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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준희 Jan 14. 2019

넉살의 <Nuckle Flow>와 삶의 태도

내가 좋아하는 음악들.


글을 쓰는 건 정말 오랜만입니다. 정확히는 대학생이라는 신분으로 과제라는 이유로 글을 쓰는 게 아니라, 제가 쓰고 싶어서 글을 쓰는 일은요. 물론, 지금은 시험기간이고 과제와 발표가 다가오고 있으며 그래서 숨 쉬는 행위조차 재미있게 느껴진다는 마법의 기간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마법의 기간에는, 사소한 일들을 생각해보는 일, 그리고 그걸 통해 자신의 욕망이나 생각들을 알아가는 일이 정말로 재미있어집니다. 평상시엔 그렇게 스스로를 타일러도 하지 않던 자아성찰을 하필 시험기간에 하게 되는 것은 얄궂은 일이네요. 하여간, 오늘 하고 싶은 이야기는 넉살이라는 래퍼의 <Nuckle Flow>와, 거기서 제가 읽어낸 삶을 살아가는 방식 혹은 태도입니다.


이 이야기는 아주 두서없을 예정입니다. 어쩌다, 조금 그럴싸한 결론으로 끝이 난다면 그건 제가 쓰고 싶은 이야기를 다 쓰고 나서는 글의 말미에 이르러서 아차, 그래서 어떻게 끝내야 하지, 하고 부랴부랴 수습해서 그런 것일 겁니다.


-


저는 세간의 표현을 빌려 말하면 힙찔이입니다. 더 거칠게 말하면 쇼미 때에나 찾아듣는 쇼미충이구요. 더 저열하게 표현할 용어도 있겠지만 그러진 않겠습니다. 이건 일종의 자기방어에 가까운 수사고,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도 아니었으니까요. 하여간 원래 그 장르를 애정하는 이들이라면 학을 뗄 철새 같은 존재죠.  그럼에도 제가 힙합을 들을 때마다, -물론 쇼미 더 머니라는 예능프로그램이 이유가 되기는 하지만요.- 자주 듣게 되는 노래들을 보면 어떤 공통점이 있더라고요.


글쎄요. 딱 잘라 말하긴 어려울 수 있습니다. 음악적 특징이나 장르 같은 게 아니라, 일종의 태도, 그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스웨거(Swagger)일 텐데, 단순히 돈 자랑이나 나 잘 나간다, 그런 게 아니라 나 이렇게 열심히 살았고 그래서 당당히 이것을 쟁취해냈다. 그리고 나는 누구보다 잘한다. 이런 태도가 핵심입니다.


저는 누군가 돈을 많이 벌었다는 이야기에는 크게 관심이 없어요. 음, 물론 그 돈이 저한테 있으면 좋긴 하겠네요. 그런데 사실 관심이 오래 가지 않습니다. 어차피 계속 생각한다고 내 것이 되는 것도 아니고, 저는 제가 먹고살만한 상황이면 어마어마한 돈은 크게 눈에 들어오지 않을 것 같아요. 물론 그 상황이 또 닥친다면 다르긴 하겠지만요. 그런데 돈보다 더 눈에 들어오는 건 래퍼들이 삶에 견지하는 어떤 태도입니다.


나는, 이렇게 열심히 했으며 그래서 최고의 자리에 올랐고 나의 말과 행동이 부끄럽지 않다. 물론 거칠게 표현하는 과정에서 욕이 섞이게 되죠. 비속어는 좋든 싫든 주장을 강화하기도 하고, 혹은 그 말의 저의 자체를 의심하게 합니다. 그런데 비속어를 거의 섞지 않고도 이런 태도를 아주 멋지게, 그들 말대로 스웩 넘치게 표현하는 이들이 있어요.


제가 최근에 자주 듣는 넉살의 <Nuckle Flow>야 말로 그런 태도를 아주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누가 누구보다 잘한다 이런 건 생각보다 중요하지 않죠. 우리는 경쟁에 너무 익숙하고 -이미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은 사실이죠-, 그리고 인간은 우열을 나누는 걸 참 좋아하긴 합니다만, 냉정하게 한 개인의 인생에서 누구보다 잘 한다 못 한다는 중요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내가 거기에 만족하냐, 만족하지 못하냐겠죠. 아무리 잘한다 하더라도, 항상 누군가를 의식해야 한다면 그건 조금 불행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발전의 원동력이 되어주기도 하겠지만, 열등감이나 경쟁을 의식하는 태도는 사람을 좀 먹는다고 생각하거든요.


