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가 기승이지만, 미세먼지 없는 하늘을 매일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계절을 살고 있다.
오늘 하늘이 어떤가?
이 물음에 하늘 한 번 바라볼 여유가 없을 정도로 바쁜 삶을 살고 있어서..라고 되뇌었다면, 하늘은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늘 거기 있으니, 꼭 시간을 내어 잠깐이라도 하늘을 볼 필요가 있다. 물론 오늘 하늘이 어제의 그것과는 전혀 다르지만 어차피 어제의 나도 오늘과 같지 않으니 괘념치 말기를.
나는 어릴 적부터 하늘 보는 것을 좋아했다.
시골집 평상에 누워서 보는, 정말 사방이 깜깜한데 무수히 쏟아지는 별들의 숨소리만 들리는 여름 밤하늘도좋고,
세상 거칠 것 없이 나부끼는 잠자리와 하늘하늘 춤추는 가을 하늘은 또 어떤가.
비 온 뒤 습기 가득 머금고 깊은 한숨 내쉬는 쪽빛의 여름 하늘도 멋지고, 아찔한 아지랑이 취한 듯 꽃잎이 흩날리는 봄 하늘은 매년 기다리는 보람이 있다.
하늘을 보며 쓸데없는 공상을 하는 것도 좋고, 먼 장래를 계획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썼다 지웠다 하는 것도 좋다.
하늘이 그때그때 다르듯이, 하늘을 바라보는 나도 그때그때 다르다. 어떤 날은 구름 한 조각 덩그러니 나 같아서 울적한 마음에 눈시울을 붉혔다가, 비행기가 만들어 놓은 궤적을 따라가다 훌쩍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고 느꼈다가. 어떤 심술궂은 마음이 드는 날은 괜히 죄 없는 하늘에 다짜고짜 소리를 지르다가.
여러 의미로서 하늘은 나의 숨구멍과 같았다.
엄마는 내가 무언가를 원하거나 욕심을 낼 때면 늘 같은 말을 했다.
'사람이 나보다 힘들고 못한 사람들을 보고 살아야지, 나보다 잘난 사람만 보면 못살아. 뱁새가 황새 따라가려다가 가랑이 찢어지지?'
그 말이 어찌나 목에 콱 매이던지. 내가 황새가 되겠다는 것도 아니고 바라만 보는 것도 안 되는 건가, 따라가면 안 되나?
어린 마음에 '나보다 못난 뱁새는 없을 거야'라는 말을 속으로 백번은 내뱉으며 티도 안나는 반항을 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그때도 하늘을 보며 나는 '더 높은 곳을 볼 거야'라고 다짐했었다.
그리고 내가 말한 그대로 내 주변에는 우러러볼 만한 좋은 친구들, 좋은 선생님들, 선배들이 있었고, 내가 알지 못했던 경험 해보지 못했던 세계로 나아갈 수 있도록 새로운 자극으로 나를 이끌어 주었다.
어제는 몰랐던 것을 오늘은 알게 되고, 알게 되니 하게 되고 하게 되니 그게 삶이 되었다.
그런데 어느순간, 그렇게 나아가던 삶의 사방이 꽉 막혀버렸다. 내가 한 선택들에 모두 오답의 낙인이 찍힌 것 같았다.
내가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수 없이 자책하고 원망하고, 또 저주하기에 이르렀을 때, 나는 다시 초라한 뱁새가 된 것 같았다. 주제도 모르고 남들 따라가다 뼈도 못 추리는구나 싶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었다. 남들은 평범하게 하하호호 잘 사는데 왜 나는 그 한 발을 내딛지 못하고 쩔쩔매는 것인지 나를 갉아먹는 못난 생각을 해가면서 더 아래로 아래로 깊은 곳으로 내려갔다. 나보다 못난이가 저 아래 어딘가에 있기는 한 것일까.
내가 하늘을 스케치북 삼아 그려왔던 삶은 어디로 갔을까. 더 고상하고 겸손한 가치를 추구하며 살고 싶었는데, 허울 좋은 욕심이었나.
그러다 문득 저 위에서 하늘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부모님이나 가족이 아닌, 그저 계속 거기 있었던 하늘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만 같았다.
이제 그만 나를 좀 보라고.
하늘을 바라보는 것만큼은 누구에게나 주어진 축복이 아니던가. 이 공평한 축복만큼은 누구와 비교할 수 없으니 내가 잃어버리지 않는 이상 온전히 내 몫이다. 허황된 공상도 좋고 미래를 꿈의 궁전으로 스케치하는 것도 좋으니 제발 하늘을 바라보라는 내 맘속에 어린 나의 외침을 외면했다면 지금 나는 이 글을 쓸 용기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아래를 바라보며 살라는 엄마의 말이 겸손하게 욕심부리지 말고 내 몫을 하고 살라는 뜻이 었음을 지금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좌우 위아래 누군가를 기준으로 해서 나의 삶을 비교하며 만족하며 살기보다는 무한히 높은, 변화무쌍하며 아름다운 하늘을 보며 더 아름답게 살아갈게요. 누구와도 비교 당하지도, 누구도 비교하지 않는 삶을 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