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빠의 최후는 고독사
* 아래에 묘사된 친구는 가상의 인물입니다. 그러나 다양한 주변인과의 일화를 합쳐놓은 것임을 밝혀둡니다.
매일 카톡하던 친구가 요즘따라 연락이 뜸한 거야.
요즘 뭐하느라 연락 없느냐, 죽었냐 살았냐 추궁했지.
나와 얼마전까지 ‘이게 썸이냐 아니냐’로 숱한 밤을 지새우며 고민하던, 그 토론 속 주인공 남자와 사귀느라 바빴단다.
‘헷갈리게 하는 놈은 백퍼 간보는 거다, 남자는 내가 맘에들면 돈쓰고 시간쓰고 나만 아는 바보가 되는 게 국룰이더라’ 이론을 주장하며
<어장이다! 썸이 아니다!> 로 결론내렸던 내 의견을 제대로 뒤통수 치는 결과였지 뭐야.
친구에겐 축하할 일이었지만, 아아. 이렇게 또 내 동지가 떠나가는 거구나...싶었어.
이렇게 독거노인이 되는 건가, 하는 약간의 씁쓸함 조금,
그러나 진심을 다해 축복하는 마음으로 ‘축하해! 잘 만나봐!’ 축하인사를 건네는데.....
“고마워, 연락 뜸해서 미안. 너도 남자 얼굴 좀 포기하면 얼른 남친 생길 텐데. 여기저기 높은 눈좀 내려놓고 좀 돌아다녀 봐봐,”
전화를 끊고 나서야 친구의 그 말이, 위로와 미안함을 겉에 덕지덕지 발라놓은, 고도의 염장과 돌려까기였다는 생각에
그라데이션으로 빡이 쳤어.
아니, 이런 발칙한 기집애를 봤나?
내가 남친이 없는 이유가 너무 눈이 높아서 그런다는, 결국 내 탓으로 돌리는 발언을 위로랍시고 한 거니?
그러나 난 참았어.
외로운 존재란 커플 앞에서 빡이 칠 때 더욱 처절한 패배자가 되는 것을 아니까....
난 조용히 향을 켜고 두 손을 모아 그들의 이별을 빌었어.
나 근데 정말 열받았어. 왠지 알아? 나 외모만 보는 거 아니었거든!
난 인성과 행실과 나와의 케미를 더 중시한단 말이다.
어떤 거냐고? 예를 들어 볼게.
기본적으로 담배는 안 피워야 되고, 술고래는 사양이지만 술맛은 좀 아는 사람이면 좋겠고.
키도 크고 운동도 많이 해서 울룩불룩 왕가슴에 태평양 같은 어깨를 지녔으면 금상첨화지. 자기관리하는 사람, 멋있잖아.
손은 커서 내 얼굴을 감쌌을 때 남아 돌면 야성미에 녹아내리겠지?
직업은 나보다 좀 안정적이어서 내가 가끔 허덕일 때 밥도 턱턱 사주면 좋겠잖아.
(나이들어 같이 빌빌대면 좀 힘드니까.)
시사 상식 조금 몰라도 되는데 아는 척 허세부리면서 아득바득 맨스플레인 안했으면 좋겠고,
라면, 김밥 가성비음식만 먹는 사람 아니고 좋은 데서 제철 재료로 잘 만든 고급 음식도 즐길 줄 아는 사람이면 좋겠어.
섬세한데 또 서열놀이 좋아하는 꼰대는 아니어야 된다?
뭐... 그래도 그 중 제일 중요한건 뭐냐면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면 좋겠어.
내 기분 안좋아 보이면 꽃도 막 사다주고, 맛있는 것도 좀 직접 해주고.
응? 염병 떤다고?... 어디까지 가나 지켜볼 테니 더 해보라고?
더 나열하자면 밤을 새도 모자라겠지만 그만 하겠어.
‘너는 상대방에게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냐’, ‘받을 생각만 하지 말고 너나 잘해’ ‘도태된 된장녀’ 라는 둥의 태클을 걸 거라면 반사, 차단할게.
원래 인간이란 이루지 못할 꿈을 꿀 때 더 진지해지는 법이거든.
가령 이상형 월드컵이나 밸런스 게임 할 때
‘차은우vs서강준, 둘중 한명과만 결혼할 수 있다면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
이런 실현불가의 질문 하나만 던져줘도 행복회로 돌리면서 진지하게 고민하는 게 인간이잖아.
그래서 결론은 뭐냐고?
제일 중요한 건 나를 향한 마음을 진심으로 끊임없이 표현해 줄 수 있는 다정한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거지.
아, 근데 진짜로 진짜로 못생긴 사람이 지구상에 없던 다정함으로 진심을 담아 구애하면 어떡할 거냐고?
음...
음......
아.........
음............(상상중)
내가 졌어. 깨끗하게 인정할게.
나 얼굴 본다. 아주 많이.
그리고 포기 안 할 거야.
고독사로 죽을지언정, 평생토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