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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준희 May 11. 2024

내가 대회에 나가는 이유

크로스핏 일지(2024.5.10)

1. 어쩌다 대회

2019년 9월에 크로스핏을 시작하고, 2020년 말부터 대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대회라고 하면 너무 거창하지만, 그렇게 대단한 것도 아니다. 박스 내에서 회원들끼리 참여하는 쓰로다운은 사실상 동네 체육회이라 봐야 하고, 전 세계의 크로스핏터가 모두 참여하는 크로스핏 게임즈 오픈은 돈 내고 참여하면 순위를 알려준다뿐이지 대회라고 하기도 뭣하다.


본격적으로 대회라고 할만한 행사에 참여한 건 2022년이 처음이었다. 운 좋게도 본선까지 진출해서 오프라인 행사장까지 가게 되었고, 그 뒤로도 어찌어찌 오프라인에서 열리는 대회에 참여할 기회를 몇 번 더 얻을 수 있었다.


이제와 돌이켜보면 정말로 운이 좋았다는 말밖엔 할 도리가 없다.


2. 운과 노력

물론 단순히 '운'이라고 퉁쳐버리면, 함께 열심히 준비한 팀원들과 내 자신의 노력까지 폄훼하는 게 될 테니 겸손함도 적당히 해둬야겠다.


그럼에도 운이라는 말을 주워 담는 건, 그 자리에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있었더라도 전혀 이상할 게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가 팀에 합류할 수 있었던 이유를 '운'이라는 단어가 아니고서는 설명할 재간이 없었다.


당연히 운만 가지고서 본선에 갈 수도 없었겠지만, 좀체 믿기지 않는달까. 여하튼 나를 포함해서 팀원 모두가 어떻게든 본선에 진출하기 위해서 열심히 했다. 순위권에 든 적은 없었지만 그래도 아쉬움은 남지 않도록 본선에서도 최선을 다했다,


그러니까 운이 좋았던 것도 사실이지만 '운'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운 덕분에 크로스핏이라는 운동을 좀 더 즐겁게 할 수 있었다.


3. 대회에 나가는 이유

그럼에도 본선에 참여하기 위해 예선을 통과하는 과정은 그다지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아니, 솔직히 말해서 힘들었다. 취미로 시작한 운동에 이렇게까지 열과 성을 다해야 하나 싶은 순간들이 없었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빈말로라도 즐겁기만 했다곤 못하겠다.


내 선택이기에 누군가를 탓할 수도 없고, 몸과 마음이 모든 괴로움에도 불구하고 대회를 나가는 이유는 뭘까.


매번 고민하게 된다. 나 혼자서라면 해낼 수 없는 걸 누군가와 함께 해냈다는 기쁨을 느끼기 위해서? 내가 지금까지 해온 운동이 의미 있었다고 증명하고 싶어서? 떠오르지 않는 또 다른 이유도 있을 것 같다.


본선에 한 번 나가고 나니, 그 한 번이 단순한 운은 아니었음을 증명하고 싶어서 계속 대회에 도전하는 게 아닐는지. 그리고 이번에도 어김없이 대회에 나가게 되었다.


4. 오늘의 와드.

지난주부터, 본선에 진출할 30여 팀을 가리기 위한 예선이 진행 중이다. 벌써 2번째 와드가 공개되었고, 와드는 아래와 같다.


ENUF Competition Believer Event2 2번째 측정


00:00 ~ 03:00

T2B / Dead Hang hold / Chest Facing Hand Stand Hold

03:00 ~ 06:00

HSPU / Dead Hang Hold

06:00 ~ 09:00

Pull up / Dead Hang hold / Chest Facing Hand Stand Hold


어제부터 글을 쓰기 시작한 관계로, 1번째 이벤트가 아닌 2번째 이벤트에 대해 글을 쓰게 되었다. 그리고 1번 측정도 아니고, 2번째 측정이다. 지난번 기록도 나쁘지는 않았는데, 이번에는 좀 더 잘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다.


측정을 마치고 나니 실제 결과는 지난번보다 좋긴 했으나, 그렇게까지 만족스럽진 않았다. 집에 와서 촬영한 영상을 보는데, 그럴 만도 한 것이 내가 다른 팀원 분들에 비해서 전체적으로 동작을 완료한 횟수가 적었다.


5. 인정하고 나아가기

역시나 곰곰이 생각해 봐도, 대회에 나갈 깜냥이 여전히 못 되는 게 아닌가 싶은 순간이었다. 최선을 다한다고는 했는데, 매번 아쉽다. 그렇다고 내가 대회 하나 준비하겠다고 선수들처럼 매일 같이 운동을 할 수도 없고, 그저 좌절하지 않고 눈앞에 놓인 것에 최선을 다하는 게 전부다.


그렇다. 내가 크로스핏을 지금까지 해오면서 깨달은 건 너무 섣부르게 좌절하지 않고, 조금씩이지만 꾸준히 해나가다 보면 더디더라도 나아진다는 사실이다.


매번 더 나아지면 좋겠지만, 어떤 날은 더 못할 때도 있고 엉망진창인 순간도 있다. 그럼에도 멈춰 서지 않는 것. 한 발자국이라도 내딛는 것. 어차피 내가 운동을 그렇게까지 잘하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었으니까. 그 사실을 다시 한번 인정하고, 할 수 있는 것을 할 따름이다.


대회에 참여할 때마다 자신의 부족함을 느낀다. 그리고 와드를 하는 와중에, 도저히 더 못할 것 같고 그런 마음이 드는 것만으로도 함께 하는 팀원들에게 미안할 때도 많다. 그래도 하기로 했으면 해야지. 자기 자신을 다독이면서, 후회를 남기지는 말자고 마음을 다잡는다.


대회를 나가는 이유는 여전히 모르겠다. 알 것 같지만 말로는 잘 표현되지 않는다. 다만 최선을 다하고 싶을 뿐이다. 이번 측정도 그저 후회 없이 마무리할 수 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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