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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후추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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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onSun Oct 19. 2021

과학자의 자세로

후추일기 스물일곱 번째 


(조금 과격하게 말해서)다시 태어나도 과학자로 살기는 어려울 것 같지만 '과학하는 태도'에 대해서는 커다란 선망을 갖고 있는 편이다. "과학자들은 실패에 좌절하지 않는다. 원래 과학은 실패이기 때문이다."(이정모, 『저도 과학은 어렵습니다만』, 2018) 같은 문장을 만나면 이상한 종류의 희망을 품게 된다. 평생을 ‘나는 학생이다’라는 말을 써 놓고 살았다는 다윈은 죽기 직전까지도 지렁이를 연구했다. 40년이 넘는 연구 과정이 있었다. 지렁이라니. 『종의 기원』을 쓰고도 계속해서 연구한 것 중 하나가 지렁이라니. 나는 이런 삶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더구나 과학자들은 그 혼신의 힘을 기울인 연구의 결과가 언제든 뒤집힐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사람들. 그러니 과학하는 태도란 의심하고, 시도하고, 실패하고, 그럼에도 다른 가능성을 상상하고, 다시 시도하면서 방법을 찾아나가는 모든 일이고 나는 이런 태도야말로 인간을 인간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한다.(그 집념이 낳은 결과가 좋은 것이냐 나쁜 것이냐는 또 다른 문제이긴 하다) 실패해도 도전하는 사람들이 없었다면 내가 마주하고 있는 거의 모든 것을 - 컴퓨터, 의자, 조명, 하다못해 연필깎이까지도 - 지금처럼 편하게 누릴 수 없었을 것이다. 


나의 이런 과학하는 태도에 대한 선망은 나 자신의 과학하는 태도 부족(?)에서 왔을 것이다. 끈기 없음을 언제나 나의 크나큰 약점이라고 여겨왔다. 끝까지 해보는 것, 잘 안 될 때조차 너무 무너지지 않고 계속 해나가는 것, 그런 것을 잘하고 싶었다. 쉽게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을 자주 경외의 시선으로 바라보곤 했다. 고백하자면 나는 별로 그러지 못했다. 최근에야 그런 나의 성향을 호기심 많음이라는 (나름의)장점으로 재해석할 수 있었지만. 그런 이유로 나는 '끝까지 해본 사람들'이 등장하는 모든 이야기, 사건들에 열광한다. 생존자를 깊이 존경한다.(영화 <그래비티>를 볼 때마다 울고요...) 조금은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자주 다짐하는 것은 물론이다. 


후추와 사는 일을 이야기하려고 (거창하게)꺼낸 이야기다. 


후추와 사는 일은 후추를 면밀히 관찰하고, 가설을 세우고, 시도하는 일이다. 동시에 어김없이 실패하고, 그렇지만 좌절이나 포기는 할 수 없으므로 - 당연히 그러고 싶지도 않고 -  다시 시도하고, 드물게 성공하면서 하나씩 답안지를 찾아가는 일이다. 끈기와 뚝심을 가진 연구자가 되는 일과 같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중인데 실은 그런 일이라는 걸 뒤늦게 알았다. (다행스럽게도)정리되어 있는 답안지를 열심히 공부했다고, 이론적으로만 해온 준비를 과신했던 탓이다. 이제는 분명히 알고 있지만, 그 답안지가 후추와 맞춤하느냐는 완전히 다른 문제였다. 또한 그렇게 찾아낸 후추의 답안지가 후추의 성장이나 갑작스러운 경험 등에 따라 때로 바뀌기도 하는, 의외의 복잡성을 가진 일이어서 나는 종종 '후추 너는 왜 말을 못하니?' 하면서 아쉬워했다. 사정이 그렇다면 별 수 없지. 실패하면서 우리의 답안지를 써나가는 수밖에. 그것이 삶, 이기도 하고. 

그래서 요즘은 지인들에게 후추학을 연구중이라고 말하고 있다. 


최근의 큰 고민은 후추의 사료 거부다. 어느 기분 좋은 밤, 후추에게 간식을 후하게 준 것이 화근이었다. 후추는 다음 날 아침을 전혀 먹지 않았고, 저녁도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저녁도 그렇지만 아침을 안 먹으면 일단 엄청나게 신경이 곤두선다. 밥 안 먹은 시간이 길어지면 어김없이 노란 거품을 한 공복토를 두세 번쯤 하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그랬다. 사료를 거부한 지 이틀이 되는 날, 공복토를 하고 기진맥진해 하는 후추를 보며 나는 각종 가설과 연구 결과(블로그 검색...)들을 살핀 후 실험에 돌입했다. 


