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113
사제: 사제는 성품 성사를 통하여 사제의 품위를 받으며, 주교로부터 파견받아 그리스도의 대리자로서 미사 성제를 거행하고, 주교의 협력자로서 복음 전파를 위해 일생 동안 봉사한다.
사제직: 인간과 하느님과의 관계를 유지하거나 회복시키고(중개 역할), 인간에게 축복과 번영을 빌어 주며, 용서와 자비를 기원하는 일을 맡은 직분을 말한다. 이 직분은 일정한 절차와 의식을 통하여 임명받음으로써만 수행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직분의 수행은 일정한 규정에 의한 의식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_가톨릭 굿뉴스*
나랑, 우리랑 같은 교실서 공부하고, 하교 후엔 풀잎식당에서 피카츄 돈까스를 먹으며 메탈슬러그를 하던 친구가 예, 저 여기 있습니다 하고 모든이들 앞에 엎드려 있는것을 다들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나는 그에 대한 추억이 많진 않지만 놀랍고 기쁜 마음은 뭇 친구들과 다름없다. 친구가 변호사가 됐대, 걔 이번에 의대 들어갔대 하는 소식과 누구 이번에 사제서품 받았대 라는 말은 다른 차원의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변호사, 의사, 사제 Let’s go) 어디서 느꼈던 기시감.
‘저 사람은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 그의 어머니는 마리아라고 하지 않나? 그리고 그의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가 아닌가?’ (마태 13,54)
그를 알기 전에 그는 이미 신학교 학생이었다. 내가 성당이란곳과 사제가 되기 위한 메커니즘을 알게된 즈음, 여름방학을 맞은 1학년 신학생이 출신 성당에서 교중미사 후 파견 전에 인삿말을 나누게 됐다. 교우들에게 보내는 첫 학교 생활에 대한 보고였지만 6개월 전보단 신부님 같은 그에게서 어떤 대단함이 보였다. 유치원을 다닐 때 부터 자신을 매주 지켜봐 오던 동네 어른들에 대한 애정이 느껴졌다.
한국 천주교엔 이상한 전통(?)이 있다. 바로 신학교 학생을 ‘학사님’이라고 부르는 것. 장차 신부가 될 사람에 대한 예우였다. 처음 그 용어를 접했을땐 어안이 벙벙했다. 학사님,,,? 나도 학사 과정에 있는데, 그럼 나도? 대학교를 졸업한 모두가? 뭔가 부당한 예우라고 생각했다. 모든게 과장이라고 생각했다. 사제도 한 사람일 뿐인데 사제의 길을 준비하고 있다는 이유로 아직 생기지 않은 신분을 은근히 드러내기 위한 단어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그냥 문화라고 받아들였지만 말이다. (외국에도 그런 용어가 있을까?) 미사 후에 청년들끼리 어울릴때 넌지시 묻기도 했다. 그럼 대학과정을 마치면 석사님인가요? 신학교 7년 다닌다던데 그럼 졸업할 땐 박사님? 하하하 아..아닐걸? 하고 답하던 그가 생각난다.
육지에서 생활하게 되며 고향의 성당은 일년에 한번 갈까 말까한 곳이 되었다. 부활절이 다가오던 주에 맹질인데 내려와사주(명절인데 내려와야지)하고 연락이 왔던 스콜라 선생님의 말에 시간을 일부러 내 제주에 내려가던 때도 있었다. (스콜라 선생님은 ‘학사’님의 어머니시다.) 그랬던 시간을 거쳐 지금은 한 때 이웃처럼 생각했던 교우들과 흩어져 살게된 오늘을 생각한다. 각자의 시간을 모르고 지나가는 해가 많아졌다. 그리고 작년, 같이 성당에 다니던 언니의 친할머니 장례식장에서 학사님과 스콜라 선생님, 고향 성당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연락을 자주 하지 않아 맘이 상한 스콜라 선생님은 먼저 건넨 인삿말에 놀랍고 반가운 표정을 짓고선, 누구세요? 저는 모르는 사람이에요 라며 서운한 마음을 내비췄다. 다른 테이블에서 다른 사람들과 밥을 먹다, 스콜라 선생님이 가족을 챙기듯 내게 와서 물었다. 우리 연도바치러 갈건데 같이갈래?
*연도: 죽은 이를 위해 장례때 바치는 산자의 기도문*
연도를 바치며 피가 섞이지 않은 가족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신교 안에서 기도와 달리 천주교는 특유의 기도 쪼(?)가 있다. 어떠한 음의 높낮이도 허용하지 않는 그 단조로움. 어디서 가르치지 않지만 모두가 그렇게 기도한다. 그중에서도 연도를 바칠때는 기도 쪼와는 다르지만 타령처럼 만들어져 마음속에 구수함을 불러일을키는 신묘한 힘이 있다. 연도를 시작하면 나는 흰색 저고리를 입고, 너는 상투를 틀고 있으며, 모두 짚신을 신고, 여기는 초가집 안인것 같은 기분이 든다. 깊은 구렁 속에서 주님께 부르짖사오니. 주님, 제 소리를 들어주소서. 연도를 바치고 밖에서 나는 참을 재간 없이 또 ‘그’질문을 하고 말았다. 학사님, 학사님 이제 석사님인가요?
학사님은 올해 부제품을 받았다. 그가 학사 시절 성당 앞 풀빵 가게에서 풀빵을 사주던 그 성당에서였다. 신학교에서 배웠다며 수화로 수줍어하며 열심히 주문하던 모습이 생각났다. 풀빵을 먹고 사준 소화데레사 자서전은 아직 읽지 못했다.
학사님이 제주도내 신자들 앞에, 제대 앞에 엎드려있다. 다같이 성인 호칭기도를 드리며, 통공에 대해 생각한다. 00성인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수호 천사시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우리는 하늘에 계신 주님과 여러 성인들을 기도를 통해 만난다. 2000년이 지나 지금 여기에 우리가 모여있다.
사제서품은 어떻게 또 다를까?
걔 이번에 대기업 들어갔대, 내 친구 이번에 사업 대박났잖아,
작년에 그 부제님 이번에 신부님 됐대.