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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월 Sep 21. 2022

적을 두다

관악인이 된 이유

이 동네에 정착하리라 마음먹은 건 우습게도 똠얌꿍 한 사발 덕분이었다.

향수에 시달리기엔 다소 짧고, 낯선 해외 노동자로서의 생활치고는 길었던 싱가포르에서의 3년을 마무리하고 들어온 한국. 본격적인 서울 홀로살이를 위해 집을 알아보던 참이었다. 거주지 결정 조건은 하나, 서울의 중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곳. 둘, 집값을 홑벌이로 충당할 수 있으며 셋, 또래가 많이 거주하는 곳. 이런 내 시야에 들어온 곳이 바로 따끈따끈하게 ‘핫플’이 된 샤로수길이렷다. 그 부근으로 집을 둘러보던 나는 샤로수길의 핫함 사이로 솔솔 풍겨와 코를 자극하는 똠얌의 향에 이끌려 한 태국음식점으로 들어갔다. 한국인의 입맛에 꾸역꾸역 끼워 맞춘 것이 아닌 정통의 향신료 맛은 이방인이던 곳의 향수를 역으로 불러왔고, 난 눈이 휘둥그레져 ‘이거다, 이곳이다’싶었다. 그 길로 적당한 크기의 조용하고 깔끔한 집 하나를 계약하면서 나의 관악살이는 시작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관악살이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그 태국음식점은 내가 이사 온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샤로수길을 떠났다는 애석한 후문이 있다.


여기까지가 내가 관악구로 흘러들어오게 된 사연이고, 관악구에 여태껏 눌러살게 된 이야기는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이 동네는 고양이가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새끼 길고양이들이 어린 사람 친구들과 장난감을 나누고 비가 오는 날이면 이곳저곳 통행에 방해되지 않는 구석에 간이 스티로폼 지붕들이 생긴다. 동물 친화적인 동네가 사람에게 차가울 리 없다는 생각을 한 걸 보면 마음 한구석이 시리던 차였나 보다. 골목마다 자리 잡은 카페와 꽃집과 빵집은 신상이 나오면 서로 나누기 바쁘다. 단골 카페에는 단골 강아지가 오고 그 강아지의 이름을 묻다 어느새 나도 그 일원이 된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깨닫는다. “아, 이게 바로 ‘적을 둔다’라는 거구나.” 출근길에 이웃에게 ‘안녕하세요’ 인사를 하는 것이 얼마나 그날의 기운을 그득하게 채우는 일인지 모른다. 이 색다른 소속감에 취해 나는 이렇게 관악에 적을 두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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