1) 제한 급식에 관해

실험은 간식을 아예 끊어버리는 것으로 시작했다. 간식이 입맛을 버릴 수 있다는 의견들이 많았다. 이어 전문가들이 입을 모아 하는 이야기는 강아지에게 반드시 '제한 급식(밥을 줬을 때 먹지 않으면 밥그릇을 치운다. 바로 먹지 않으면 먹을 것이 없다는 것을 알려주는 방법이다)'을 하라는 내용이었다. 그동안 이 얘기를 들어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다만 후추의 캐릭터는 식탐이 많지 않고, 입맛이 다소 까다로운 편이라 자율 급식을 해왔던 것이다. 그리고 다시 공복토를 소환하자면, 제한 급식을 시도하다가 후추가 꿀렁꿀렁 온 몸에 힘을 들여 토를 할 때면 '으악, 나 진짜 기절할 것 같다'의 심정이 되는 나 자신 때문이었다. 과학하는 태도로 이 사안을 바라보니 문제는 나에게 있는 것 같았다. (아주 과격하게 말해서)뼈를 깎는 심정으로, 그래 이제 너 1분 안에 밥 안 먹으면 바로 치운다!고 다짐했다.(실천 일주일째)


2) 사료에 대해 

더불어 입맛을 돋우는 노력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집에는 마침 기존에 후추가 먹던 사료와 다른 샘플 사료가 있었다. 둘을 함께 섞어서 후추에게 줘봤더니 새로운 사료의 맛을 좋아하는 듯했다.(10개월 후추가 3개월 때 우리집에 왔는데 벌써 네 번째 바꾸는 사료다. 이러기야, 후추?) 더구나 선배 강아지학자(!) 분들의 연구 결과(!)를 살펴보니 사료 거부를 하는 강아지들에게 사료에 소량의 물을 섞어 전자렌지에 20초 가량 돌린 뒤 급여하면 향과 맛이 증폭되어 잘 먹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후추에게도 당연히 효과 100%였다.(이 실험을 처음 하신 분 정말로 감사합니다...)(하지만 이 방법도 계속 쓰니 이렇게 주지 않으면 다시 사료를 거부하는 불상사가 발생했다. 이 방법 사용하지 않은 지 이틀째) 


3) 먹는 방식에 대해 

비슷한 강아지들이 많겠지만 후추의 아주 귀엽고 웃긴 면은 똑같은 사료라도 밥 그릇에 두면 먹을 생각을 안 하면서 사료를 양말에 숨기거나 종이에 꼭꼭 싸서 노즈워크를 하도록 주면 매우 열정적으로 찾아내 먹는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부러 밥을 먹기 전에는 노즈워크를 잠깐씩 한 뒤 밥을 주기도 한다.(두 번에 한 번 정도 성공)  


어째 후추'일기'라기보다 후추'일지'에 가까운 글이 되었다. 다만 생각하는 것은 다른 존재와 관계를 맺는 것은 다른 존재를 연구하는 일과도 같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그냥 주어지는 것은 없다. 정답도 없다. 관계를 맺는 데에는 시행착오가, 그만큼의 시간이, 마음과 에너지가 들어간다. 그러니 누군가에게 이렇게 애쓰겠다는 선택을 내리는 일은 다름 아닌 사랑을 선택하는 일. 다윈이 지렁이를 사랑하지 않았다면 40년간, 죽기 직전까지 연구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내가 후추를 사랑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마음 졸이는 일도 없었겠지. 아, 달콤한 가슴앓이. 


노즈워크도, 장난감도, 식사도, 산책도... 후추 연구는 다양한 시도들을 해가며 매일 진화하고 있다. 위에 적은 기록들 역시 당장 내일이라도 바뀔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오늘은 실패해도 너무 상심하지는 않는 것이다. 다가오는 내일이 후추학문의 새로운 데이터를 쌓을 기회라고 생각하면 된다. 성공할 때는 안심하고, 실패할 때는 너무 지나치게 걱정하지는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지내는 나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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