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사점 막내딸

by 김편리

어릴 적 우리 집은 복사점을 운영했다.

심지어 대학가 앞, 그 대학의 이름을 딴, 건물 한 층을 통째로 쓰는 커다란 복사점이었다.

30년도 더 된 그 때만 해도, 개인 컴퓨터와 프린터기를 가진 집은 거의 없었다. 온라인에 올라온 자료를 집에서 프린트 하거나 클릭 한 번으로 온라인 서점에서 e북을 손쉽게 구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기에 사람들은 자주 복사점을 이용했다.

그래서 대학가 앞 우리 복사점은 밤낮이 없을 정도로 아주 잘 됐다. 대학가 작은 골방 사무실에서 시작한 복사점은 몇 년 사이 덩치를 불려 이름만 말하면 아는 곳이 되어 있었다. 아버지는 밀려드는 일감에 우리집 거실에도 복사기를 들여놓고, 남은 일거리를 가져와 새벽까지 복사를 하시기도 했다.


나는 시간이 날 때면 복사점으로 가 일을 돕곤 했다. 고사리 손의 어린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복사기에 들어갈 종이들이 뭉쳐서 걸리지 않도록 미리 펼쳐두는 일이거나, 제본한 책에 스프링을 매다는 정도였다. 여러 대의 복사기가 뒤죽박죽 시끄럽게 내는 소음, 번쩍이는 전자파, 공기 중에 흩어지는 미세한 종이 먼지들로 가득한 그 곳은 지금의 나를 있게 한 장소이자 우리 오자매의 학업과 생계를 책임졌던 부모님의 자랑스러운 일터였다.


당시 주머니 헐빈한 대학생들은 초,중,고 학생들의 교과서와 참고서를 복사해 그것으로 과외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계를 유지했다. 그러다 보니 우리집엔 소설책, 문제집, 논문, 참고서 등의 원본이 끊이지 않았다.

우리 부모님은 우리에게 도움이 될 만한 것이 있으면 꼭 한 부 더 복사해 두시거나, 잘못 제본된 파본은 가져와 우리 방 서재에 꽂아 놓으셨다.

답지가 누락된 문제집, 악보 번호가 뒤섞인 음악 교재, 원래는 컬러였을 뭉개진 흑백 삽화들...

나는 그것들을 읽고 자랐다. 그조차도 나에겐 과분한 보물 창고였다.

나는 복사된 수많은 책들을 뒤적이며 그곳에서 발견한 수많은 문장들을 가슴에 새겼고, 작가라는 꿈을 마음 속 한 켠에 담아두며 세상으로 나아갔다.


풍족한 듯 했지만 어쩐지 한 구석이 텅 빈 것 같은 느낌은 사춘기 무렵부터였다. 친구들이 가진 참고서와 내 것이 다르다는 걸 처음 인지한 시기였다. 친구들의 책은 빳빳한 재질의 컬러 표지에 출판사 로고가 큼지막하게 박혀 있었고, 내 책의 표지는 할머니 이불에서나 볼 법한 촌스러운 꽃무늬였다. 스프링은 빠지기 일쑤였고 여러 번 들춘 책은 스프링 구멍이 헐거워져 종이도 하나 둘 떨어졌다. 복사본은 늘 흑백이었다. 질감과 냄새도 원본과는 달랐다. 책을 펼칠 때마다 복사기에서 나온 묘한 탄 냄새가 났고, 책장 끝은 미세하고 날카로워 손가락이 베이기 일쑤였다.

그때 내가 느낀 결핍은 결코 페이지 수나 글씨 크기, 표지의 질감에서 기인한 것만은 아니었다.

내가 알아차리지 못한 사이, 내 안에 낮고 깊게 스멀스멀 자리를 잡 그 감정... 그것은 바로 남들과 한 발짝 뒤에 물러서 있다는 낯선 열등 의식이었다.

어느 순간 부터 나는 내가 들고 있는 책에 의구심이 들었다.

비록 친구들과 같은 정보 들어간 책으로 학습했지만, 본과는 본질적으로 그 깊이나 철학이 다른 건 아닐까 하는 뾰족한 마음이었다.


복사본에 잠식된 나는 점점 책을 아끼지 않게 되었다.'또 복사하면 되지 뭐' 하는 마음으로 무수히 책을 잃어버리고, 또 복사하기를 반복했다. 사실 우리 부모님은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며 주말이면 서점에 데려가 책도 많이 사주셨고, 청소년 문고 전집 등도 잔뜩 사 두시는 분들이었다. 덕분에 나는 늘 책에 둘러 싸여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그 가까움은 책에 대한 소중함이나 경외심을 가져다 주지는 못 했다. 원하면 손에 닿을 수 있는 지식들이었기에 더 가볍게 여겨졌는지도 모른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깨닫지 못 했다.

