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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후추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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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onSun Apr 24. 2022

강아지가 “예쁘다”고요???

후추일기 서른여섯 번째


요즘 한참 고치려고 노력하는 말이 있다. 무심코 나오는 말이고, 사실은 가슴 깊은 곳에서 우러 나오는 순도 100%의 진심인 말이지만 그 말을 할 때마다 마음에 거칠거칠 걸리는 게 있는 말이다. 무어냐 하면, "예뻐"라는 말.

나도 모르게 후추한테 자꾸 예쁘다고 말한다.

귀엽게 까불 때, 나를 졸졸 따라다닐 때, 밥을 와구와구 잘 먹을 때, 신나게 산책할 때, 잘 놀고 헥헥댈 때, 꾸벅꾸벅 졸 때, 그밖에 모든 후추가 그냥 좋은 순간들에 불쑥 "아이, 예뻐"라고 말할 때가 있다. 이게 뭐가 나쁠까. 예뻐서 예쁘다고 하는데. 하지만 그렇게 말해놓고 마음에 뭔가가 탁, 걸린다. '예쁘다는 말을 칭찬으로 사용하는 거 좀 불편하다...' 생각하는 것이다.


예쁘다는 말을 칭찬으로 이해하고, 예뻐야 한다고 생각하고, 예쁘지 않은 것을 속상해 하고, 이 모든 상황 때문에 내가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이제는 멀게만 느끼는)옛날 경험들이 연이어 떠오르기 때문인데, 무려 서른한 번째 후추일기에서 어떤 외모를 가졌든 다 훌륭한 강아지,라는 글을 썼으면서도 그러는 것이다. 이것은 자꾸 외적인 면을 표현하는 언어를 사용하는 나를 깊이 돌아보는 일에 다름 아니다.


나는 강아지의 선량함, 풍부한 사랑의 감정, 다정다감함 같은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그런 내적인 아름다움을 품은 존재로서 인간에게 커다란 위로를 주는 강아지가 말 그대로 기적처럼 느껴진다. 강아지의 사랑은 때로 나에게 조금도 당연하지 않고, 깜짝 놀랄만큼 감사한 것이라고 여겨지는 것. 이때 강아지의 외모는 내가 느끼는 감사함이라는 감정과 아무 관련이 없다. 그런데도 "아이, 예뻐"라고 말하고, 그건 당연히 진심이긴 한데 몹시 마음에 걸려하면서 당혹스러워하는 나날을 보낸다.


정확하게는, 예쁘다는 말은 잘못이 없다. 봄날에 하나둘 피는 꽃이 예쁘고, 화창한 하늘이 예쁘고, 갓 트는 새싹이 예쁘다. 흐린 하늘도 예쁘고, 바닥에 떨어져 말라가는 낙엽도 예쁘다. 비 오는 날 느릿하게 움직이는 달팽이와 지렁이, 성실하게 이동하는 개미들, 나는 그 모든 것들이 정말 예쁘다. 그러니까 예쁜 게 뭐?

그러다 "예쁘다"는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았다. 모두 세 가지 뜻이 있었다.

1) 생긴 모양이 아름다워 눈으로 보기에 좋다.

2) 행동이나 동작이 보기에 사랑스럽거나 귀엽다.

3) 아이가 말을 잘 듣거나 행동이 발라서 흐뭇하다.

1번과 2번 뜻을 보면서도 묘하게 위화감을 느낀 나는 3번에 이르러야 내 불편한 감정을 이해했다. 말을 잘 듣거나 행동이 발라서 흐뭇하다니? 말을 잘 들어서 흐뭇...하다니?? 내가 후추에게 "아이, 예뻐"라고 말할 때, 과연 3번의 의미는 전혀 없었을까? 나는 "전혀 없었다"고 말하지 못한다. 그리고 3번의 뜻을 아주 조금이라도 담아 예쁘다고 말했다면 나는 그랬던 나를 싫어할 수밖에 없다.


