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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onSun Jan 17. 2017

이 책을 읽고 울었다는 '김지영 씨'

조남주, 『82년생 김지영』

암묵적이고 교묘한 배제가

그러니까 이것은 '목격담'입니다.

바쁜 회사였습니다. 온종일 있어도 부족한 회사였습니다. 그렇다 해도, 그렇다 하더라도 사람은 회사에 온종일 있을 수 없습니다. 다만 있는 동안 모두가 바빠야 했습니다. 그러니 그랬을 겁니다.

남자 화장실 입구에 있던 제 옆자리는 한동안 비어있었습니다. 알아차릴 새도 없이 먼지가 조용히 쌓여 나라도 좀 닦아야겠다, 생각하던 차였습니다. 마침내 자리의 주인이 출근을 시작합니다. 놀랍게도 그 자리 주인은 과장 직급을 가진 옆 팀 여자 선배였습니다. 빠듯하게 삼 개월, 출산 휴가를 다녀온 그였습니다. 당연히 원래 그 선배의 자리는 남자 화장실 입구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출산 휴가를 다녀오고 보니 그 자리가 그의 것이 되었습니다. 심지어 팀에서도 떨어져서 말이지요. 


문제 삼는 것이 남자 화장실 입구는 아닙니다. 어쨌거나 그 자리에 누구라도 앉게될 수 있습니다. 그 옆자리에 제가 앉았듯 말입니다. 그러나 그 자리에 앉게 된 여자 선배가 간신히 지각을 면하는 수준으로 출근 하고, 야근이 일상적인 회사에서 모두가 저녁 식사를 하러 가는 오후 여섯 시에 함께 일어나지 못한 채 계속 앉아 일을 하고, 눈치를 보며 빈 속으로 그렇게 두 시간을 더 일한 후 겨우 밤 여덟 시가 되어서야 퇴근을 하고, 손목 통증으로 압박 붕대를 푸는 날 없이 그렇게, 가끔은 아기를 친정 어머니에게 혹은 시어머니에게, 그것도 아니면 보모에게 전달하는 통화를 하는 동안 그는 회사 안에서 순수한 의미의 과장은 아니었습니다. 암묵적이고 교묘한 배제가, 분명히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공교롭게도 그의 남편 역시 같은 회사의 직원이었지만 그 남편이 이런 처우를 받고, 이런 생활을 했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습니다.


시작은 같았는데

이런 이야기는 끝도 없이 이어집니다. 친한 후배는 출산 휴가와 육아 휴직을 합쳐 꼭 일 년을 휴직한 후 회사에 복귀했지만, 복귀해서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에게 복직을 알리고 인사 나눴지만 채 일주일도 되지 않아 상사에게 사직을 권고 받았습니다. 이번에도 같은 회사를 다녔던 후배의 남편은 후배와는 상황이 매우 달랐습니다. 후배의 남편은 후배가 출산과 육아로 경력 단절을 겪는 동안 다른 회사로부터 스카웃 제의를 받아 좋은 조건으로 이직을 했고, 지금까지 경력관리에도 문제가 없습니다. 자식은 같은데 삶은 달라졌습니다. 분명 시작은 같았는데, 지금 서 있는 자리가 너무 다르지요. 저는 이런 이야기를 잘 안다고 생각했으면서도 매번 놀랍니다. 놀라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82년생 김지영』은 그 과장과 후배와 이 사회를 사는 모든 여성들의 이야기입니다.


그놈의 돕는다 소리 좀 그만할 수 없어? 살림도 돕겠다, 애 키우는 것도 돕겠다, 내가 일하는 것도 돕겠다. 이 집 오빠 집 아니야? 오빠 살림 아니야? 애는 오빠 애 아니야? 그리고 내가 일하면, 그 돈은 나만 써? 왜 남의 일에 선심 쓰는 것처럼 그렇게 말해?(144쪽)


김지영 씨와 언니는 부모님이 아들을 낳기 위한 과정에서 태어난 존재들입니다. 할머니는 김지영 씨가 남동생의 분유를 퍼먹는 걸 끔찍하게 싫어했습니다. 갓 지은 밥은 아버지, 남동생, 할머니 순으로 퍼 담았습니다. 생리를 하는 것은 집안 여자들만의 은밀함이었고, 버스 안에서 당한 성추행의 기억과 수치심은 늘 여자 몫이었습니다. 학교에서, 동아리에서, 회사에서 견고하게 조직된 남자들만의 세계에 여자는 언제나 배제의 대상이었습니다. 타자이며 대상화된 존재들일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배제되어 바깥 영역에 존재하고 있을 때마저 이 세상의 김지영 씨들은 '맘충' 같은 소리를 들으며 살아갑니다.


더디게 무너지고 있는 중

이 책을 읽고 울었다는 '김지영 씨'를 몇 명이나 목격했습니다. 소설을 쓴 작가도 그랬다고 합니다. 아마 아직 이 소설을 읽지 않은 제 주변의 많은 김지영 씨들 역시 울지 않을 재간은 없을 겁니다. 벌써 몇 명이나 떠오릅니다. 결혼을 몇 주 앞두고 실직한 친구, 결혼하자마자 시어머니의 병환을 간호해야 했던 친구, 육아휴직을 내고 2년 터울의 남자 아이 둘을 혼자 키우고 있는 친구, 친구들... 

그렇기 때문에 이 소설을 소중하게 여겨야 합니다.


저는 울면서, 그러나 견고한 어떤 것이 아주 더디게 무너지고 있는 중이라고 희망했습니다. '더디게' 라는 점에서 서럽지만 '무너지고' 있기 때문에 희망합니다. 이제 여성은 바깥에서 소리치고, 여기도 제 자리라고 설치고, 우리도 사람이라도 외칩니다. 그 목소리들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옵니다. 이 소리가 함성이 되고 사그라지고 당연한 일상의 모습을 할 때까지 더디더라도 희망하면서 열심히 여성의 이야기를 읽으려고 합니다. 동지가 더 많아지길 바랍니다. 그럴 거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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