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윤 엮고 옮김, 『슬픈 인간』
(밀린 책 소개를 벼락치기 합니다;;;)
팟캐스트 '책읽아웃',
책임감을 가지고 어떤 책을 소개하는
'어떤, 책임'에 소개한 책.
이번 주제는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책'입니다.
방송은 1월 18일(금) 올라갔습니다 :)
http://www.podbbang.com/ch/15135
천천히 읽을 때 적격인 것은 목차에서 그날, 그 기분에 딱 맞는 어떤 글 하나를 읽는 것일 것 같아요. 이 책에도 재미있는 목차들이 많거든요. 가령 ‘따뜻한 물두부’. 너무 궁금해지죠?(웃음) ‘쇠락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라거나 ‘나의 고독은 습관입니다’ 같은 목차만 보고도 계속 머물게 됐어요. 다자이 오사무, 미야자와 겐지, 고바야시 타키지, 나쓰메 소세키, 하야시 후미코 같은 일본 작가들이 근현대 시기에 쓴 산문을 담은 책인데요. 이 산문을 정수윤 번역가가 선별해서 구성한 책입니다. 재미있었던 게 정수윤 번역가가 다자이 오사무의 고교 시절 산문이 좋았다고 뒤에 적었는데요. 저도 여기 수록된 「온천」이라는 글이 정말 좋았거든요. 1909년생인 다자이 오사무가 1925년에 쓴 글이고, 고교시절 문집에 수록된 글이에요. 정말 천천히 읽어야 해요. 읽어드릴게요.
아름다운 물이다, 그래, 흡사 수정을 녹인 듯 아름답다, 나의 몸을 담그기에 어쩐지 과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만히 탕으로 들어간다, 졸졸 물이 넘쳤다, 아까운 짓을 했구나, 탕 안에 찰랑찰랑 잔잔한 물결이 일었다. 기분 좋다, 햇살이 불투명 유리 너머로 쏟아져 물 밑까지 비추었다. 물은 다시 잠잠해져 나의 몸을 감쌌다. 정말로 밝다, 밖에서 참새가 짹짹 울었다.
이 책을 읽던 시기가 한창 캘리그라피를 배웠을 때예요. 그때 캘리로 썼던 문장이 여기에 있는데요. 오카모토 가노코의 작가의 「복숭아가 있는 풍경」이라는 글의 한 부분이에요. “눈 딱 감고 복사꽃 안으로 들어가자 모든 게 잊혔다.(중략) 나는 아하하 소리를 내 웃었다.”인데요. 저는 이 문장이 너무 좋아서 캘리로 써두고 액자에 걸어두었어요.(웃음)
책 제목이 『슬픈 인간』이잖아요. 저는 그 중에서도 여성 작가들의 슬픔에 더 마음이 갔어요. 남성 중심의 문단과 문화 안에서 자신의 작업을 부수적인 것으로 평가 받으면서도 끝까지 살아낸 여성 작가들의 모습이 엿보였거든요. 그 점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됐어요. 여러 방향에서 천천히 읽을 수 있는 좋은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