어쩌면 후추는 별 상관하지 않을지 모른다. 후추는 내가 하는 말을 전부 이해하지는 못할 테니까. 그러나 문제는 '내가 안다'는 사실이다. 영화 <미쓰 홍당무>에서 학교 축제 무대에 오르길 거부하던 양미숙이 서종희에게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애들은 우리한테 관심 없어"라고 하자 서종희는 말한다. "난 관심 있어!" 나는 서종희의 이 대사가 좋다. 그러니까 나는 나에게 관심이 있다. 내가 어떤 종류의 망설임을 느끼는 일이라면 나는 그것을 최대한 안 하고 싶다. 무시로 하는 짧고 굵은 선택들이 곧 나라고 나는 믿는다. 이것이야말로 내가 믿는 '나다움'이다. 그래서 무심코 사용하게 되는 예쁘다는 말을, 아무리 그 의미를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하는 강아지에게 한다손 치더라도 최대한 안 쓰는 쪽으로 노력하고 싶은 것이다.

이 생각과 관련해서 또 좋아하는 문장이 있어 소개하고 싶다. 깊이 존경하는 전영애 선생님의 책 『꿈꾸고 사랑했네 해처럼 맑게』에 나온 괴테의 문장이다.


"많이 힘 쏟아 행한 바른 일

그것에 더는 마음 쓰지 않는다

그러나 무시로 저지른 잘못된 일

그건 유령처럼 내 눈앞을 겅중겅중 뛰어다닌다."(102-103쪽)


게다가 나는 어떤 말을 했을 때 내 속에 거리낌이 떠오른다면 그것을 후추가 반드시 눈치 챌 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눈물을 흘릴 때 후추가 안절부절 못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또 후추는 어떤 말들을 분명히 알아듣는다. 밖으로 나가자고 할 때, 밥/간식 먹자고 할 때, 남편이 곧 퇴근해 집에 올 거라고 알려줄 때 후추는 그 말의 의미를 정확히 알아듣고 반응한다. 내가 하는 말을 인간이 그러는 것처럼 알아듣는다기보다 나의 억양과 표정, 동작을 관찰하면서 학습한 것이겠지만. 그것 역시 말의 의미를 안다는 점은 마찬가지다.

후추가 내 말을, 나의 의도를 알아듣는다는 건 아주 중요한 사실이다. 덕분에 후추가 나를 비추는 거울처럼 느껴지고, 자꾸 내가 어떤 말을 하는지 점검하게 되기 때문이다. 후추 덕분에 나는 가능하면 좋은 말, 옳은 말을 하고 싶어진다. 얘가 내 말을 듣고 있다고 생각하면 함부로 말할 수 없게 된다. 왠지 그렇다. 무엇보다 후추에게 좋은 말을 전하고 싶은 그 마음이 고스란히 후추에게 전해질 거라고 믿으니까. 그러니까 후추는 나의 '말 선생님'이기도 한 셈이다.


전에도 썼지만 후추의 표정 언어, 몸짓 언어가 때로는 말풍선처럼 선명하게 보인다. 좋아하는 인형을 물고 와 정확하게 내 앞에 탁, 내려놓고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는 후추의 얼굴에서는 이런 말이 둥실 떠오른다.


“여보세요, 인간, 나 지금 많이 심심하거든??!”


우리의 의사소통은 말소리라는 도구를 사용하는 인간 사이의 대화보다 더 감각적이고 더욱 직관적이다. 바로 그런 이유로, 나는 어떤 말을 할 때 내 감정이 조금이라도 흔들린다면 그게 후추한테 분명히 전달될 것을 안다.

그래서 요즘 “아이, 예뻐”라는 말이 튀어나오려고 할  때 입을 꾹 다물고는 다시 말하기를 연습하고 있다. “아이, 사랑해” “아이, 소중해” “아이, 고마워”라고 말하는 연습을. 습관이 무서워서 아직까지는 잘 되지 않는다. 누가 시키지도 않은 이 고독한 고군분투가 어이 없어서 웃음이 날 때도 있지만 나는 내가 후추에게 건네는 모든 말들이 옳은 것이길 바라고, 내 언어가 후추 내면의 아름다움, 후추의 성격에 대한 감탄의 감정들을 더 많이 표현하는 것이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러니까 오늘도 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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