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의 시간

목소리를 기억하세요?

by Eunjung Kim

어린 시절, 그러니까 7~8살쯤으로 기억되는 아이였을 때, 엄마는 일주일에 한 번, 양가 할머니 댁에 전화를 하게 했다. 별 유대감도 없고, 예쁨 받지 못했던 친가와는 달리, 늘 가고 싶고 보고 싶은 외할머니에게 전화하는 일은 언니와 내게 즐거운 일과였다.

신호음이 몇 번 울리고서 할머니 목소리가 들린다.

찌이잉-

그때는(언 30년 전이라) 시외 전화나 시골로 전화를 하면 기계 잡음이 들리는 이른바 통화감이 좋지 않던 시절이었다.

그 통화 잡음 너머로 들리는 귀엽고(실제로 우리 할머니는 작고 귀여우셨다) 아기자기한 할머니의 반가운 목소리가 울린다.


"은정이냐?"


언니와 나는 지금도 목소리가 비슷해서 다른 사람들이 헛갈린다고들 하는데, 할머니는 어찌 그 열악한(?) 통화감에서 언니와 내 목소리를 단번에 알아차리시는 걸까.

일부러 언니랑 번갈아 가며 전화를 하는데도 100% 확률로 '은정이냐?'를 맞추시는 할머니를 어찌 더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할머니에게는 6남매가 있었고, 장성한 자녀들의 자녀들까지, 이미 20명에 가까운 손주들이 있었다. 또 우리 엄마가 막내딸이라, 언니와 나 내 동생은 손주들 사이에서도 꼬리 축에 속하는 자칫 존재감 없는 수많은 손주들 중 하나에 불과할 수도 있었다. 그 많은 손주들 이름도 까막까막하실 연세에 꼬리 중에 꼬리에 있는 손녀들의 이름을, 목소리를 기억한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다. 남존여비의 끝판왕 사상에 사로잡혀있던 친가에서는 우리 세 자매가 그다지 환영받지 못했다는 점에 비추어볼 때, 외할머니의 이 각별한(?) 관심이 얼마나 황송 감사하겠는가.

때마다 철마다 할머니는 우리 자매들의 먹을 것들을 살뜰히 챙기셨고, 시골에서 전주에 나오실 때면 하다 못해 우리들 양말 한 켤레라도 사서 넣어주시던 분이셨다. 엄마가 아파서 수술받을 때, 어린 동생을 봐주러 와주신 분도 허리가 ㄱ자로 구부러진, 그래도 정갈하게 긴 머리 쪽지어서 말끔한 모습이었던 우리 할머니였다.

그래서 그런지, 할머니를 향한 애잔함과 그리움이 금방이라도 만져질 듯 생생하다.

20살 때 할머니에게 복음을 전했다.

"호랭이가 물고 갈 년, 너도 예수쟁이냐?"

카랑카랑 매섭게 쏘아대셨지만, 나는 결코 무섭거나 마음 상해하지 않았다. 작고 귀여우신 할머니가 욕은 또 얼마나 찰진지. 그래도 타격감 1도 없는 공격이다.

"할머니, 호랭이가 아니고 호랑이거든요?"

할머니는 표현에 서툴렀음을 나는 아주 작은 아이일 때부터 알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으로 치면,

"오구오구, 예쁜 내 강아지, 내 새끼" 정도의 애정 표현이었지 싶다.

내가 결혼하기 전, 할머니는 많이 아프셨고, 사람도 잘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상태가 나빠지셨다. 나는 내가 다니던 교회 목사님을 모시고 할머니를 찾아갔고, 할머니는 간신히 나를 알아보셨고, 예수님을 영접하겠노라 고백하셨다. 그리고 1년 뒤, 할머니는 돌아가셨다. 나는 조산위험으로 병원에 입원 중이라 끝내 할머니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고 장례식도 참석하지 못했다. 할머니의 마지막을 함께하지 못해 안타까웠지만, 그전에 이미 할머니와 많은 이야기를 했고, 충분히 작별의 시간을 가졌었다.


이제 할머니가 돌아가신 지 10년이 지났다. 아직도 쪼그만 할머니가 어딘가에서 포르르 나타나, 아끼던 손녀딸 사는 모습 보고 "호랭이가 물고갈년.." 하고 안쓰러워하지 싶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할머니가 언니와 내 이름, 목소리를 정확히 기억하는 이유는 다름 아닌 늘 묻던 안부 전화에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어쩌면 수많은 손주들 중에서 때 되면 전화해서 밥 드셨냐, 비 많이 오는데 조심하시라, 술 조금만 드시라 잔소리하는 목소리가 그리우셨고 그래서 기다렸다가 그 목소리를 기억하셨다가 그 이름을 정확히 부를 수 있었던 것 아닐까. 수화기 너머 찌이잉 거리는 기계음을 타고 흐르던 그리움과 사랑이 아니었을까.


이제 나도 내 아이들에게 할머니 할아버지께 먼저 전화하라고 일러둔다. 아니면 내가 걸어 아이들을 바꿔주고,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안부를 전하라고 한다. 그때 그 순간의 반가운 목소리를 기억하고, 훗날에도 그리운 어느 날, 먼저 전화를 걸어 안부를 전해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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