작가가 그 안에 쏟은 정성, 문장 부호 하나하나에 담은 숨결을 가볍게 뛰어넘을 수 있다는 생각은 내 크나큰 착각이었다는 것을.


마음 속에 어렴풋하게만 품고 있던 '드라마 작가'라는 꿈을 꾸게 된 건 서른 즈음의 일이다. 나는 드라마 기획 아이디어를 구상하며 짤막하게 기획 노트를 쓰고 있었다. 어느날, 한 선배가 내 아이디어를 듣고 한 가지 조언을 해 주셨다.

"아이디어는 누구나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것이 누구의 것이 될 지는 아무도 몰라요. 지키는 게 더 중요하니, 저작권 협회에 등록부터 해 둬요."

나는 그 말을 처음엔 웃으면서 넘겼다. 세상에 완전히 새로운 게 어디에 있나. 하는 생각이었다. 나는 아무리 비슷한 드라마가 세상에 나와도, 나만의 색깔로 쓸 수 있다는 자신에 차 있었다. 설령 누군가와 아이디어가 겹치는 일이 있다면, 그 사실만으로도 이야기는 더이상 새로운 것이 아니니 깨끗하게 접으면 그만이지 않느냐며 공공연히 말하고 다니기도 했다.

나름 '쿨한 작가' 라는 환상에 빠져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로부터 1년 정도가 지난 후, 구상한 드라마의 기획을 확장하고 스토리를 보강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을 무렵 내 기획안과 너무도 닮은 설정이 인터넷에 떠도는 것을 보게 되었다. 주제의식과 구조, 주인공의 핵심 대사톤까지 아주 흡사한 이야기가 SNS의 타래로 돌고 있었다. 놀랍게도 그 글의 작성자는 나와 전혀 일면식이 없는데다 나보다 훨씬 먼저 활동한 소설작가였다. 어떤 한 여배우를 보고 영감을 받아 본인의 SNS에 '이런 드라마에 저 배우분이 출연해 이런 대사를 말한다면 재미있지 않겠나요?' 농담식으로 올린 것이 인기를 끌어 알고리즘을 타고 나의 피드에도 걸린 이었다. 앗차 싶었다. 해당 글은 이미 몇 천 리트윗이 되어 많은 사람들이 읽고 자신의 피드에도 재게시한 뒤였다.


일면식 없는 그가 내 생각을 알았을리 만무하다. 그러니 표절은 아니었다. 그도 분명 자신의 언어로 글을 썼을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속이 뒤집히는 것 같았다. 내가 오랫동안 마음 속에 품고 썼던 주인공이 엄마 없이 세상에 먼저 태어나버린 느낌이었다. 만약 내 기획안이 드라마로 세상에 나왔을 때, 그 트윗을 기억하는 네티즌이 '000 소설가의 아이디어를 베꼈다' 고 말할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그 때였다. 그토록 가볍게 생각했던 선배의 조언이 떠오른 것은.

그 때 내게 떠오른 내 아이디어를 증거로 남겨두었더라면 상황은 달라졌을까?

그날 이후 나는 내가 만든 기획안과 아이디어를 하나씩 정리해 내가 낳은 소중한 자식들에게 예방접종을 맞혀 두는 심정으로 저작권 협회에 하나 둘 등록하기 시작했다.


내가 생각해도 나는 참 이기적이다. 나를 키운 건, 복제본으로 가득한 세계였다. 그 안에서 배우고 꿈을 키웠다. 그러다 문득 누군가의 아이디어가 내 안에 담긴 것과 비슷하다는 것을 알고 나서야 비로소 내 것만이 진짜라는 말에 힘주어 소리 높인다는 것에 일말의 죄책감이 드는 이유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무언가를 오래 품고 써내 세상에 보여준다는 것이 얼마나 조심스럽고 간절한 일인지를. 마음만 먹으면 손쉽게 얻을 수 있다고 확신했던 문장들 사이에서, 나 또한 내 스스로의 아이디어를 값싼 복제본으로 치부하며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더이상의 나는 '또 복사하면 된다'는 마음으로 글을 쓰고 싶지 않다.

간절한 마음으로, 컴퓨터 앞에 앉아 몇날 며칠을 고심해 고른 한 단어, 한 문장을 지켜내고 싶다.

진짜 메시지는 복제본이나 표절본에는 절대로 담길 수 없다는 마음으로 나는 오늘도 나만의 문장을 고이 저장해둔다. 세상이 내 작품의 출처를, 나의 이름 석자로 알아봐 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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