물론 이 노래, <Nuckle Flow>는 힙합이라는 특성상 아주 거칠게 자신의 재능을 뽐냅니다. 2분을 정말 딱 채운 노래에서, 후반부의 가사는 힙합을 한다는 이들에게 들으라는 듯이 과시합니다. 이 정도는 해야지, 힙합한다고 하는 거 아니겠어?


저는 이런 솔직한, 어느 정도는 허세가 섞인 태도가 정말 좋습니다. 제가 이런 태도를 취하는 걸 어려워해서 그런 것도 있고요. 저에게도 뭔가 재능이 있다면 이런 자신감을 부렸을려나 싶기도 한데, 사실 이런 태도는 나이가 어릴 때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거든요.  저에게도 남은 누구도 나를 이해해주지 못하고, 나는 정말 잘났어, 나는 최고야, 그렇게 생각을 했었습니다. 물론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걸 알고 굉장히 슬퍼하긴 했지만요. 여전히 그때 학습한 어떤 패배감이, 허세를 부리는 것 자체를 경계하게 합니다.  혹은 아주 음험한 방식으로 허세가 아닌 듯한 허세를 부리게 만들었는지도 모르지요. 그러나 이렇게 건강하게, 네, 정말 건강한 방식으로 자신의 잘남을 말할 수 있다면 저는 그것은 하나의 축복이며 또 재능이라 생각합니다.


설령 정말로 자신이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100% 신뢰하지 않더라도, 언젠가는 나 자신이 그런 말을 했다는 걸 후회하고 또 부끄럽다고 여길지 모르지만, 어쨌거나 나는 최선을 다했고 이것이 지금 나의 최선이기 때문에 나는 지금 이렇게 말할 수 있다. 그런 태도가 보이지 않습니까. 저는 그런 사람의 최선, 최고를 향한 태도를 좋아합니다. 글쎄요, 대리만족인지도 모르겠네요.


물론 저는 넉살이라는 래퍼 개인의 팬...은 아닙니다. 저는 누군가의 팬을 자처하기엔 너무 철새예요. 얕게, 잠시만, 그 사람에게서 내가 원하던 것을 보고, 그 이후에 또 다른 더 나은 무언가 혹은 그 순간에 나를 더 강렬하게 끌어당기는 무언가로 이끌리듯이 옮겨갑니다. 저의 이런 태도는 분명 좋지만은 않다고 생각합니다만. 그래서 사실 넉살이라는 사람은 이렇다, 혹은 이 사람의 노래는 이럴 것이다,라고 말할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됩니다. 제가 그렇게 말한다면 넉살 님 본인은 물론이고, 넉살 님의 팬들도 좋아하지 않겠죠. 그러나 적어도 이 노래에서, 저는 그 사람의 생각을 알 수 있어 정말 좋았습니다. 그리고 그 건전한 생각을 누군가 자신의 재능으로 표현하다는 게 얼마나 멋진 일인지도 알게 되어서 더욱 좋았죠.


그래서 이건 사심이 담긴, <Nuckle Flow>의 소개 글이며 동시에 "님들, 넉살 <Nuckle Flow> 들어봤음? 개 좋음. 빨리 들어보셈 ㄱㄱ"라고 하지 않고 쓸데없이 주절주절한 것입니다. 이 새벽에 마침 또 이렇게 부담 없이 이야기하기엔, 이런 신변잡기적인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제 취향이나 선호에 관한 글은 음, 물론 제 병적일 정도의 방어적 어조가 부담스러우실 수 있지만, 적어도 쓰고 있는 한에서 저는 굉장히 자유로워지거든요. 물론 다 쓰고 나면 또 이야기가 달라지기도 합니다.


하여간, 뭔가, 힙합을 들어 보고 싶다. 그렇다면 넉살의 <Nuckle Flow>는 어떠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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