 때, 나의 어릴 적은 밖에서 땀 흘리고 실컷 놀고 와서 잘 씻지도 않았을뿐더러(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입니다), 먹는 것도 어린이 성장에 맞춘 영양식 이라기보다는 그저 한 끼 식사에 불과했던(이마저도 각 가정의 생활정도에 따라 의견이 분분하겠지만 아무튼 제 어린 시절은 그랬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견디지 못할 그런 환경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살았던 것 같다.

내가 어린 시절을 '열악한'이라고 표현하지 않고 '심란한'이라고 표현한 것은 현재의 삶의 수준이, 삶의 질이 향상되었음을 강조하는 표현이지 그 당시를 비하하거나 부정한다는 뜻이 아니다. 이미 삶의 기대치가 높아져서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면 심란하다는 뜻이고, 그래서 지금에 감사하다는 뜻이다.


그러나 삶의 질은 선진국 수준으로 향상되었음에도, 그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삶의 격차는 여전히 존재하고 통계에 의하면 오히려 계층 간 양극화는 심화되었고 평균값이라 불렸던 중산층은 현저히 줄어들었다(https://www.joongang.co.kr/article/24029610). 미디어에 보이는 일상은 화려하고 고급스럽지만, 그 반대편에는 나의 어릴 적 기억보다 '심란' 하고 '열악한'  사각지대가 존재하고 있다. 더우면 더 덥고, 추우면 더 추워지는 사각지대를 생각하면 오히려 심란하던 내 유년시절은 배부른 소리 일지도 모른다.


이런 현상을 보면 입버릇처럼, 21세기 첨단과학의 시대를 사는 우리가 왜 삶의 다양성에 있어서는 여전히 흑백으로 갈리는지 묻게 된다(물론 100년이 지나도 같은 질문을 하게 되겠지만. 평균값의 사람들이 지금보다 더 높은 수준을 향해 끊임없이 달리기를 한다. 너무 차이가 나니까 달리기를 시작조차 못하고 있는 이들은 아예 포기하고 싶어 진다. 그래서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인 측면의 삶의 질(quality of life)양극화도 심해지는 것 같다.


연말이 되니 삶의 질의 양극화는 더 뚜렷해질 것이다.

올 해의 트렌드를 빠르게 읽어낸 사람들은 기쁨의 열차를 타고 연말 시상식의 레드카펫을 밟지만, 고된 하루의 삶을 살아내느라 한 해가 지나가는지도 모르는 누군가에게  새해는 그저 또 하루의 시작일 뿐, 시작도 끝맺음도 없다. (혹자는 루저들의 비겁한 변명일 뿐이라고 하겠지만 안타깝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런 상대적 박탈감을 느낍니다.)


나는 전자도 후자도 아니다. 아니, 아니고 싶다.

물론 이전에는(여기서 이전은 내가 삼 남매의 엄마, 장애아이의  엄마이기 전입니다)한 해 목표를 세우고, 한 달의, 하루의 정해진 일과를 마무리하는 삶을 누구보다 중요하게 생각했고, 그렇게 사는 것이 가치 있다고 여겼고, 그래야 연말의 축제에 축배를 들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삶은 늘 변수(變數)가 존재하고, 변수로 인해 삶의 방향과 가치관, 수준까지도 완전히 전복된다는 것을  지난 몇 년간의 시간을 보내며 배웠다. 스스로를 몇 번이고 비우고 비워내고 나서야 변하지 않는 상수(常數)로서 날것의 나를 마주하게 된다는 것도 배웠다.


나의 삶의 질은, 그저 현재의 나로 결정할 것.  

나의 부모도, 배우자도, 자녀들도 변하는 변수일뿐, 나의 삶의 수준을 결정하는 것은 오직 바로 나 자신.


나의 삶의 질을 더 높은 곳에 두지 말 것.

지나온 시간의 흐름을 거스르지 말고, 나의 속도에 맞게 하루를 살아가되, 무엇이 되겠다거나, 어떻게 살겠다는 목표는 바로 오늘 하루의 삶으로 만족할 것.



연말이 되면 한 해를 돌아보느라 분주했던 시간들과 작별하려 합니다. 목표도 성과도 없지만, 그래도 현재의 삶의 질을 유지하고 만족하면 그러면 되었다고 스스로를 다독여 줍니다.

그저 잘 지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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