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하기
겉잡을 수 없이 우울해지는 때가 있습니다.
끈적한 젤리를 밟은 것 마냥 땅에서 발을 떼려면
온몸의 근력을 써야하는 때 말입니다.
온 혈관에 미세전류가 지르르 흐르는 듯
어떤 약을 먹어도 몸살 기운이 떠나지 않습니다.
이 시기에는
뇌의 무게가 느껴지는 것만 같은 묵직함과
날씨와는 관계없는 습함에 눌려
숨마저 몰아쉽니다.
지나가는 누구라도
모래지옥으로 끌려들어가는 내 손을 잡아
끌어올려주기를 바랍니다.
이 우울감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우울감의 근원을 명명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울감을 지나기 위한
가장 그럴 듯한 방법은
'그냥' 있는 것 뿐입니다.
기대하지도 원망하지도 바라지도 마세요.
그냥, 가만히 있어봅니다.
그저, 존재해봅니다.
내일은 내딛는 발바닥에
단단한 무언가가 닿기를 바라봅니다.
내일의 걸임이 오늘보다 약간은
수월해지기를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